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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의 노예서 시간의 주인공으로

기자명 법보신문

『시간의 놀라운 발견』
슈테판 클라인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며칠 전 예술의 전당에 다녀왔습니다. ‘어둠 속의 대화(Dialogue in the Dark)’라는 전시회. 이름 그대로 새카만 어둠 속에서 전시된 것을 시각이 아니라 그 이외의 감각기관으로 느껴보는 프로그램입니다. 기대와 두려움 속에서 칠흑 같은 공간의 배회를 마칠 즈음 가이드가 물었습니다.

“우리가 이 어둔 공간 속에서 얼마나 오래 머물렀으리라 생각하세요?”

함께 했던 어떤 여성은 “한… 40분 쯤?”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때 나는 30분 쯤 지났으리라 생각했습니다. 사실 한 시간이 흘렀던 것입니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아서, 그래서 시계를 아예 볼 수 없는 상태에 놓이면 우리의 시간감각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프랑스 지질학자 청년 미셀 시프레는 1962년 남 알프스의 빙하 동굴로 시계를 갖지 않고 내려갔습니다. 그는 “수 주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알고 싶었던” 것입니다. 실험을 끝내고 그가 지상으로 올라온 날은 9월14일, 하지만 동굴 속에 갇혀 지내던 그는 8월20일 즈음이리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25일의 시간은 대체 어디로 날아가 버린 것일까요? 아니, 대체 시간이라는 것은 있는 것일까요, 없는 것일까요?

1965년 독일 뮌헨에서 태어난 유럽 최고의 학술저널리스트인 슈테판 클라인은 이 책 『시간의 놀라운 발견』에서 “순수한 시간은 없다. 시간은 어떤 사건이 벌어져야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라고 선언합니다.

그러니 시간이란 것은 다분히 주관적인 것일 수밖에 없습니다. 똑같이 하루를 살고 일생을 살다 가는데 아이들은 하루가 지루하다고 하고, 노인들은 시간이 너무 빠르다고 합니다. 행복했던 시절은 항상 순식간에 벌어지고 바람처럼 스쳐가지만 고통스런 시간은 너무나도 오래 오래 나를 괴롭힙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시간을 잘 관리하는 것이 급선무가 아니라 자신을 먼저 잘 파악하는 것이 급선무일 것입니다.

게다가 나는 지금 이 현재라는 시간을 얼마나 온전하게 살아가고 있을지도 의문입니다. 퍼뜩 정신을 차려보면 틀림없이 “우리가 미처 하지 못한 일을 기억하고, 다가올 일을 기뻐하는 동시에 걱정하며,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해 분개”하느라 현재를 보내고 있었으니 ‘현재’라는 시간은 ‘내’가 부재한 가운데 흘러갈 뿐이요, 따라서 “현재는 낯설고, 우리 스스로가 머릿속에서 구성하는 과거와 미래를 훨씬 쉽게 경험한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입니다. 현재 내게 일어나는 모든 것을 알아차리라는 것이 요즘 불교계 일각에서 각광받고 있는 수행인데 거의 그 맥락이 유사합니다.

시계의 노예가 되지 말고 시간의 주인공이 되라고 저자는 당부합니다. 그러려면 생체리듬을 따라야 하며 목적의식을 분명하게 지녀야 한다고 합니다. 일터의 시간에 매여 있는 현대인에게 자신 나름의 생체시계를 따르라는 그의 지침은 좀 비현실적입니다. 하지만 요즘 휴가철 아닙니까? 한번 정도는 시계를 아예 주머니에 넣고 자기의 몸과 의식의 요구를 온전히 따라가 보는 자기만의 시간의 주인이 되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동국역경원 역경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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