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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흠 교수의 詩로 읽는 불교]5. 윤회①-서정주의 ‘춘향유문’

기자명 법보신문

우리는 모두 별에서 와서 별로 돌아간다

<사진설명>윤회의 관점에서 죽음은 마지막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시작이다. 티베트에서는 윤회를 거듭하는 세계를 만다라로 표현하곤 한다. 사진은 작가 여동완 씨의 작품 중 일부.

이제 관악에도 봄빛이 가득하다. 시냇물 돌 틈 새로 버들치는 기지개를 켜고 개구린 퐁당퐁당 뛰어들며 파문을 그린다. 그 파문에 버들개지는 움을 틔우고 여린 이파리 세상 구경하러 얼굴을 내미는데 개나리와 진달래는 갈색의 여백에 노랑과 분홍 점을 흐드러지게 수놓았다. 춘흥에 젖어 절로 콧노래를 부르다가 멈춘 뜻은 “꽃 잔치의 절정에서 낙화를 떠올렸기 때문.

나는 누구인가. 나는 과연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어머니의 어머니의 어머니를 끝없이 거슬러 올라가면 무엇에서 그칠까. 내 아들의 아들의 아들로 이어지면 그 끝은 과연 어디일까. 내가 사랑하는 이들, 허기지도록 그리운 이들, 서럽도록 아름다운 산과 들-이들은 또 많은 세월이 지난 뒤 서로 무엇이 되어 어디에서 다시 만나랴.

안녕히 계세요,/도련님.//지난 오월 단옷날, 처음 만나던 날,/우리 둘이서, 그늘 밑에 서 있던/그 무성하고 푸르런 나무같이/늘 안녕히 계세요.//저승의 어딘지는 똑똑히 모르지만/춘향의 사랑보다 오히려 더 먼/딴 나라는 아닐 것입니다.//천 길 땅 밑을 검은 물로 흐르거나/도솔천의 하늘을 구름으로 날더라도/그건 결국 도련님 곁 아니예요?//더구나 그 구름이 소나기 되어 퍼부을 때/춘향은 틀림없이 거기나 있을 거예요.-서정주의 ‘春香遺文’ 전문

춘향과 이도령의 대화 형식을 빌려 생사를 초월한 영원불멸한 사랑을 읊은 시다. “안녕히 계세요, 도련님”이란 진술과 ‘춘향유문’이란 제목에서, 3연의 ‘저승’이란 낱말에서 이 시가 춘향이 죽으면서 사별의 순간에 부른 노래임을 알 수 있다.

2연에서 이별의 순간 춘향은 오월 단옷날 무성하고 푸르른 나무처럼 늘 푸르고 건강하게 잘 계시라며 사랑하는 이를 축원하고 있다. 그 많은 나무 가운데 처음 만났던 단옷날의 나무를 꺼낸 것은 다른 뜻이 있기 때문이다. 이 나무를 통하여 처음 만나 가슴 두근거리고 한 눈에 서로를 사랑해버린 그 마음을 환기시키려는 것이다. 드러난 의미는 그 나무처럼 늘 푸르고 맑고 건강하게 잘 있으라고 한 것이지만, 숨은 의미는 처음 만났을 때의 그 사랑의 마음을 늘 푸르고 맑게 간직해 달라는 것이다.

존재는 영겁의 순환을 한다

“저승의 어딘지는 똑똑히 모르지만/춘향의 사랑보다 오히려 더 먼/딴 나라는 아닐 것입니다.”란 한마디로 말하여 저승도, 죽음도 사랑을 갈라놓지 못할 것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그렇게 표현하였으면 상투적 대중가요가 되었으리. 가기 전에는 누구도 모르는 것이 저승이다. 미지의 것, 그 중에서도 누구도 가보지 못하였고 삶과 이승의 모든 즐거움과 단절을 뜻하는 죽음은 두려움을 준다. 하지만 죽음의 공포가 구체적 현실로 엄습하는 그 순간 춘향은 깨닫는다. 깨달음은 춘향의 마음에서 신념을 형성한다. 저승이 아무리 두려운 곳이라 하더라도 내 사랑보다 더한 곳은 아니다. 저승도 사랑 안에 있는 나라에 불과하며 죽음도 사랑을 갈라놓지 못할 것이라고 춘향은 확신한다.

사랑에 대한 확신 밑에 깔려있는 것은 윤회의 세계관이다. 죽음은 마지막이 아니라 다른 존재로 다른 삶이 반복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니 죽음 앞에서 사랑은 오히려 부활한다. 죽어 지옥으로 가 천 길 땅 밑을 검은 물로 흐르거나 반대로 도솔천에 올라가 그 하늘의 구름으로 날더라도 육신의 껍데기만 변하였을 뿐 마음은 하나요, 결국 도련님 곁이다.

