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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왕도 꾸짖던 옛 스님 그립네

기자명 윤청광
우리는 흔히 스님을 '인천(人天)의 스승'이라 부른다. 그만큼 스님을 우러러 받들고 존경한다는 말이다. 그러면 우리는 왜 스님을 '인천의 스승'으로 우러르고 존경하는가? 그 대답은 너무도 자명하다.

스님에게 무소불위의 권력이 있어서 존경하는게 아니다. 스님에게 돈이 많아서 존경하는 것도 아니다. 또 스님이 우리의 생활을 보장해 주기 때문에 존경하는게 아니다. 스님은 세속의 부귀영화를 초탈한 분, 세속의 이해득실을 초탈한 분, 오직 바른 수행으로 바른 가르침을 통해 우리에게 바르게 사는 법을 가르쳐주는 분이다. 그래서 우리는 스님을 '인천의 스승'으로 우러르고 존경하고 의지한다.

우리의 옛 큰스님들 가운데는 참으로 백성들이 우러르고 존경하고 의지하는 '인천의 스승'들이 많고 많았다.

거지들과 어울려 살면서도 무애가를 부르신 원효대사가 그러하셨고, 백성들이 혹독한 부역에 시달리는 것을 보고 '학정을 펼치면 돌로 성(城)을 쌓아도 백성들은 국경을 넘을 것이요, 선정을 베풀면 풀밭에 금만 그어 놓아도 어기는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감히 왕에게 충언을 바친 의상대사도 거룩한 스승이었다. 어디 그분들뿐이랴.

조선조의 무학대사도 이태조에게 '개의 눈으로 보면 개로 보이고, 부처님 눈으로 보면 부처로 보이는 법'이라고 감히 직언을 서슴지 않았다.

사명대사는 어떠하셨던가. 임진왜란 후 일본에 건너간 사명대사는 일본의 권력자가 '조선에는 호랑이가 많다고 들었는데 지금도 많으냐?'고 묻자, 대뜸 '옛날에는 호랑이가 많았으나 왜군이 다 죽여서 지금은 없다'고 대답하여 왜놈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해방 이후에도 부산 동래 범어사의 동산 큰스님은 이승만 대통령이 모자를 쓴 채 법당에 들어오자 '모자부터 벗으라'고 감히 말했고, 이 대통령이 손가락질로 부처님을 가리키며 벤트리트 장군에게 설명하자, '감히 어찌 부처님께 손가락질을 하느냐'고 면박을 주기도 했다. 왜정시대 때 조선총독에게 불호령을 내리고 뛰쳐나온 만공선사의 일화도 통쾌하기 그지없다.

우리의 자랑스러운 스승들은 그렇게 의연했고 권력자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그래서 '인천의 스승'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근자에 와서 우리의 스님들이 권력자에게 보이는 모습은 과연 어떠한가? 권력의 상징 청와대에 들어가서 '밥먹는 자리'에 끼이지 못하여 안절부절못하는 분이 어디 한 두 분이신가. 심지어는 타종교를 신봉하는 줄 세상이 다 아는 어느 유력한 특정후보의 부인이 나타나기라도 하면 버선발로 뛰어나와 합장 배례하며 온갖 아양과 주접을 떠는 스님은 아니 계신가. 또 유력한 후보자가 될 수도 있다는 어느 후보를 찾아가서 '불교 표는 내가 책임지겠다'고 헛소리를 떵떵 하는 정신 나간 스님은 아니 계신가.

정치권력에 아부하고 줄을 서려면 차라리 지금이라도 속히 환속하여 구의원, 군의원부터 시작하실 일이지, 행여라도 '인천의 스승복'인 승복을 입으신 채 정치권력 앞에 줄을 서고 굽실거리는 추태만은 보여주지 않았으면 좋겠다.

'인천의 스승'은 도덕적으로 타락한 정치인, 부정부패한 정치인에게 불호령을 내려야 마땅한 일이거늘, 치사하게 어찌 정치권력 앞에 굽실거리고 아부를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우리의 옛 스님들은 찾아온 대통령도 꾸짖고 불호령을 내렸거늘 오늘의 스님들이 제발로 찾아가서 그것도 후보자에게 아첨하고 눈도장이나 찍고 다닌다면 이건 그야말로 불교인의 자존심을 짓밟는 짓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국왕도 꾸짖고 대통령도 꾸짖던 우리 옛 스님의 그 호호 탕탕한 기개, 그 의연했던 모습이 그립고 그립다.


윤청광<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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