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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선 스님]섣달 그믐날

기자명 법보신문

“변한다는 사실만이 진리 실감”

선사들은 하루해가 지고나면 오늘도 일대사를 마치지 못했다는 억울함에 두 다리 뻗고 울었다고 했다. 어느덧 세월은 무상하여 하루가 쌓이고 겹쳐서 섣달 그믐날이 닥쳐오는데 눈빛이 땅에 떨어질 때 돌아갈 곳이 분명한지 되돌아본다. 수행하는 사람은 한 생각이 일어날 때 바로 돌이켜 화두를 챙김으로써 회광반조가 되어 순간순간 자기 점검이 이루어진다.

작년에는 섬에서 보기 힘든 큰 눈이 내렸다. 장마처럼 계속되는 눈으로 혹시 지붕이 무너지지는 않을까 두려웠다. 섬들은 마치 하얀 연꽃처럼 솟아올랐고 햇빛에 녹아내리는 처마 끝 고드름과 낙숫물 소리는 난생처음 들어보는 장엄한 합창 이었다. 올해는 눈이 조금 내렸으면 좋겠는데 육지에는 또 폭설이 내린다니 걱정스럽다. 어느 젊은 농부가 폭설로 무너져 내리는 축사를 붙잡고 식구들끼리 하염없이 울었다는 탄식이 자꾸만 떠오른다. 돌이켜 보면 한해를 무사히 넘긴다는 것이 해가 갈수록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자연은 인간의 욕망 앞에서 질서를 잃어 버렸고 이제 그 과보를 받고 있는 것이다. 세상은 갈수록 양극화 되어가고 계층간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요즈음에는 절 집안에도 이런 못된 풍조가 들어와서 옛날 노스님들이 보여주었던 훈훈한 기운이 점점 사라져가니 안타깝다. 때로는 불공을 한다는 핑계로 신도들에게 욕망을 조장하고 있지는 않은지 자괴감이 들기도 한다. 인간의 욕망이 도대체 어디까지 가야 그칠지 브레이크가 터져버린 자동차처럼 두렵기만 하다.

부처님께서는 끝없이 욕망을 절제하고 다스림으로써 마음의 평화에 행복과 부의 기준을 세웠다. 돈과 경제의 수치만으로 인간의 행복과 부를 평가할 수는 없다. 미래학자 엘빈 토플러는 그의 저서 『부의 미래에서』 시간과 공간, 지식 세 가지가 미래의 부를 좌우하는 결정적 요인이라고 했다.

또한 오늘의 지식이 내일은 쓰레기가 되는 혁명적 속도의 시대가 왔다고 하였다. 지금 눈앞에 다가서는 대상과 부딪치는 문제에 과거의 축적된 지식과 정보가 사실이 아니거나 대상 자체가 너무 빠르게 변하기 때문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이다. 여기에 심각한 고민이 있다.

모든 것이 변한다는 사실만이 변함없는 진리라고 설파하신 부처님의 가르침이 실감난다. 하지만 이러한 뛰어난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승가집단의 의식과 제도가 따라가지 못한다면 세상을 선도할 수가 없을 것이다. 기술의 계발은 앞서지만 사회제도가 따라가지 못하는 세상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선에서는 이 문에 들어오려면 일체의 지식과 정보를 버리라고 했다. 지식으로는 대상이나 깨달음을 설명할 수는 있지만 깨달음 자체는 아니기 때문이다. 눈이 돌담에 쌓여 용머리를 틀었고 어김없이 그 자리에 내리고 있다. 견공 문수는 좋아라 이리 뛰고 저리 달린다.

눈은 바다에 빠져 흔적이 없고
연꽃으로 피어오르는 섬
하나, 둘, 셋

거금도 금천선원장 일선 스님 haejoum@ggseo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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