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은 운동화 끈을 죄어 매고 주전골로 오른다. 안개가 자욱한 계곡으로 들어서니 지난번 잦은 비로 바위에 자란 돌이끼가 여간 미끄럽지 않다. 울퉁불퉁한 산길을 돌아 철다리를 건너자 선녀탕의 옥빛물이 발목을 잡는다. 그 맑은 물빛을 한참 동안 들여다보고 나서 고개를 드니 우뚝우뚝 치솟은 기암절벽이며 청청한 소나무들이 운수납자의 넋을 사로잡는다.
문득 서울 화계사에 계시는 숭산 선사의 시 한 수가 떠오른다.
원각산 밑 오솔길은 지금 길이 아니고 / 등짐 지고 오르는 이 옛사람이 아니로다. / 뚜벅뚜벅 발소리 옛날과 지금을 꿰뚫는데 / 까악 까악 까악 까마귀는 나무 위를 나네.
큰스님의 시를 읊조리며 가는데 우레 같은 물소리가 막혔던 마음을 시원스레 뚫어준다.
서서히 안개가 걷히더니 용소폭포가 시야에 들어온다. 전설에 따르면 이무기 두 마리가 여기에 살다가 수컷은 승천하고 암컷은 굳어 바위가 되어 용바위라 불렀고 그 아래로 떨어지는 물을 용소폭포라고 이름 붙였단다.
오늘도 행락객들이 끊임없이 오르내리고 있다. 그런데 저 만치서 서너명의 아낙들이 바지를 걷어올리고 물 속에 뛰어들어가 덩실덩실 춤을 추고 있다. 그걸 바라보는 일행은 손뼉을 치며 어린애들처럼 희희낙락 떠들어대고 있지 않은가. 쓴웃음이 절로 나온다.
대자연이 연출하는 이 절경을 보지도 느끼지도 못하는 우리들 인간이야말로 고마운 자연 앞에 부끄러운 모습을 참회해야 할 것이다.
얼마 전만 해도 야영객 두 사람이 근처 진소계곡에서 급류에 휩쓸려 실종되었다고 한다. 생각하면 대자연은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 겸손한 자에게 무한한 혜택으로 다가오며 오만하고 어리석은 자에게는 무서운 회초리로 다가오는 대자연의 두 모습을 가슴 깊이 새겨야 하지 않을까.
일련 스님 〈설악산 망월사〉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