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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일경에 체포, 서대문형무소에 수감

기자명 법보신문

시위주도·불온문서 유포죄
재판서 1년 2개월 실형 선고

<사진설명>봉선사 3·1운동 기념비.

성숙 일행이 주도한 광릉천 시장에서의 만세운동 시위 군중이 1000명을 넘어서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 수가 더욱 늘어나자, 다리를 사이에 두고 대치하고 있던 일본경찰이 급기야 총을 쏘면서 진압에 나섰다.

일본경찰의 무자비한 총칼 앞에서 비무장의 시위군중은 무기력하게 당할 수밖에 없었다. 주민들이 일방적으로 다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자 성숙은 무력으로 대항하지 말 것을 주문했고, 광릉천 시장에서의 만세시위운동을 주도한 성숙과 이순재, 김석로, 강완수 등 봉선사 대중을 비롯해 시위군중의 선두에 섰던 각 동리의 이장 등 상당수가 일본경찰에 체포됐다.

1999년 3월 30일 광릉천 시장에서의 만세시위운동은 주동자들이 이처럼 일본경찰에 체포되면서 일단락 되는 듯 했으나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다음날 일본 헌병대에서 친일 앞잡이 4명을 동원해 전날 만세운동에 참가했던 사람들을 하나씩 잡아내기 시작했다. 포승줄이 모자라 새끼줄까지 동원해 동리 사람들을 묶었을 정도로 그 수가 많았다. 3월 30일 만세시위운동에 참석했던 사람들 대부분이 그렇게 헌병대에 끌려간 후, 광릉천 자갈마당에서는 사전에 준비했던 제2차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성숙과 이순재에게 미리 연락을 받고 31일에 만세운동을 벌이기로 했던 이재일이 2차 만세운동을 시작한 것이다. 이재일은 성숙과 이순재의 연락을 받고 비밀리에 사람들을 만나 격문을 보이며 논의를 했고, 많은 사람들이 이에 호응하자 만세운동을 결행하기로 했다. 그렇게 준비했던 3월 31일 광릉천 자갈마당의 만세시위운동에는 전날의 시위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일본 헌병대와 경찰에 끌려갔음에도 불구하고 100여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모였다.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는 만세 소리가 또다시 울려퍼졌고 당황한 일본 경찰은 시위군중이 늘어날 것을 염려해 전날과 같은 대치상황을 만들지 않고 곧바로 진압에 나섰다. 전날에 이어 이날 역시 시위군중은 일경의 총칼 앞에서 어쩔 수가 없었다. 이렇게 해서 2차 만세운동을 주도했던 이재일, 김순만, 최대봉 등도 체포돼 성숙 일행과 함께 서대문 형무소로 옮겨졌다.

한편 일본경찰은 봉선사 스님인 성숙과 이순재가 주동한 만세시위운동에서 수거한 격문의 출처를 찾아 나섰다. 당시 봉선사 인근에서 등사기를 갖고 있었던 곳이 봉선사 한 곳이었기 때문에 출처를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경찰은 봉선사까지 찾아가서 등사기를 압수, 양주경찰서로 옮겼다. 이로 인해 성숙 일행에게는 만세운동 주도뿐만 아니라, 불온문서를 제작한 죄까지 더해졌다.

성숙은 3월 30일 광릉천 시장 만세시위운동을 주도한 혐의로 체포, 5월 19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열린 재판에서 1년 2개월의 형을 받았다. 당시 29세였던 이순재와 30세였던 김석로는 나이가 많았던 관계로 제1 주동자가 되어 1년 6개월의 형을 받았고, 강완수는 징역 1년의 형을 언도 받았다. 

sjs88@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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