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법 선사 발자취 찾습니다”
“홍법 선사 발자취 찾습니다”
  • 법보신문
  • 승인 2007.09.21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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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법문도회, ‘추모문집’ 자료 공개 모집

보살의 삶으로 칭송되는 홍법 스님의 입적 30주기를 기념해 문집이 발간된다.

홍법 스님의 입적 30주년이 되는 2008년 7월 29일 추모일을 기해 스님의 생전 발자취를 모은 문집을 발간하기 위한 준비가 한창이다. 홍법문도회(대표 정우)는 최근 경남 양산 통도사 인근의 통도사 자비원 요양원 4층에 홍법선사추모문집 편집사무실을 마련하고 홍법 스님과 관련된 자료 및 유품을 모으는 데 진력하고 있다.

통도사 강주와 주지를 지낸 홍법 스님은 1930년 출생해 1978년까지 한국 근현대의 격동기를 보내고 세수 49세의 나이로 원적에 들었다. 스님은 조계종 총무원장 지관 스님, 봉선사 조실 월운 스님과 함께 운허 스님의 문하에서 해인사 강원 1기, 통도사 강원 1기를 졸업한 3명 중 한 사람이다. 스님은 1957년 통도사 강원을 졸업하자마다 강주를 맡아 통도사 강원 제 15기를 제자로 배출했다. 스님은 강원에 입학하기 전 제방 선원에서 15년 이상 정진했으며 지관, 광덕, 보성, 석정 스님 등 한국불교의 기라성 같은 스님들과 청맥회를 결성해 도반의 정을 다지기도 했다.

홍법 스님의 ‘자비행’은 출, 재가를 막론하고 차별이 없었다는 것이 스님을 기억하는 대중의 지론이다. 밤에는 2~3시간이상 눕지 않았으며 주지 소임 당시 관음전 앞 석등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불을 밝힌 스님이다. 나이 어린 행자에게도 말을 높였고 정월 초하루의 추위에도 해우소 청소를 하는가 하면, 빨랫감도 모아서 직접 빨아 밤새도록 닳은 부분을 꿰매어서 제자리에 두곤 했다. 전기가 들지 않았던 통도사 옥련암에 주석할 당시에는 초의 심지를 잘라가며 불을 밝힐 만큼 검소함이 몸에 베인 스님이었다. 

홍법스님의 추모문집에는 스님의 출생부터 원적 이후 부도탑이 세워 질 때 까지를 20여 사진으로 소개하고 유품 사진도 공개한다. 또 스님이 직접 쓴 서신을 싣고 도반, 통도사 강원 15회 졸업생, 상좌 10여 명의 추모 글이 실린다. 그러나 스님에 관한 자료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남은 자료들은 몇 장의 단체 사진과 초파일 법어, 편지글과 유품 일부가 전부다. 이에 홍법문도회는 홍법 스님에 관한 자료를 공개적으로 모으고 있다.

홍법 스님의 맏상좌인 정우 스님은 “홍법 선사께서는 생전 누구에게나 ‘보살’로 기억되는 시대의 스승”이라며 “이번 문집 발간을 위해 스님의 유품이나 기록을 갖고 있는 분들의 소중한 연락을 기다린다”고 강조했다.

홍법 스님을 추모하는 사업이 본격화 된 것은 1990년대 초, 통도사 강원 15기 졸업생들이 매년 모임을 가지면서 모은 2천만 원을 선뜻 문도회에 기증하면서다. 여기에 문도회 스님들이 후원금을 내고 지난 해 세종문화회관에서 성황리에 전시회를 열면서 10억이라는 자금이 마련됐다. 이후 홍법문도회는 홍법문화재단을 설립하고 매년 추모일마다 제방 강원과 해외 유학 스님, 독거 어르신, 소년소녀 가장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055)381-2013
양산=주영미 기자 ez001@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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