조 병 갑
칼럼니스트
수 개월 전 하룻밤을 어느 중소 도시에서 보낸 적이 있습니다.
자정이 넘었는데도 주위는 조금도 조용해지지 않고 더욱 소란해저만 갔습니다. 밖을 내다보니 실내포장마차 간판을 단 주점이 많은 테이블들을 거리에 내놓고 고기를 구워 술을 팔고 있었습니다. 고기 굽는 냄새가 온 골목길을 채우고 넘쳐 4층 숙소에까지 쾨쾨하게 스며들고 있었습니다.
몇 무리의 술꾼들이 안하무인으로 떠들며 술을 마시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 뒷집의 건물에서는 성인오락 P.C방(도박장?)을 개점하여 요란한 음악을 고음으로 틀어놓고 한 무리의 치어걸들을 불러 춤추게 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 건물로부터 50미터 내에 종합대학이 있고 그들 영업장 뒤로는 주택가임에도 불구하고 주민들의 조용한 수면 같은 것은 조금도 의식마저 못한 채 그들만의 세상을 연출해 가고 있었습니다.
100미터도 못 되는 거리에 파출소가 있지만 경찰들의 귀엔 그 소리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전달되지 않고 있었습니다. 시민도 영업주들도 경찰도 모두다 전근대적 과거의 사람들로 남아 있었습니다.
한달이 지난 후 서울의 00대로를 지나고 있었습니다. 지금까지는 보지 못했던 초대형의 그 도박장 간판들이 한 집 건너 거리를 장식하고 있었습니다. 큰 일 났다는 생각이 들어 간판들을 새어보기까지 했습니다. 하룻밤 묵었던 그 건물엔 염가로 제공하는 식당이 있었습니다.
업무차 지나다 들려보면 택시 기사들도 꽤나 드나들었는데, 그들은 어젯밤에 00동 피시방에서 돈을 많이 잃었다는 도박 얘기를 주로 했습니다.
그런 얘기들을 듣고 2~3개월도 되지 않아 바로 옆 건물에 그 오락실이 들어서고, 00대로는 도박대로로 변해버렸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그 염가 식당에 택시 기사들도 모두 다 어디로 갔는지 모습을 나타내지 않는다고 합니다. 식당 주인은 그들이 3천원 하는 밥도 먹을 수 없게 된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그런 세태를 걱정한지 1~2개월도 지나지 않아 온 나라의 신문들이 하루에도 몇 면씩을 할애하여 오락실 도박으로 정·관·업계를 들쑤셔대고 있습니다. 세상이 시끄러운 것은 부처님 시대나, 공자님 시대나, 예수님 시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부처님도 예수님도 그리고 공·맹과 노·장이 모두다 버리라는 욕심을 부여잡고 인간들은 싸움하기에 더욱 바빠졌으니 허유와 소부가 살았다면 귀와 손을 씻으러 갈 시간도 없는 절박한 시대에 우리가 와 있습니다.
그렇다고 “창랑의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탁하면 발을 씻을” 낭만도 여유도 없는 것이 오늘의 세태이니 참으로 난감한 시대입니다.
세상은 있는 자와 없는 자의 양극화를 걱정하지만, 양극화 정도가 아니라 만인의 만인에 의한 미분화의 현상을 초래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너무 걱정하지 맙시다. 정교일체의 나라를 제외하면 우리나라는 세계 제일의 종교국가입니다. 서구의 민주와 자본주의 역사는 2백년이나 됩니다.
우리는 기껏해야 50여 년에 불과합니다. 세계 제일의 저력과 지혜를 가진 민족임을 다시한번 상기해야 할 때입니다.
그 지혜와 저력과 발 빠르기가 세계 제일의 나라를 만들 것입니다. 오늘의 난세는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가는 과정에 불과합니다. 우리 모두 희망과 열정으로 내일을 기대하고 만들어 가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