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⑧ 불살생계(不殺生戒)

기자명 법보신문

생명 지닌 것은 자체로 소중한 것
작은 생명이라도 측은지심 가져야

재가불자가 지켜야 할 오계(五戒) 가운데 첫 번째는 불살생계이다. 살아있는 생명에게 해를 입히거나 목숨을 빼앗는 행위를 경계하는 계이다. 그런데 필자는 학생들로부터 자주 이런 질문을 받는다. “불교에서는 살아있는 것을 죽여서는 안 된다고 하는데요. 그러면 파리나 모기, 바퀴벌레 이런 것도 죽이면 안 되나요?”참으로 난감한 질문이다. 절대로 죽여서는 안 된다고 하자니 이런 종류의 불결한 해충들이 가져다 줄 불이익이 마음에 걸리고, 그렇다고 죽여도 좋다고 하자니 불살생계의 의미 자체가 애매모호해진다. 결국 명확한 답변을 회피한 채, 스스로도 납득이 안 가는 궁한 대답으로 얼버무리기 일쑤다.

그런데 어느 날 필자는 지금껏 자신이 생명에 대해 얼마나 큰 편견을 지니고 살아 왔는지 문득 깨닫게 되었다. 그것은 곤충이나 벌레들의 삶을 소개해 주는 TV의 한 프로그램을 볼 때였다. 무의식중에 파리나 모기, 바퀴벌레와 같은 종류의 생물은 더럽고 미미하며 사람에게 피해나 주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해충이라 생각하고 있었지만, 화면에 비친 그들의 모습은 어떤 다른 생명체와 비교해도 뒤떨어지지 않는 장엄한 것이었다. 목숨을 유지하고 후손을 남기기 위한 처절하고도 절실한 그들의 본능, 그것은 그들 역시 이 자연계를 구성하는 소중한 생물체임을 실감하게 했다. 그 동안 나에게 조금 해가 된다 하여 해충이라 치부하고 별 죄책감도 없이 숫한 목숨을 앗아 온 자신이 너무나도 부끄러웠다. 자기 본위로 생각하는 인간의 이런 이기심과 우월감이 결국 벌레나 동물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전쟁을 일으켜 수많은 사람의 목숨까지도 태연하게 빼앗는 불행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불살생계라 하면‘살아있는 생명을 해치지 말라’는 금지의 의미로만 받아들이지만, 불교원전에서는‘살생을 버리고(pah   yya), 살생을 멀리한다(pativirati)’는 표현을 사용한다. 즉 자발적으로 살생을 멈추고 멀리한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그 근거로써 살생과 같은 악행을 저지르는 것에 대한 부끄러움과 생물에 대한 애정, 고통 받는 자들에 대한 연민과 자비를 든다. 즉 살생은 부끄러운 행동이라는 자각 하에, 다른 생명에 대한 경외심과 애정을 바탕으로 그들의 고통을 측은히 여겨 감싸 안을 수 있는 자비로운 마음을 갖추었을 때, 비로소 살생으로부터 떠나고자 하는 자발적인 의지가 생겨난다는 것이리라. 아무리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생명이라도 삶을 받고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그들에게도 살아 갈 권리, 그리고 행복을 누릴 권리가 있다. 이 사실을 기억하고 모든 생물에 대해 측은지심을 갖는 것, 이것이야말로 불살생계의 진정한 의미가 아닐까 싶다.

불교경전에서는 살생을 해서는 안 되는 이유로 어떤 생물에게 있어서든 자신보다 더 소중한 것은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점을 든다. 즉 생명을 지닌 것은 그것이 어떤 형태의 것이든 스스로에게 있어서는 자신이 가장 소중한 법이니, 내게 있어 내 자신이 소중한 만큼 다른 생명체 역시 그러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는 의미이다. 내 몸이 폭력으로 상처받았을 때의 고통을 기억한다면, 그리고 내 앞에 죽음이 닥쳐왔을 때의 공포를 상상해 본다면, 다른 생명에 대해 폭력을 행사하거나 목숨을 빼앗는 행동은 꺼려질 수밖에 없다. 다른 생명체를 나와 똑같은 하나의 소중한 생명으로 인식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자연스럽게 불살생계를 실천하는 길인 것이다.

요즘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나는 소중하니까’라는 외침. 부디 이 말이 자신의 소중함만을 주장하는 이기적인 외침이 아닌, 내 자신의 소중함을 아는 것이 곧 다른 생명의 소중함도 알게 되는 길이라는 인식이 담긴 외침이었으면 좋겠다.
 
도쿄대 외국인 특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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