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역경 주역’ 동국역경원 문 닫나

기자명 법보신문
  • 교학
  • 입력 2008.02.25 09:35
  • 댓글 0

조계종·동국대 홀대 속 44년 역경 노하우 ‘물거품’으로
한글대장경 완역은 기적…내년 국고 끊기면 사실상 고사

<사진설명> 동국대 교내 구석에 자리 잡은 역경원 건물

지난 1964년 개원 이후 지금까지 한문 일색인 고려대장경을 비롯한 불교경전을 우리말로 옮김으로써 한국불교 현대화에 절대적인 기여를 했던 동국역경원이 조계종과 동국대의 홀대 속에서 고사위기를 맞고 있다.

동국대 한켠 허름한 공간에 자리 잡은 역경원은 낡고 오래된 건물만큼이나 퇴색한 채 몰락하고 있다. 역경원 직원들의 급여는 동국대 교직원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며, 2~3년에 한 번씩 이리저리 이사 다녀야 할 정도로 학교 내 위상 또한 극도로 낮다. 이런 상황에서 고려대장경 한글화 이후 역경원의 주된 사업이 돼야 할 ‘한국불교전서’ 번역작업조차 역경원이 아닌 동국대 불교문화연구원으로 넘어가 2007년부터 문화관광부의 지원을 받아 번역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런 상황은 그동안 온갖 ‘역경(逆境)’을 딛고 ‘역경(譯經)’에 노력해왔던 동국역경원의 존립 기반 자체를 뿌리 채 뒤흔들고 있다.

실제 지난 한해에만 역경위원을 비롯한 구성원 5명이 역경원을 떠났으며, 실무를 총괄하는 편찬부장 자리조차 반년이 넘도록 임명하고 있지 못한 실정이다. 그나마 역경원이 지금까지 근근이 버틸 수 있는 건 지난 2001년 완간된 한글대장경의 내용을 수정하는 개역(改譯)작업을 위해 정부가 매년 4억 원 씩 지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국고지원도 내년이면 사실상 모두 끝나 획기적인 대안이 없는 한 역경원은 앞으로 경전 한 권 번역해 출간하기도 버거울 정도로 재정난에 직면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역경원을 떠난 한 역경위원은 “역경은 불교대중화의 핵심 과제임에도 이에 대한 중요성과 가치를 알아주는 곳은 없다”며 “이제 동국역경원은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털어놓았다.

일각에서는 역경원의 몰락이 예정된 결과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역경원은 1984년 역경후원을 위해 재단법인 동국역경사업진흥회를 만들었고, 그동안 마련한 기금으로 지난 1987년 4억을 투자해 건물을 매입했다. 이 건물은 현재 100억대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지만 이 재단은 현재 역경원이 운영주체가 아닐뿐더러 그나마 재단이 역경원에 지원하는 금액은 연간 2000만원에 불과하다. 경전 한 권을 번역하기 위해 소요되는 비용이 보통 2000~3000만원인 점을 감안하면 별다른 도움이 못되는 상황이다. 여기에 역경원 설립 주체인 조계종의 한 해 지원금이 2000만원에 불과한 것도 역경원 운영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 되고 있다.

이렇게 열악한 상황에서 한글대장경 318권을 완역했다는 것은 가히 ‘기적’으로 일컬어진다. 역경불사를 처음 시작했던 초대 역경원장 운허 스님과 그 뒤를 이은 월운 스님의 원력과 함께 그동안 역경에 참여했던 수백 명의 번역자와 수많은 불자들의 후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것이 대체적인 시각이다.

그러나 역경원은 현재 개원 이후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으며 현재로선 회생할 가능성도 거의 없다. 하지만 이것이 곧 앞으로 교계가 진행해야 할 역경 사업이 없음을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일단 불교문화연구원이 정부 지원으로 역대 고승들의 문집이 포함된 한국불교전서를 번역하고 있지만 그곳이 역경기관이 아닌 까닭에 지속성을 갖고 역경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역경원이 없어지면 1700년 한국불교가 쌓아온 수많은 한문 전적을 체계적으로 번역할 기관이 없어짐을 의미하는 것이라는 게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또 완간된 한글대장경의 끊임없는 보완과 함께 금강경, 화엄경, 법화경 등 주요 경전의 통일 사업도 역경원이 존재해야 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역경원의 몰락은 지난 44년간 쌓아온 역경 노하우의 몰락이며 한국불교의 정체와 퇴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들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오랜 세월 역경사업을 후원했던 석주 스님은 지난 2004년 입적을 얼마 앞두고 설한 동국역경원 개원 40주년 법어에서 “어둠 속에 무궁한 보물이 있어도 등불이 없으면 알아볼 수 없듯 부처님 말씀을 전해주는 이가 없으면 아무리 지혜로워도 알아볼 길이 없다”며 “앞으로도 역경원은 모든 불자들이 부처님의 법을 쉽게 접할 수 있도록 역경사업에 전념하고 종단과 동국대와 불자들은 이 사업이 가능하도록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당부한 바 있다.

석주 스님의 말처럼 이제 불자들과 종단 및 동국대의 관심이 없다면 불보살과 역대 선지식들의 가르침을 현대적인 언어로 전달해왔던 역경원은 역사의 뒤안길로 영영 사라질 위기에 직면해 있다.

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