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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운스님의 자비수관 수행법]걸을때는 어떻게 수행 합니까?

기자명 법보신문

몸 움직임을 사물 보듯 항상 觀해야

Q: 일상 속에서 걸을 때나 산행할 때는 어떻게 수행합니까?

A: 산행할 때 다리가 아프면 마음의 손으로 그 부위를 쓰다듬어 주면 아픈 부위가 사라지고 다리가 가벼워집니다. 숨이 가쁘고 가슴이 터질 듯할 때 심장 부위를 마음의 손으로 쓰다듬어 주면 몸 상태가 진정됩니다. 행선을 하다 보면 직관의 힘도 키울 수 있는데, 이것은 초보상태에서도 가능하지만 행선이 익혀진 상태에서 하면 더 좋습니다.

시선을 똑 바로 앞을 향해 두고 걸으며 동시에 온몸의 움직임을 눈앞의 사물을 보듯이 놓치지 않고 항상 관해야 합니다. 여기서 온몸의 움직임이 한눈에 들어오지 않으면 발의 움직임부터 살펴봅니다. 그러다가 온몸이 한눈에 들어오면 그 움직임을 보는 상태를 계속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때 몸에서 특히 힘이 들어가 있어 딱딱해져 있는 부위가 쉽게 관찰됩니다. 그러면 그 부위의 힘을 뺄 수 있습니다. 만약 그것이 잘 안 되면 그 부위에 대해 부드러운 감정을 가지고 주시하여 부드럽게 만들거나 부드러운 마음의 손으로 쓰다듬어 주면 됩니다.

걷는 중에 다른 사람과 만나거나 새로운 풍경을 보면 몸의 움직임을 주시하던 마음이 밖으로 끌리게 되는데, 끌리는 마음은 움직이는 마음입니다. 그때는 끌리는 그 마음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또 주시하던 마음에 사물이 들어오면 곧바로 알아차리고 생각이 들어와도 놓치지 않아야 됩니다. 이러한 경지가 되면 몸과 마음의 움직임, 의도, 감각, 관찰자 등은 모두 관찰대상이 된 것입니다.

수행을 계속하다 보면 어느 순간 앞의 사물을 보는 것과 온몸의 움직임을 보는 것이 하나가 되어 앞을 보면서 동시에 몸의 움직임을 보게 됩니다. 즉, 앞의 사물을 보는 것도 직관(直觀)이요, 몸의 움직임을 보는 것도 직관입니다. 그래서 안과 밖의 경계가 하나가 되어 경계선이 없어집니다.

여기서 빨리 걷거나 천천히 걸으면서 걷는 속도에 따라 이 경계가 흐트러지는지 아니하면 움직임 속에서도 변함없는지 살펴보는 것이 걷기 수행의 요체입니다. 이것이 익숙해지면 몸의 움직임 속에 신체의 비어 있음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몸의 움직임 속에 신체의 형상이 텅 비어 없음을 본다면 주시하는 마음이 흩어지지 않습니다.

몸의 움직임 주시하면/마음 비워지나니/허공 속에 별빛만 가득하듯/마음엔 무상(無常)만 가득하네/빈 마음 유지하려면/똑같은 형상 없는 그 자리가/빈틈이니/우주를 넣고도 넉넉하다네/빈 마음으로 무상을 다시 보라/어느 곳에도 머물 수 없나니
무주(無住)에 머물면/오직 마음뿐임을 알게 되리라 

동화사 강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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