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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선거와 불교

기자명 법보신문

손 혁 재
경기대 정치교육원장

올 12월에 치러질 제17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불교계에 선거바람이 불고 있다. 올바른 지도자의 선택은 국가의 앞날과 국민의 삶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불교계가 대통령 선거에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문제는 선거바람이 이상하게 불고 있다는 점이다.

보도에 따르면 모 정치인에게 “선덕여왕 이후 여왕이 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는 덕담(?)을 한 스님이 있다고 한다. ‘필승’이라고 써 준 스님도 있다고 한다. 어떤 스님은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가 방문하면 버선발로 뛰어나오고, 지지하지 않는 후보가 오면 차갑게 대한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이렇게 권력지향적인 태도를 보이는 건 새삼스런 일이 아니다. 개신교신자인 이승만 대통령을 ‘보살의 화현’이라고 추켜세운 일도 있었을 정도였다.

역대 선거에서 불교계는 위상에 걸맞은 대접을 받지 못하고 공략하기 쉬운 ‘표밭’ 정도로만 인식되었다. 정치권은 ‘총무원만 잡으면 불교계는 끝난다’고 보았다. 따라서 선거가 끝나면 불교계에 약속한 정책을 굳이 지키려 하지 않았다. 이는 불교계 스스로가 자초한 업보다. 불국토 실현이 아니라 일부 종단 지도자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특정 정권, 특정 정치인에게 매달림으로써 정치인들로 하여금 불교를 쉽게 보도록 만든 것이다.

1992년 14대 대선에서 김영삼 후보는 불교계의 지지를 가장 많이 받았다. 그러나 김 대통령은 1987년 13대 대선 때 노태우 후보보다 불교계의 지지를 덜 받았다. “청와대에 찬송가 소리가 끊이지 않도록 하겠다”, “주일날 유세를 하지 않겠다” 등 지나친 개신교 편향적 발언으로 물의를 빚었기 때문이다.

불교계의 반(反)김영삼 정서가 5년 만에 친김영삼으로 바뀐 것은 권불유착때문이었다. 권력과 밀착했던 서의현 총무원장은 “3당 합당은 구국의 결단”, “민주주의를 소생시킨 지도자”이며 “불교중흥에 관심이 많은 분”이라며 김영삼 후보를 추켜올렸다. 또 김영삼 후보 진영은 사조직인 민족불교중흥회를 통해 전국 사찰에 수백만원에서 수십만원에 이르는 시주금을 내놓았다고 당시 언론은 보도했다. 김 후보 측의 불교계 표 공략이 주로 돈잔치였고 불교계가 여기에 휘둘렸음을 알 수 있다.

불교계가 선거에 이용되면서 불교의 이미지가 실추되고 위상이 흔들렸던 일은 이것만이 아니다. 대표적 사례가 신성한 사찰을 검은 돈의 세탁장소로 이용한 14대 대선 때의 상무대 80억원 비리사건이다. 서의현 총무원장과 신도회장이 개입한 이 사건은 종단개혁의 계기였지만 불교계가 권력에게 얼마나 우습게 보였나를 증명해준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부끄러운 일은 13대 대선 때도 있었다. 권승 무리가 여당의 노태우 후보에게 빌붙어 충성경쟁을 벌인 봉은사 사태가 그것이다. 권승들은 법당에 ‘노태우 후보의 당선을 위한 기도’ 현수막을 공개적으로 내걸고 법회를 열었다. 반발이 일자 권승들이 공권력을 동원해 탄압했던 것이다.

이번 대선에서는 과거처럼 종단 지도자들이 종단의 이익이나 지도자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권력과 유착하는 일이 생겨서는 안 된다. 특정 정당이나 후보의 정책을 불교의 관점에서 검증할 수는 있지만 종단이나 종단 지도자의 이름으로 특정인을 지지하거나 거부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 부디 이번 대선에서는 불교계에 부는 선거바람이 시대정신을 구현할 바른 지도자를 선택하는 쪽으로 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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