“더구나 그 구름이 소나기 되어 퍼부을 때/춘향은 틀림없이 거기나 있을 거예요.” 구름은 구름으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비가 되어 내린다. 어느 더운 여름날 구름이 소나기가 되어 내린다면 그 소나기가 바로 자신이다. 그러기에 그 비는 도련님 ‘곁’에 내린다. 육신의 상(相)이 무엇이고 무슨 관계가 있으리. 구름은 비가 되어 나리고 강물로 흘러 바다로 가서는 다시 기화하여 구름이 된다. 모양만 변할 뿐 H2O의 본성은 그대로인데 그를 죽었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렇듯 삶은 돌고 도는 것이며 그 상이 무엇을 취하든 사랑은 영원불멸한 것이다. 진여 불법처럼.

윤회를 잘 말해주는 설화가 『삼국유사』에 보인다. 이 책 ‘감통’ 편 ‘계집종 욱면이 염불을 하여 극락으로 가다’조에는 윤회의 삶을 반복하다가 마침내 해탈을 이루는 이야기가 전한다.

신라 경덕왕(景德王: 742~765) 때 진주에 신도 수십 명이 극락세계에 가고 싶은 뜻을 두어 그 고을 가까이에 미타사를 세우고 1만일을 기약하여 계를 모았다. 혹설에는 원효와 같이 뛰어난 민중승려였던 혜숙이 창건하였다고도 하는 미타사가 있었다. 이 절은 아한의 벼슬을 사는 귀진의 집과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아 귀진은 계집종인 욱면을 데리고 절에 와서 염불을 하였는데 이 계집종인 욱면도 절의 마당에서 승려를 따라서 염불을 하였다.

주인이 종이 감히 주제를 넘는 짓을 한다고 미워하여 매일 벼 두 섬씩 내어주며 하루에 다 찌라 하였다. 욱면이 저녁 무렵까지 다 찧어 놓고 절에 가서 염불하되 밤낮으로 게을리 하지 않았으니 속담에 “제 일이 바빠서 큰 집 방아 서두른다.”라는 말이 여기서 나온 말이다. 욱면은 마당 좌우에 긴 말뚝을 세우고 노끈으로 두 손바닥을 꿰어 합장을 하고 양쪽에서 이를 흔들게 하여 고단한 몸을 지탱하며 지극한 정성으로 염불을 하였다.

그때 하늘에서 “욱면 낭자는 법당에 들어가서 염불하라.”라는 소리가 들렸다. 절의 대중들이 이 말을 듣고 욱면에게 권하니 욱면은 법당에 들어와서 불법의 예에 따라 기도에 정진하였다. 그렇게 정진을 거듭할 즈음 서쪽으로부터 지상에서는 듣지도 못한 아름다운 음악소리가 들리는 것이 아닌가? 그 소리를 따라 욱면의 몸이 두리둥실 뜨더니 대들보를 뚫고 나가 하늘 높이 솟아올랐다. 욱면의 몸은 서쪽으로 가다가 교외에 이르러 본래의 몸을 버리고 부처님으로 변하였다. 부처님은 연화대에 앉아 큰 빛을 발하며 천천히 가니 풍악 소리가 공중에서 그치지 않았다.

8천 번이나 사바에 온 붓다

그 법당에는 지금도 욱면이 뚫고 나간 자리가 있다고 한다. 미타사에는 욱면이 하늘로 오른 전이라는 방을 붙였으며, 대들보의 뚫린 구멍의 크기가 열 아름쯤 되는데 비록 폭우나 폭설이 와도 젖지 않았다 한다. 뒷날 일을 좋아하는 이가 금탑 한 좌를 만들어 바로 그 구멍의 지붕 위에 두어 그 이적을 표시했다. 그 방과 탑이 일연이 살던 고려조 당대에까지 남아 있었다고 하며 욱면이 간 뒤에 귀진은 그 집이 이인이 난 곳이라 하여 집을 희사하여 절을 삼고 법왕사(法王寺)라 하고, 밭과 시종을 헌납했다 한다.

삼국유사는 이어서 『승전』의 기록을 덧붙이고 있다. 욱면은 관음보살의 응현(應現)으로 동량 팔진(棟梁 八珍)의 1,000여명의 문도 중 하나였는데 계를 지키지 못한 탓으로 부석사의 소가 된다. 그는 축생도에 떨어졌으나 경을 싣고 다니는 공덕을 하여 사람으로 환생하여 아간 귀진의 집에 계집종이 되었다가 손바닥을 노끈으로 뚫는 고행의 공덕을 하여 다시 성불한 것이다. “왕래사바팔천반(往來裟婆八千返)”! 석존께서 사바세계를 오고 가며 팔천회나 중생을 교화하였다고 하는데 관음보살은 사람, 짐승, 다시 사람의 생을 돌다가 결국 해탈을 이룬 것이다. 그렇듯 존재는 영겁의 순환을 끊임없이 되풀이 한다. 이것에 연기가 작용하여 ‘차이’가 있을 뿐.
 
이도흠 한양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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