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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준과 캣츠킬의 사찰

기자명 법보신문

유학시절 우연히 찾은 뉴욕 근교 사찰

초라하지만 마음 편하게 해주던 소박함




김재준 교수가 직접

그린 캣츠킬 사찰의 이미지

미국서 만난 고향 같은 절

가장 기억에 남는 절의 이름을 잊어버렸다면 말이 되는 것일까? 그런데 그것이 사실이니 어떻게 하랴? 많은 유명 사찰들, 등산 중에 만나게되는 작은 절들의 기억은 시간이 지날수록 희미해져도 이 절에 대한 기억은 여전히 또렷이 남아 있다.

필자가 80년대 중반 미국에서 공부할 때 같은 학교의 불심이 깊은 한 부부가 있었다. 지금은 강원대 화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 부부를 따라 여름방학 때 우연히 바람 쐬러 간 곳이 뉴욕 시 북쪽으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캣츠킬 산의 한 한국 사찰이었다. 사실은 절이라고 하기에도 곤란할 지경이었다. 원래 사냥꾼들이 거주하던 나무 집을 한국에서 온 스님이 사서 절을 짓기 위해 준비중이었다. 그래서 나무와 석재들이 어지러이 널려 있었고 법당과 스님 및 신도들 처소가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캣츠킬(Catskill)이라는 뜻도 다소 살벌한 이름이기는 했다. 이 세상 중생들의 악업을 제도하기 위해 이런 인연으로 절이 들어서는가 하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이 절이 인상에 남는 것은 여기에 기거하고 계시던 한 스님 때문이다. 참선 수행을 많이 해서 깨달은 분이었는데 목소리도 쩌렁쩌렁하고 체격도 큰 편이었다. 그 전에 한번도 한 소식한 분을 만난 적이 없어서 필자는 처음에 스님을 뵙고 정말 이 분이 깨달은 분일까 생각도 했다. 너무나 평범한 모습에 처음에는 실망스럽기도 했다. 또 사람들이 찾아오면 말을 참 많이 하셨다. 밤이 깊어 그만 가려는 사람들에게 하루만 더 있다 가라는 말씀에서 인간이 가진 본질적인 외로움 같은 것을 가슴 찡하게 느낀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 해 여름 자주 그 곳에 가면서 처음에는 초라해 보이던 그 절도 편안하게 느껴지기 시작했고 주변의 아름다운 경치를 즐기며 마음 공부도 했다. 일상 생활 속에서 같이 밥먹고 간단한 일도 하고 산책도 가고 그 때마다 스님에게서 들었던 말들이 다 의미심장한 법문이었다. 그리고 깨달음이라는 것이 어떻게 보면 아주 평범해지는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이 세상에는 비범하고 특이한 사람이 대부분이다. 그냥 있는 그대로인 사람, 아무 욕심 없이 미소지을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오히려 희귀한 존재이다.

언어를 통해 우리는 무언가를 기억을 한다. 그러나 그 존재를 가리키던 그 말을 잊어버린 후에도 계속되는 기억은 아주 본질적인 알맹이 같은 것이리라. 우리가 어느 장소를 오래도록 기억하고 있는 것은 그 때 그 곳에 같이 있었던 사람 때문이라는 생각이다.



김재준 (국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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