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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낙주 특파원-日 선림사 원효 상징 ‘고개돌린 불상’ 친견기

  • 수행
  • 입력 2004.08.10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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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매엔 지옥중생에 대한 연민의 정이…”

본지 성낙주 특파원이 일본을 방문, 원효 스님 회고상을 모델로 조성된 것으로 알려진 반견(返見)아미타불의 존재를 확인하고 돌아왔다. 특히 성낙주 특파원은 반견 아미타불이 조성된 사찰들 대부분이 원효 스님과 역사-문화적으로 깊은 관련이 있음도 함께 밝혀냈다. [법보신문]은 성낙주 특파원의 일본 불교 탐방기를 2회에 걸쳐 연재한다.(편집자)

고대 한반도와 일본열도가 하나의 문화권을 형성하고 있었음은 필지의 사실이다. 양측의 문헌과 유물이 그 점을 실증하고 있거니와, 불교가 동진(東進)하는 과정에서도 별반 차이가 없었다. 그 결과 일본의 교토(京都)와 나라(奈良), 아스카(飛鳥) 등지에 산재한 많은 사원은 우리 고대불교사의 공백을 메울 수 있는 자료의 보고로서 손색이 없다. 현재 교토 고잔지(高山寺)에 소장되어 있는 원효(元曉)와 의상(義湘) 두 조사의 전기를 담아낸 여섯 권 짜리 두루마리 그림(繪券:에마키)[화엄연기(華嚴緣起)]가 단적인 예이다.



신장 77cm에 여성스러운 얼굴



동일한 관점에서 교토의 선림사(禪林寺), 산형(山形)의 선광사(善光寺), 동경(東京)의 장수원(長壽院), 부산(富山)의 안거사(安居寺) 및 광조사(光照寺), 군마(群馬)의 만일당(萬日堂), 병고(兵庫)의 삼매원(三昧院) 등에 봉안되어 있는 일명 ‘견반(見返)’, 곧 뒤를 돌아보는 독특한 모양의 불상들이 갖는 의의는 자못 심중하다. 그러한 이형(異形)의 양식 자체가 신라 때 설총이 경주 분황사에 조성했다는 이른바 ‘원효회고상(元曉廻顧像)’과 상통하기 때문이다. 원효가 혈사(穴寺)에서 입적하자 그의 아들 설총(薛聰)이 그 유골로 소상을 만들어 분황사에 모셔놓고 절을 하자 갑자기 돌아보았다는[삼국유사]’원효불기조(元曉不羈條)’의 기록이 그것이다.

지난 1월 23일, 필자는 동국대대학원 출신으로 교토 불교대학에서 수학 중인 강종원 군과 함께 일본정토종 서산선림사파(西山禪林寺派)의 총본산으로 알려진 경도시 좌경구(左京區)의 선림사(853년 개창)를 찾았다. 다른 ‘반견’ 여래상들을 대표하는 그곳 영관당(永觀堂)의 본존불인 ‘반견’ 아미타여래입상을 직접 친견하기 위함이었다.



아미타여래 자비스런 모습 그대로



경내에서도 가장 위쪽에 자리잡은 영관당 수미단에는 신장 77Cm의 그 부처님이 여성스러운 얼굴을 좌측 어깨 쪽으로 돌려 뒤를 돌아보고 있었다. 연민의 정이 가득 넘치는 눈매는 지옥에서 고통받는 중생들을 돌아보면서 차마 발걸음을 떼지 못하는 아미타여래의 대자대비한 모습 그대로였다.

그 점은 ‘원효회고상’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뒤를 돌아보는 파격적인 모습의 소상은, 평생을 그늘진 곳을 찾아 전란 속에 버림받은 민중과 함께 한 원효의 실천적 보살행을 설총이 형상화한 것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원효회고상’에 대한 관심은 고려조에 이르러 한층 고조되었는데, 대각국사(大覺國師) 의천(義天)의 글이 대표적이다. ‘분황사예효성상(芬皇寺禮曉聖像)’이라는 시는 전하지 않으나, ‘제분황사효성문(祭芬皇寺曉聖文)’에는 “오늘 계림의 옛 절에서 다행히 생존해 계신 듯한 모습을 뵙고…”라는 구절로 볼 때 그 용자가 매우 사실적이었음을 알 수가 있다.

이와 같이 선림사 ‘반견여래상’과 분황사 ‘원효회고상’은 이념과 양식 두 가지 측면에서 서로 합치한다. 더 나아가 ‘반견여래상’의 시원으로 ‘원효회고상’을 상정할 수도 있다. 시기적으로 이 ‘반견여래상’을 포함해 위의 ‘반견여래상’ 대부분이 ‘원효회고상’보다 후대인 겸창(鎌倉) 시대나 더 훗날의 작품이라는 점, 원효가 해동정토종을 열었듯이 이곳 선림사도 정토종을 표방하고 있다는 점, 위에서 언급한 [화엄연기]를 소장하고 있는 고잔사가 역시 같은 교토에 있으면서 원효 추앙의 분위기를 함께 하고 있다는 점, 특히 이곳의 중흥조 격인 증공선혜상인(證空善慧上人:1177∼1247)이 직접 필사한 원효의[兩卷無量壽經宗要]를 소장하고 있다는 점 등 몇 가지 사항을 고려할 때, 그럴 개연성이 전무하다고는 볼 수 없는 것이다. 곧, ‘원효회고상’은 동아시아 불교조각사에서 뒤를 돌아보는 이형(異形)의 불상 양식의 효시일 수가 있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는 이곳 선림사의 ‘반견’ 아미타여래입상은 ‘원효회고상’은 물론 원효 사상을 더욱 깊이 천착하고자 할 때에 새로운 통로가 되어줄 것으로 믿어진다. 마지막으로, 필자로 하여금 ‘반견’아미타여래입상을 친견하도록 독려해주신 분황사 종수 스님, 상세한 설명을 주신 선림사의 교학부장 기토오 꼬오요(鬼頭誠英) 스님께 감사드린다.



〈재야미술사학자·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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