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생계에는 수많은 갈등과 대립이 존재한다. 빈부격차를 비롯해 정치적, 종교적, 문화적, 계층적, 인종적 차이 등등. 그 속에서 상대적인 박탈감과 증오는 커지고 종종 엄청난 혼란으로 치닫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현대사회와 전쟁이 끊이질 않았던 7세기 한반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을 듯 싶다. 그렇다면 대사상가이자 화쟁(和諍)의 달인 원효 성사는 당시 살육으로 인한 불신과 갈등의 골을 어떻게 치유했으며, 그의 사상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걸까?
정원용〈사진〉 박사의 「원효의 평화사상과 그 현실방안 연구」(동국대)는 이러한 물음에 대한 대답이다. 정 박사는 원효가 보는 평화와 평화를 저해하는 요인은 무엇이며, 원효가 지향하는 평화는 어떠하고 그것이 오늘날 어떻게 실현될 수 있는가를 탐구했다.
그에 따르면 원효는 당시의 사회가 서로 자기의 주장에만 집착하여 옳다고 주장함으로써 수많은 파벌을 형성하여 어지럽다고 진단했다. 이에 따라 원효는 평화의 저해요인이 인아견(人我見)과 법아견(法我見)에 대한 집착으로 보았다는 것. 또 개인에 있어서는 무명(無明)에 덮여 있는 인간의 심성, 사회적으로는 국가주의의 상존(尙存)과 그로 인한 문화적 폭력의 방치 등이 갈등의 발생구조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정 박사는 평화를 실현하기 위한 원효의 논리로 ‘같지도 다르지도 않다’는 불일불이론(不一不異論)과 ‘상대방 마음에 순응하기도 하고 순응하지 않기도 한다’는 순불순설(順不順說)을 꼽는다. 이것이 곧 자기 마음의 평안과 남과의 화합을 가져올 수 있는 원효의 평화논리이며, 구체적으로는 화쟁사상으로 나타난다고 말한다.
정 박사는 평화로 가는 것은 자기만 생각하는 이기적 욕심을 버리고 남도 생각하는 이타적 원심(願心)을 가지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들의 공동서원에 의해 평화에 점점 가까워 질 것이며, 이는 범부의 수동적인 업생(業生)이 아니라, 보살의 능동적인 원생(願生)을 사는 것이요, 욕망사회에서 소망사회로 가는 것이라고 결론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