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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경 스님]희망이 싹트나니

기자명 법보신문

성공도 실패도 모두 버릇
좋은 습관 기르는 것 중요

 

아프리카의 한 감방에 펄족과 밤바라족의 죄수가 함께 있었다. 그들은 우연한 기회에 간수로부터 둘 중 한명은 팔을 자르고, 다른 한명은 목이 잘릴 거라는 왕명을 전해 들었다. 교활한 펄족은 갑자기 고통을 호소하며 팔을 잘라달라고 애원했다. 그가 어찌나 큰소리로 떠들어대는지 참다못한 간수가 소원대로 팔을 잘라주었다. 펄족은 통증으로 밤새 끙끙대면서도 목숨은 건졌다며 흡족해 했다. 그러나 그 옆의 밤바라족은 신경 쓰지 않고 잠을 실컷 잤다. 이윽고 날이 밝았다. 그런데 왕은 두 사람을 처벌하지 않고 석방시키라고 했다. 팔을 잃은 사람이 분해서 날뛰며 소리쳤다.

“저 밤바라족은 멀쩡한 데 나만 팔을 잃었구나!”

왕이 웃으며 말했다.

“책을 읽을 때, 4쪽을 읽기 전에 절대로 5쪽을 읽어서는 안 되느니라.”

지금이 절기로는 동지다. 일 년 중 밤이 가장 깊은 이날을 ‘작은 설’로도 친다. 주역의 괘로는 ‘지뢰복(地雷復)’이다. 위는 땅(地)이고, 아래는 천둥(雷)이다. 복(復)은 ‘돌아오다’, ‘회복하다’라는 뜻이다. 땅 밑에서 우레가 울린다는 것은 땅 위에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므로 ‘復’이 괘 이름이다. 다섯 개의 음효가 위로 쌓여 있고 제일 밑바닥에 한 개의 양효가 싹트고 있는 모양이 ‘복’ 괘의 형상이다. 켜켜이 쌓인 어둠과 시련의 저 깊은 곳에 희망의 불씨 하나가 자리를 잡았으니 절망할 일이 아니다. 다시 시작이다. 그래서 동지에는 양(陽)을 상징하는 붉은 팥죽을 쑤어 먹으며 육신의 건강과 밝은 기운을 기원해 왔다. 마냥 기다리는 게 아니라 간절한 발원과 부단한 노력이 병행되어야 한다.

‘성공도 실패도 다 버릇’이라 했다. 평소 좋은 습관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 절집에서는 처음 시작하는 ‘초심’(初心)을 중요하게 본다. 성공하고 행복한 사람의 비결은 한 가지 일에 완전히 매달리는데 있다고 한다. 서둘렀던 일은 손이 두세 번 다시 가기 마련이다. ‘한 번에 하나씩’ 하는 자세로, 우선순위를 정해놓고 마무리까지 정성을 다해야 한다.

내가 출가한 이래 들었던 절집의 아름다운 말 중에 “부처님 탁자 밥은 내려먹을 줄 알아야 한다”, “주지는 절지키는 게 주지다”, “기왓장을 팔아서라도 가르친다”는 세 가지가 있다. 종교인에게 ‘의식집전’과 ‘교리설파’는 기본적인 책무에 속한다. ‘탁자 밥’은 ‘사시마지’로, 부처님 제자로서 최소한의 의식집전 능력이다. 그리고 주지는 군림하는 자리가 아니라 대중에게 봉사하고 희생하는 자리여야 한다. 나 자신도 주지를 살고 있지만, 주지가 절에 머물면서 신도를 맞이하고 설법과 의식으로 감명을 주지 않으면 신도가 늘어나지 않는다. 옛날 불전에는 등잔을 상시로 켜놓았는데, 심지는 오래되면 기름을 잘 먹지 못한다. 그럴 때는 심지 윗부분을 자주 잘라줘야 했다(剔起佛前燈). 재발심이다. 젊은 출가자건 신도들이건 잘 가르치자. 그 한사람이 다음의 한 사람을 데려올 것이다.

높이 오르려면 반드시 낮은 곳으로부터 시작하고(若登高必自卑)
멀리 가려면 반드시 가까운 곳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若涉遠必自邇)『중용』


동지의 정신이다.

 

법련사 주지 보경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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