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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규 변호사의 세상읽기]

기자명 법보신문

남대문 소실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풀어진 문화재 보존의식 다잡아야

“남대문아! 네가 죽다니….”

우리의 국보 1호 남대문이 잿더미로 바뀌는 참담한 일이 일어나자, 수많은 시민들이 그 안타까움에 눈시울을 적시며 가져다 놓은 하얀 국화꽃 더미위에 놓인 어느 어린이의 편지 제목이다. 지난 2월 10일 저녁 국보 1호인 남대문이 한 치인(癡人)의 방화로 불에 타 무너져 내리는 끔찍한 일이 발생했다. 남대문의 본명은 그 편액에도 뚜렷이 나타나 있는 것처럼 숭례문이다.

조선 초 태조 7년인 1398년, 3년간의 역사 끝에 완성된 것이지만, 현재의 건물은 그 뒤에 몇 차례의 보수를 거쳐 1447년에 고쳐 지은 것이다. 근 600여년의 역사를 지닌 숭례문은 그 동안 병자호란과 임진왜란을 끄떡없이 견뎌냈을 뿐 아니라 6·25동란도 무사히 이겨낸 국보중의 국보다. 국보 1호인 남대문은 ‘국보 1호’라는 지위보다도, 600여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가진 환란을 겪으면서도 그곳에 의연하게 서 있는 늠름한 모습에서 우리의 강인한 기상과 문화적 자존심을 엿볼 수 있었기에 모두의 사랑을 받아왔다.

그것을 실증이라도 하듯 남대문이 불타 내려앉은 보도가 있자, 마치 누가 시키기라도 한 듯이 많은 시민들이 몰려나가 앙상하게 남은 남대문의 잔해를 쳐다보며 혹은 묵념하고, 혹은 눈물지으며, 혹은 흰 꽃다발을 바치는가 하면, 심지어 외국인들까지 나와 보면서 침통함을 금치 못하였다니 더 할 말이 없다. 한국에서 40년째 살고 있다는 한 외국인이 말하기를 “한국은 문화재 보호의식이 약하다”고 하면서, 조상들이 “이놈들”하고 호통 치실 것이라고 서슴없이 말했다는 기사가 신문에 실렸다.

낯 들고 할 말이 없다. 구태여 외국인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우리의 역사인식이나 문화재에 대한 관념에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우리는 지난 10여년간 ‘역사 바로 세우기’라는 말을 수 없이 들어왔고, 또 실제로 지난 역사를 ‘바로 세운다’는 작업이 정부차원에서 진행됐다.

역사라는 것은 지난날의 ‘자취’이고 ‘사실’이다. 역사는 역사로서 그대로 있는 것이지, 눕는 법도 없고 서는 일도 없다. 바로 세운다고 해서 서는 것이 아니다. 역사에 대한 평가는 사람에 따라,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그 평가가 곧 역사는 아니다.

문화재의 보존의식도 마찬가지 일이다. 문화재는 곧 우리의 문화유산이고, 조상들의 얼과 지혜가 담긴 것이니, 그 소중함은 말로 다할 수 없다. 그러니 그 보존을 위해 성심을 다해야 함은 두 말할 나위조차 없는 일이다. 그런데도 남대문의 문루에서 노숙자들이 라면을 끓여 먹고 여름철에 시원한 잠자리로 쓰이게까지 방치됐다니 한 마디로 어이없는 일이다. 이러고도 문화재가 그런대로 보존돼 왔다니 요행이라 할 수 밖에 없다.

물론, 생긴 것은 모두 변하고 언젠가는 망가져 없어지기 마련이며, 영원히 존재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모든 것은 무상의 경계를 벗어나지 못하며, 문화재라고 해서 예외가 될 수는 없다. 문제는 이번에 벌어진 것과 같은 상식 밖의 참사로 인한 멸실에 있고, 그것은 바로 우리의 업보라고 할 수 있다. 왜곡된 역사의식과 풀어질 대로 풀어진 문화재 보존 의식에 따른 결과요, 그것은 바로 우리가 지은 업으로 인한 과보임에 틀림없다.

부처님께서 『중아함』의 「앵무경(鸚鵡經)」에서 말씀하시기를 “저 중생들은 자기의 행의 업으로 말미암고, 업으로 말미암은 갚음을 얻으며, 업을 인연하고 업의 업처를 의지하여 중생은 그 높고 낮음을 따르고, 묘하고 묘하지 않은 데에서 사느니라”고 분명히 하셨다. 우리는 이번 일을 거울삼아 부처님의 가르침을 가슴에 깊이 새겨 과거를 참회하고 앞으로 올바른 문화재 보존 의식을 갖고 실천하도록 성심을 다할 일이다. 특히, 우리나라 문화재의 대부분이 불교와 연관된 것이고, 불교문화재의 대부분은 목조물이다. 불교계에서는 이번 일을 타산지석으로 삼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되새겨 소중한 문화유산을 다시 한 번 점검하고 잘 보존해 자손만대에 물려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겠다.

이상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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