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동에 法 전한 ‘禪農一如’ 사상의 발상지
해동에 法 전한 ‘禪農一如’ 사상의 발상지
  • 법보신문
  • 승인 2007.04.10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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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선종(禪宗)사찰 순례기

4. 사조정각선사(四祖正覺禪寺)

<사진설명>도신 스님이 법을 폈던 사조정각선사는 최근 복원돼 옛 모습을 되찾았다. 오른쪽 전탑은 도신 스님의 진신상과 신라 법랑 스님의 상이 모셔져 있는 비로탑.

사조정각선사(四祖正覺禪寺)와 오조선사(五祖禪寺)가 자리한 호북성 황매현은 2조의 사공산, 3조의 천주산과 불과 100리 길이며, 2조 혜가에서 5조 홍인까지 법을 이어 100여 년 동안 선을 중흥시킨 곳이어서 ‘선의 황금 삼각지’로 불리고 있다.

도신(道信·580∼651) 스님의 속성은 사마씨다. 지금의 하남성 심양현에서 태어나 일곱 살 나이에 동진출가했으나, 스승의 계행이 바르지 못함에 고심하던 중 14세에 사미의 몸으로 천주산에서 수행하던 3조 승찬대사를 찾게 되었다. 승찬대사의 해탈법문을 듣고 크게 깨달아 곁에서 9년을 시봉하며 수행하다 법을 이어받은 도신 스님은 천주산 삼조사를 떠나 호북성 황매현 쌍봉산으로 들었다. 순례단 역시 천주산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아침 일찍 길을 서둘러 도신 스님의 뒤를 따라 황매현으로 이동했다. 유채꽃이 만발한 들녘을 가로질러 황매현에 들어서자 이름에 걸맞게 시내에는 매화나무 길이 보였고, 곳곳에 내 걸린 한류스타 장나라 씨의 상품광고 포스터가 눈길을 끌었다.

중국인들이 “산 속 대나무 숲에 구름이 드리우고, 양자강이 황금 허리띠를 두르고 있다”고 자랑했던 쌍봉산의 풍광은 한국의 고찰들이 자리잡은 명산을 연상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이 쌍봉산에 4조 도신 스님이 624년에 창건한 4조사, 사조정각선사(四祖正覺禪寺)가 있다.

도신 스님이 승찬대사의 법을 이어받고 쌍봉산에 머무르며 법을 펴기 시작하자 이를 배우기 위해 구름 같은 인파가 몰렸고, 상주하는 수행대중이 1000여명을 헤아리게 됐다. 폐불과 전란으로 인해 불교가 쇠퇴하던 시기에 4조 도신 스님의 회상에 이같이 대중이 운집하게 되니, 이는 선종교단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일대 사건이기에 충분했다.

승찬대사에게 법을 이어 받은 도신 스님은 60여 년 동안 눕지 않을 정도로 수행력이 높았고, 이같은 수행력을 바탕으로 정각선사에서 30여 년을 주석하며 중생교화에 매진했다. 달마, 혜가, 승찬 등이 수행처를 옮기며 법을 설했던 것과 달리, 4조 도신 스님부터는 한 곳에 머무르며 수행하고 법문을 하게 됐다. 도신 스님은 이에 따라 “노동하면서 좌선하고 좌선을 근본으로 하되 15년은 해야 한 사람이 먹을 것을 얻어 주린 배를 채울 수 있다”며 선농일여(禪農一如) 사상을 주창했다.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一日不作 一日不食)”고 했던 백장선사의 청규보다 100년 이상 앞선 가르침이다.

도신의 전법도량 면목 회복

수많은 대중이 집단수행을 하면서 식량의 자급자족을 강조했던 도신 스님은 병을 해결하기 위해 스스로 약초를 모아 자신을 실험대상으로 하면서 초목집성(草木集成)이라는 약서를 저술할 정도로 약방문에도 뛰어났다. 특히 당 태종이 원인 모를 병으로 고생할 때 이 소식을 듣고 직접 약방문을 보내 고치도록 한 일은 후대까지 유명한 일화로 남아 있다. 때문에 후일 태종은 도신 스님에게 대의선사(大醫禪師)라는 시호를 내리기도 했다.

사조도량(四祖道場)이라고 쓰인 패방을 지나면 곧 천왕문이 나온다. 천왕문을 지나 향객들이 발길을 재촉하는 곳에 대웅보전이 있다. 정각선사에는 대웅전을 비롯해 관음전, 선당, 객당, 장경루, 방장실, 종각 등 30여 동의 전각이 있으나, 조사전을 제외한 모든 건물이 최근 몇 년 사이에 새롭게 복원된 건물이어서 고풍스러운 맛은 없다.

