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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온 뒤 펼쳐진 주전골 풍경

기자명 법보신문
조석으로 불어오는 상쾌한 바람이 벌써 가을이 오고 있음을 실감케 한다. 지난 입추 무렵부터 여기 주전골 숲속은 온통 쓰르라미의 울음소리로 귀가 따가울 지경이다. 천지를 달구어 밤잠을 앗아갔던 열대야의 무더위도 거짓말처럼 식어 버리고 서늘한 기운이 피부에 와 닿는다.

오늘 아침은 운동화 끈을 죄어 매고 주전골로 오른다. 안개가 자욱한 계곡으로 들어서니 지난번 잦은 비로 바위에 자란 돌이끼가 여간 미끄럽지 않다. 울퉁불퉁한 산길을 돌아 철다리를 건너자 선녀탕의 옥빛물이 발목을 잡는다. 그 맑은 물빛을 한참 동안 들여다보고 나서 고개를 드니 우뚝우뚝 치솟은 기암절벽이며 청청한 소나무들이 운수납자의 넋을 사로잡는다.

문득 서울 화계사에 계시는 숭산 선사의 시 한 수가 떠오른다.

원각산 밑 오솔길은 지금 길이 아니고 / 등짐 지고 오르는 이 옛사람이 아니로다. / 뚜벅뚜벅 발소리 옛날과 지금을 꿰뚫는데 / 까악 까악 까악 까마귀는 나무 위를 나네.

큰스님의 시를 읊조리며 가는데 우레 같은 물소리가 막혔던 마음을 시원스레 뚫어준다.

서서히 안개가 걷히더니 용소폭포가 시야에 들어온다. 전설에 따르면 이무기 두 마리가 여기에 살다가 수컷은 승천하고 암컷은 굳어 바위가 되어 용바위라 불렀고 그 아래로 떨어지는 물을 용소폭포라고 이름 붙였단다.

오늘도 행락객들이 끊임없이 오르내리고 있다. 그런데 저 만치서 서너명의 아낙들이 바지를 걷어올리고 물 속에 뛰어들어가 덩실덩실 춤을 추고 있다. 그걸 바라보는 일행은 손뼉을 치며 어린애들처럼 희희낙락 떠들어대고 있지 않은가. 쓴웃음이 절로 나온다.

대자연이 연출하는 이 절경을 보지도 느끼지도 못하는 우리들 인간이야말로 고마운 자연 앞에 부끄러운 모습을 참회해야 할 것이다.

얼마 전만 해도 야영객 두 사람이 근처 진소계곡에서 급류에 휩쓸려 실종되었다고 한다. 생각하면 대자연은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 겸손한 자에게 무한한 혜택으로 다가오며 오만하고 어리석은 자에게는 무서운 회초리로 다가오는 대자연의 두 모습을 가슴 깊이 새겨야 하지 않을까.



일련 스님 〈설악산 망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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