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일상 속에서도 호흡은 일정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데요, 지금부터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관찰을 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A: 몸이 다 사라져서 감각이나 호흡이 거의 없는 상태라도 미세한 들숨날숨의 사이에 틈이 있습니다. 그 틈을 더 면밀히 관찰하셔야 합니다. 틈이 점점 커져서 무한히 커지게 되고 마음이 고요하고 맑은 상태가 지속 되어 가면 선정이 지속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선정을 닦아가 이런 마음의 움직임이 일상생활에서도 이어지면 동정일여로 가는 것입니다. 선정 속에서 명료한 의식상태의 앎만 남아 있다면 그 앎을 관찰 대상으로 삼아 관찰해 갈 수 있습니다. 선정이 깊어지면 선정을 의지해 지혜를 계발해야합니다. 선정을 얻기 위해 진언을 외우거나 관상수행 같은 것 자체로는 우리 마음의 근본적인 무지를 없앨 수 없습니다. 내재하는 실재가 있다는 어리석은 생각이 사라지게 해야 하는데 만약 공성을 철저히 이해하지 못하면 세계와 자아가 객관적 실체라는 잘못된 생각을 더 강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고요함 속에서 ‘공성(空性) 드러내기’ 수행을 해서 지혜가 생기도록 해야 합니다. 몸은 사라져 거친 무아를 체득한 상태이지만 아직 완전한 무아(空)가 아닙니다. 그래서 몸이 공한 상태라고 하지만 아직은 허공의 요소에 의해 번뇌가 일어납니다. 그래서 몸이 허공이 된 상태에서 공성을 체득해 들어가는 수행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호흡을 통한 선정체험은 지혜계발에 바탕이 됩니다.
이때부터는 관찰보다는 사유에 초점이 맞춰집니다. 무상과 고를 통해 몸은 마음의 현상이어서 그 실체 없음을 확인했을 때 그 체험의 내용이 바로 공인데, 이 공성을 확인해 들어가는 사유를 집중적으로 합니다.
체험한 그 공이 ① 가벼운가? ② 깊이와 넓이가 있는가? ③ 투명한가? ④ 기멸(起滅)이 있는가? ⑤ 증익과 손감이 있는가? ⑥ 가고 옴이 있는가? ⑦ 깨끗함과 더러움이 있는가? ⑧ 이름을 붙일 수 있는가?를 반문하는 것입니다.
사유에 사유를 거듭하여 사유할 수 없는 지점까지 이르러 공성을 체득하게 되면 몸이 ‘나’이고 ‘내 것’이라는 견해를 벗어나면서 오직 마음뿐이면서 공임을 알게 됩니다. 이때부터는 마음 하나를 가지고 관찰해 들어가는 자비공관(慈悲空觀)으로 넘어가게 됩니다.
공성을 체득해 들어가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수행현상은, 일상 속에서도 몸이 텅 비어있는 상태를 유지하게 되고, 몸의 경계가 사라지면서 의식도 몸에 한정된 부분의식이 아니라 동시적이고 입체적으로 작용하는 전체의식으로 전환되게 됩니다. 의식의 반경이 점차 확대되어 전체의식으로 깨어나게 되면 주객을 나누어보고 부분으로 한정시키는 분별심이 현저히 약화되면서 몸과 마음은 늘 가볍고 고요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게 됩니다.
동화사 강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