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를 실천하는 지침으로 흔히 육바라밀을 들게 된다. 불자들은 육바라밀에 의지하여 보살도를 닦아 나아가므로 육바라밀은 제2의 계와 같다. 육바라밀 가운데 첫째가 보시인데 보시는 불도를 닦는 기본인 바탕을 잘 다지는 근본이 되기 때문이다. 모든 공덕도 보시하는데서 비롯되고 복과 덕도 보시가 없으면 증장되지 않는다.
불자들이 보시를 할 때 사찰에서 법회 때나 기도할 때 내는 것과 불사를 위해 내는 것이 있다. 이 가운데 불사의 명목으로 내는 보시금은 예로부터 그 쓰임이 엄격하게 적용되었다.
예컨대 기와를 올릴 시주금으로 범종을 만든다든가, 요사채를 지어야 하는 돈으로 법당을 짓는 등의 일은 일체 허용되지 않았다. 어차피 절에 사용될 돈인데 용처를 굳이 따질 필요가 있느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목적을 가지고 보시한 돈을 반드시 그 용처에만 사용해야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고 마음대로 호용(互用)하면 호용죄가 성립되는데 이것은 일종의 도둑질로 간주되었다. 보시물 가운데서는 호용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이 구별되었는데 부처님에게 속한 물건들, 즉 법당이나 법당에 쓰이는 물건 등은 호용할 수 없고, 법(대장경)등에 속한 종이, 상자, 인쇄비용 등 역시 호용할 수 없다. 스님에게 속한 것이라도 보시할 때 목적이 분명한 것은 호용할 수 없고, 일반적인 시주금은 필요에 따라서 사용할 수 있다.
혹시 범종을 만들게 되면 사용해 달라고 보시한 돈을 쓰지 않고 있다가, 20년 뒤에 범종을 만들 때 사용했던 송광사의 노스님의 철저한 정신은 오늘날 본받을 만하다. 반드시 호용하지 않으면 안 될 것에 대해서는 승갈마를 통해 호용을 허락하는 방법이 있다. 대만의 사찰에서는 보시를 받고 그 보시금을 어떻게 사용했으면 좋겠느냐고 시주자에게 묻는 경우를 자주 볼 기회가 있었는데 이야말로 보시를 호용하지 않겠다는 의미이고, 나아가 시주물이 투명하게 쓰이는 것을 알게 해주는 것이었다.
삼보에게 바쳐진 시주물을 일컬어 정재(淨財)라 한다. 정재의 사용처가 투명하고 잘 사용되는 것은 승가가 대중에게 신뢰와 공양을 받는 초석이라 할 수 있다.
송광율원 교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