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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구출갈마(驅出羯磨)

기자명 법보신문

악행-물의 일으킨 자를 추방하는 것
승가 잘못 바로잡는 것도 재가의 몫

불교교단에서 재가불자의 중요한 역할 가운데 하나는 출가자에 대한 신심과 이에 기반을 둔 보시, 즉 출가라는 어려운 선택을 하고 온 생을 바쳐 수행에 전념하는 그들을 존경하며 이들이 번잡스러운 일상에 사로잡히지 않고 수행에 전념할 수 있도록 의식주 전반에 걸쳐 정성껏 돌보는 일일 것이다. 이것은 불교교단의 안정과 발전에도 기여하는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재가불자 자신의 공덕을 쌓는 일이기도 하다. 흔히 출가승단을 복전(福田)이라 표현하는 이유이다. 그러나 척박한 땅에 뿌려진 씨앗이 제대로 결실을 못 맺는 것처럼, 출가자로서의 올바른 심신을 갖추지 못한 자에게 주어진 공양은 좋은 결과를 기대하기 힘들다고 한다. 삭발을 하고 가사를 걸쳤다 하여 모두 재가불자들의 무조건적인 존경과 공양을 받을 가치를 지닌 절대적인 대상은 아닌 것이다.

부처님 당시, 끼따산에 앗사지와 뿌나바수까라 불리는 스님들이 살고 있었다. 그런데 이들은 출가자로서 적절하지 못한 행동을 일삼는 악(惡) 비구들이었다. 이들은 직접 나무를 길러 그 꽃과 가지로 꽃다발을 만들기도 하고 귀걸이나 목걸이용의 온갖 악세사리 등을 만들기도 했다. 그리고 이것을 마을 부녀자들에게 직접 선물하기도 하고 혹은 남을 통해 보내기도 했다. 게다가 술 마시고 춤추고 노래하며 여인들과 희희낙락거렸고, 때로는 장기판이나 도박판에서 놀기도 하고, 심지어는 주먹을 휘두르며 싸움질을 하기도 했다. 그리하여 스스로는 물론이거니와 재가불자들의 청정한 신심까지 타락시키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떤 훌륭한 한 스님이 부처님을 만나기 위해 유행하던 중 마침 그 곳을 지나게 되었다. 그는 이른 아침 발우를 들고 단정하게 위의를 갖춘 모습으로 탁발하러 마을로 들어갔다. 그러자 일부 사람들은 그 스님을 보며“이 힘없고 아둔해 보이는 건방진 자는 누구냐? 누가 이런 자에게 먹을 것을 주겠느냐. 우리들의 훌륭하신 앗사지와 뿌나바수까 스님은 친절하며 편안하다. 보시는 그런 분들한테 드리는 것이다”라며 그를 조롱했다.

그때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한 재가불자는 그 스님을 모시고 자신의 집으로 가 공양을 올리며, 부처님을 뵙게 되면 끼따산의 사정을 꼭 전해달라고 부탁했다. 부처님을 만난 그 스님은 끼따산에서 자신이 보고 들은 바를 전하며,“예전에는 신심 있고 믿었던 자들도 이제는 신심도 없고 믿지도 않습니다. 이전에 승단에 대해 이루어지던 보시의 길은 지금은 끊겼으며 선량한 비구들은 제외당하고 나쁜 비구들이 거주하고 있습니다”라고 했다. 다 들으신 후, 부처님께서는 사리불과 목련 등을 보내 앗사지와 뿌나바수까에게 구출갈마(驅出磨, pabb Ajaniyakamma)를 내리라고 지시하셨다. 구출갈마는 일정한 지역에서 악한 행동으로 물의를 일으킨 자들을 그 지역으로부터 추방할 것을 결정하는 갈마이다. 구출갈마를 받은 자는, 승단의 용서를 받지 못하는 이상 그 지역으로 돌아올 수 없다. 게다가 이 사실을 전해들은 다른 승단에서도 그들을 받아주지 않으므로, 결국 진정한 참회를 통해 승단의 용서를 얻지 못하는 한, 그들은 사실상 불교교단에서 설 자리를 잃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구출갈마의 이 인연담으로부터 두 종류의 재가불자를 볼 수 있다. 하나는 악행을 일삼는 앗사지와 뿌나바수까와 뒤섞여 옳고 그름을 분별하지 못한 채 그들을 옹호하는 자, 또 하나는 그들의 행동이 잘못되었음을 정확히 판단하고 이를 바로잡고자 노력하는 자이다. 유혹도 많고 위험도 많은 세상이다. 이 세상에서 출가라는 위대한 길을 선택한 사람들이 부디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도록, 우리 재가불자들도 올바른 판단력을 가지고 그들을 보조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곧 우리 자신의 공덕을 쌓는 길이기도 하다.
 
도쿄대 외국인 특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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