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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원 스님의 기억으로 남은 스님]1. 티베트 노스님

기자명 법보신문

티베트 스님 미소에 봇물처럼 눈물 터져
손수 얼굴 닦아준 자비로움 그리워

 

나이가 들수록 누구를 만난다는 일이 부담스러워진다고 한다. 또 새해가 시작 되었다.
싫든 좋든 올 한해도 무수한 사람들을 만나야 할 것이다. 내가 누구와의 만남에 부담을 느낀다고 생각하다가 혹 나를 만나는 상대는 나에게 어떤 부담을 느끼지는 않을까 염려스럽기도 하다.

흔히 도력 높은 스님 일수록 어린아이같이 천진해진다고 한다. 만주에서 짚신을 만들어 오가는 사람들에게 보시하면서 생을 마감한 수월스님이 그렇다고 한다. 사나운 만주 개들까지 스님 앞에서 사나움을 멈추고 함께 어울렸다고 하니 한번 뵈올 수 없음에 그리움이 사무친다.

만남에 관해 얘기하다보면 보제존자 나옹화상의 발원이 항상 생각난다. 스님의 조석발원문에는 이런 발원이 있다.
내 이름을 듣는 이들 삼도고통 면해지고 나의모습 보는 이들 모두해탈 얻으소서(聞我名者免三途, 見我形者得解脫)

오래전의 일이다. 신라 김교각 스님께서 지장보살로 화현하신 구화산을 참배했다. 호텔에서 자고 새벽녘에 일어났는데 어디에선가 범천의 소리 같은 아름다운 독경소리가 들려왔다. 나도 모르게 소리 나는 곳으로 찾아갔다. 한 방에서 티베트스님들이 모여앉아 독경하고 있었다.

독경이 끝나고 모두 노스님을 향해 둘러앉았다. 먼 이국에서 온 나도 한켠을 차지하고 앉아 노스님을 바라보자 스님께서 힘주어 미소를 지어주셨다. 스님의 미소를 보는 순간 갑자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평온함이 밀려왔다. 평온함뿐만 아니라 나도 모르게 두 눈에서 하염없는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어떠한 마음의 동요도 일어나지 않았다. 마음은 더없이 평온하고 고요 할 뿐 또 다른 아무런 감정이 없는데 눈에는 자꾸 눈물이 흘러내렸다.

얼마간인지 알 수 없는 시간동안 계속 눈물을 흘리자 말없이 바라보시던 스님께서 손짓으로 나를 가까이 부르셨다. 끌리는 듯 가까이 닿아가자 아무 말 없으시고 손수 두 눈의 눈물을 닦아 주셨다.

정말 난생 처음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내가 왜 그렇게 하염없는 눈물을 흘렸는지 알 수 없다. 또 그렇게 마음이 텅비어보기도 난생 처음인 것 같았다.

점심공양 때 구화산 인덕 방장스님께서 지족암 일타스님과 서신으로 교류하는 각별한 사이라고 하시면서 친히 곁에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티베트의 노스님 곁이었다. 공양을 마칠 때 쯤 스님께서 참배대중들을 친견해 주셨는데 너무나 놀라운 것은 친견 온 많은 중국불자들도 새벽의 나와 같이 노스님의 그윽한 미소 앞에서 아무런 흐느끼는 소리 없이 하염없는 눈물만 흘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더없이 평온한 모습으로 일어서 돌아가는 것을 보았다. 그 불자들도 아침에 나와 같은 평화로움을 느끼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정말 신비로운 체험이었다.

다시 새해가 밝았다. 사람 만나는 일이 힘들고 부담스러울 때면 그날 티베트의 노스님을 생각한다. 청춘의 열정이 탱천하던 젊은 사문을 한순간에 순한 양으로 만들어 버리신 스님이야말로 나옹스님의 후신이 아니었을까?

올해는 모든 사람은 아닐지라도 나를 만나는 많은 사람들이 더없는 평화로움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고 보면 사람은 서로 상대적인 것 같다. 상대를 향하는 나의 마음이 편안치 않으면 상대 또한 나로부터 편안함을 얻지 못하는 것 같다. 상대로부터 내 마음의 평화를 갈구하기 전에 내가 먼저 그들에게 전해줄 수 있는 평화로움을 찾아보고 싶다. 많은 스님들 중에 이름도 모르는 노스님 한분이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 한없는 편안함을 전해주시면서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경전에는 부처님을 한번 뵈고 한없이 평화로움을 얻는 사람들의 얘기가 자주 나온다. 직접 뵙지는 못해도 경전에서라도 부처님의 가득한 자비로움을 접한다면 올해는 세상의 가장 행복한 사문이 될 것 만 갔다.


제주 약천사 부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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