다만 조사전에 특별한 유래가 있다. 당 태종이 조서로써 도신 스님을 조정에 들도록 했으나, 도신이 치병을 핑계로 세 차례나 응하지 않자 네 번째에는 사자에게 “이번에도 말을 듣지 않으면 목을 베어오라”고 했다. 사신이 전한 조서내용을 본 도신은 목을 뽑아 “내 목을 베어가라”며 사신의 칼 앞에 들이밀었고, 이에 놀란 사신이 돌아가 사실대로 장계를 올리자 태종이 더욱 흠모하게 되었고, 이 때에 태종이 대장군 울지공을 파견해 직접 감독하도록 하여 지은 건물이 조사전이다.

조사전까지 참배하고 다시 패방쪽으로 돌아나오면 오른쪽 산으로 사조정각선사 순례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비로탑과 전법동이 있다. 높이가 11미터인 비로탑에는 도신 스님의 진신상이 있고 5조 홍인, 우두종 초조 법융, 신라승 법랑 등 6명의 제자상이 함께 조성돼 있다. 도신 스님은 직접 쓴 『입도안심요방편법문(入道安心要方便法門)』을 통해 “일체의 모든 인연을 멈추고 망상을 쉬게 하고 심신을 놓아서 항상 자기의 청정한 본심을 보는 안심의 대도를 깨달을 것”을 강조했다. 그리고 안심의 대도를 깨닫는 구체적 방편문으로 수일불이(守一不移)를 설했다. 도신 스님의 선 사상은 ‘하나를 지켜 움직이지 않는다’는 이 수일불이로 집약된다고 할 수 있다.

선농일여를 주창하고 수일불이의 선 사상을 강조했던 도신 스님은 제자들에게 탑을 만들도록 하고, 탑이 완성되자 “온갖 법은 모두가 해탈이니 너희들은 제각기 잘 보호해 미래의 유정들을 교화하라”는 말을 남기고는 탑 안에 들어가 앉아서 입적했다. 다음해에 문이 저절로 열려 제자들이 살펴보니 조사의 모습이 마치 살아 있는 듯 하여, 금칠을 하여 형상이 빛을 발하도록 했다. 그러나 훗날 진신상이 스스로 손을 들어 입으로 불을 토하며 소신했다고 하니, 아마도 형상에 치우친 제자들에 대한 꾸짖음이 아니었을까.

이 비로탑 안에 도신 스님의 다른 제자들과 함께 전신상이 조성돼 있는 신라 법랑 스님의 법은 신행, 준범, 혜은, 지선 스님으로 이어져 후일 구산선문의 하나인 봉암사 희양산문을 열게 된다. 조계종조 도의 선사의 가지산문보다 100년 가량 앞서서 4조 도신의 법이 해동에 전해진 것이라 할 수 있다. 비로탑에서 가파른 계단을 따라 200 미터 정도 올라가면 5조 홍인 스님에게 법을 전했다고 하는 전법동이 있다. 전법동 역시 보수공사를 마쳐 50여 명이 붙어 앉을 만한 정도의 공간이 마련됐다. 이곳에도 스님들이 머무르며 공부하고 있다.

비로탑에 신라 법랑 스님 상

<사진설명>중국 선종사찰을 순례중인 순례단은 도신 스님이 홍인 스님에게 법을 전한 전법동에서 좌선을 하며 조사들의 가르침을 새겼다.

도신 스님과 5조 홍인의 만남도 드라마틱하다. 하루는 도신 스님이 황매현으로 가는 길에 어린 아이 하나를 만났는데 골격이 수려한 것이 다른 아이들과 달랐기에 스님이 물었다.

“네 성이 무엇이냐?”
“성은 있으나 흔치 않은 성입니다”
“그게 무슨 성이냐?”
“불성(佛性)입니다”
“너에게는 성이 없더냐?”
“그 성이 공하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사는 그가 법기임을 알아보고 시자를 시켜 그 집에 따라가서 그 부모에게 출가시키기를 권하도록 했다. 그 부모는 전생 인연 때문에 아무런 난색도 없이 아들을 출가시켰고, 이에 홍인(弘忍)이라 이름했다. 도신 스님은 이후 “꽃과 종자는 나는 성품이 있나니, 땅에 의하여 꽃은 나고 또 난다. 큰 인연과 믿음이 어울릴 때에 나지만, 이 남은 남이 없는 것이다”라는 게송으로 전법게를 삼아 법과 의발을 전했다.
 
호북성 황매현=심정섭 기자
sjs88@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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