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9)지계 바라밀의 지침

기자명 정승석
  • 사회
  • 입력 2004.08.10 16:00
  • 댓글 0

항상 반성하는 자세로 자기 수호

시험 보기 전날에도 술자리만큼은 놓치지 않는 친구가 있었다. 이 친구가 어느 날 금주 선언을 하고서는 두문불출했다. 다른 친구들이 그를 찾아갔다. 그의 방에는 야무지게 ‘금주’라고 쓴 팻말이 걸려 있었다. 친구들은 그를 놀리고 싶어서 자기들끼리 새로 개발한 술집 얘기로 떠들면서, 그에게 같이 술 마시러 가지 않겠느냐고 꾀었다. 자신의 금주 의지를 장황하게 떠벌릴 줄 알았던 그 친구는 태연하게 동의하면서 일어서더니, 금주 팻말을 뒤집어 걸었다. 그 팻말 뒷면에는 ‘임시 휴업’이라고 씌어 있었다.



편법은 지계 견지하려는 배려

금주를 선언했던 그 친구의 임시 휴업이 다른 친구들에게는 장난처럼 보였지만, 그 친구에게는 장난이 아니라 금주를 지속하기 위한 편법이었다. 거부할 수 없는 유혹으로 잠시 금주를 중단했지만, 다시 팻말을 금주 쪽으로 뒤집어 금주의 의지를 다졌으므로, 그는 양심상 떳떳하게 자신과의 약속을 이행하고 있는 셈이다.

부처님은 ‘사계(捨戒)의 편법’을 허용하였다는 일화가 있다. 난디야라는 제자는 수행중에 천녀의 유혹에 넘어가 음행을 저질렀다. 출가 수행자에게 음행은 가장 큰 처벌을 받아야 하는 범계 행위에 속한다. 난디야는 부처님 앞에 나아가 자신의 과오를 참회했다. 이에 부처님은 그의 과오를 용서해 주면서, 이처럼 순간적인 과오로 중죄인이 되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계를 버리는 방법을 제시했는데, 이것이 사계의 편법이다.

사계의 편법이란 계를 도무지 지킬 수 없는 상황에 처했을 때, 곧장 그 자리에서 “계를 버리노라.” 하고 스스로 선언하는 것이다. 이 선언을 통해, 잠시 계를 버린 사람은 마음을 추스르고 나서 다시 계를 준수하기 위해 노력할 수 있다. 따라서 이 편법은 지계의 어려움을 인정하면서 자신의 행위에 대한 반성과 각성을 통해 지계를 끝까지 견지하게 하려는 배려이다.

과거에도 그랬겠지만, 현대 생활에서는 5계라도 완벽하게 준수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순전한 채식만으로 살아갈 수는 없고, 한여름에 파리나 모기를 한 마리라도 죽이지 않을 수가 없다. 하지만 5계는 그만큼 완벽하게 준수하기 어렵기 때문에, 그것은 더욱 절대적으로 고수되어야 한다. 이 같은 이율배반적인 상황에서 계는 우리가 지향해야 할 길을 지시하는 나침반이 되고, 우리 자신의 반성을 촉구하며, 타인의 잘못을 용서하게 해 준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

사계의 편법도 이 같은 의의를 고취하는 데 목적이 있을 뿐이므로, 그것이 범계 행위를 합리화하는 데 남발되어서는 안 된다. 학처요집에서 제시하는 지계 바라밀의 다섯 가지 지침을 음미하여 생활화하고자 한다면, 사계의 편법을 떠올릴 일도 아예 없을 것이다. 지계는 신체의 수호, 마음의 제어, 재물에 대한 배려, 공덕에 대한 배려, 신체의 정화라는 다섯 방면에서 실천되어야 한다.



지계는 신체수호-정화로 실천

보살은 이타행을 실천하기 위해 자기의 신체를 수호하여 생명을 유지한다. 모든 죄악을 피함으로써 우리의 몸과 말과 생각은 제어되고, 이로 인해 우리는 타인의 행복을 위해 항상 적절하게 행동하게 된다. 이와 같은 노력이 신체의 수호이다.

마음의 제어란 몸과 말과 생각의 제어를 위해 거듭 반성하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항상 반성하는 자세를 견지함으로써 자기 자신을 수호할 수 있다. 이 같은 취지를 사분율에서는 거울에 자기 모습을 비추어 보는 것과 같이 계로써 자신을 관찰하라고 가르친다.

재물에 대한 배려란 재물이나 향락의 악용을 경계하면서, 그것들을 과대 평가하거나 과소 평가하지 않는 것이다. 많은 죄악이 주로 재물에 대한 탐욕에서 발생하므로, 재물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

자신의 공덕을 타인에게 회향함으로써 다시 자신에게 공덕이 축적된다. 그러나 이렇게 자신에게 공덕이 축적되기도 기대하지 않는 것이 공덕에 대한 배려이다.

신체의 정화란 과거의 죄를 고백하고, 죄를 직접 다스려 나가고, 마음을 돌리려고 노력하고, 3보에 귀의하고자 노력하는 것이다.



동국대 인도철학과 교수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