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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능화의 경허 비판은 식민지 찬양자 한계”

기자명 법보신문
  • 교학
  • 입력 2008.04.25 22:11
  • 수정 2011.06.16 16:29
  • 댓글 0

서울대 최병헌 교수 덕숭총림 세미나서 주장
‘근대불교 중흥조 평가’ 이의 있을 수 없어
김상현 교수 “이능화 견해 틀리지 않다”

“세상 사람들이 말하기를 경허화상은 변재가 있으며, 그가 설한 바 법은 비록 옛날의 조사라 할지라도 이를 넘어섬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그저 제멋대로일 뿐 아무런 구속을 받음이 없어 음행과 살생을 범하는 일까지도 개의하지 않았다. 세상의 선류(禪流)가 다투어 서로 이것을 본받아서 심지어는 음주와 육식이 보리(菩提)에 장애되지 않으며, 행도(行盜)와 행음(行淫)도 반야에 방해되지 않는다고 창언(唱言)하고, 이를 대승선이라고 말하며, 수행이 없는 허물을 엄폐 가장하고자 하는 것을 도도히 모두 옳다고 하니 이러한 폐풍(弊風)은 실로 경허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총림은 이를 지목하여 마설(魔說)이라고 한다.”

 

20세기 최고의 불교지성으로 일컬어지는 이능화 거사가 1918년 간행한 그의 저술 『조선불교통사』에서 밝힌 경허(1849~1912)선사에 대한 평가다. 경허에 대한 그의 냉혹한 평가는 해방 이후 선불교 중심의 한국불교계에서 대수롭지 않게 여겨 오다가 90년대 후반 새롭게 주목받았다. 이능화에 대한 연구가 본격화된 탓도 있지만 한국불교계에 지계의식이 희박하고 막행막식을 해도 부끄러움을 모른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면서부터 그 원인이 경허에 있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었다.

 

이런 가운데 국내 불교사학계를 대표하는 두 학자가 경허에 대한 평가를 놓고 팽팽히 대립해 큰 관심을 모았다. 덕숭총림과 조계종 불학연구소가 공동으로 4월 25일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개최한 세미나에서 최병헌 서울대 교수는 ‘근대 한국불교의 선풍 진작과 덕숭총림’이란 논문을 통해 최근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경허에 대한 비판을 일축했다.

 

최 교수는 “위기에 처한 한국불교계에 새로운 중흥조로 출현하여 격정적인 생애를 살다간 걸승이 경허 성우선사”라며 “사실 오늘날 한국불교의 법맥이나 선맥은 경허선사의 출현과 뛰어난 행화로부터 새롭게 전개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 교수는 또 “그로 말미암아 끊어지다시피 했던 선풍이 다시 진작될 수 있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라며 “그를 간화선 부흥자, 또는 나아가 한국 근대불교의 중흥조로 보는데 있어서는 이의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최 교수는 특히 ‘이능화의 경허 비판’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는 “조선총독부의 불교정책을 찬양하면서 협력을 아끼지 않았으며 문헌자료의 수집에 매달리는 것으로 평생 일삼고 있었던 이능화의 성향으로 보아 무사자오(無師自悟)하여 선의 부흥을 염원하였던 경허의 불교 내용과 의의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비판적인 입장에 섰던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최 교수는 이어 “경허에 대한 비난은 이능화의 개인적인 비판임과 동시에 이능화가 세인(世人), 총림(叢林)이라 한 바와 같이 당대의 일반 사람들, 또는 불교계의 일반적인 부정적 평가였던 것”이라고 밝혔다.

 

뿐만 아니라 최 교수는 “경허의 사법제자인 혜월, 만공, 한암을 비롯해 남전, 성월, 용성, 도봉 등은 1921년 이후 일제의 불교정책과 친일화 되어가는 불교계에 반대하여 일어난 선학원운동의 주역을 담당했던 인물들”이라며 “이로써 일제시대 선학원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선의 부흥과 진작은 경허의 선풍에 연원하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논평을 맡은 김상현 동국대 교수는 최 교수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는 “경허가 한국 간화선의 재흥자, 혹은 한국 근대선의 중흥조라는 평가에 이의를 제기하기 어려울지 몰라도 그를 한국근대불교의 중흥조로까지 평가하기에는 보다 많은 토론이 필요하다”며 “백용성을 전통적인 불교에서 근대불교로 나아가기 위한 가교의 역할을 한 인물로, 그리고 한용운의 불교를 사회 참여적 민중불교로 평가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밝혔다. 또 김 교수는 “음주를 비롯한 경허의 여러 파격적인 기행에 대한 논란도 연구자들 사이에 적지 않게 존재하는 것이 현실”이라며 “따라서 이능화의 경허 비판을 단지 이능화나 당시 불교계의 한계만으로 해석해도 좋을 지는 역시 의문”이라며 다른 견해를 피력했다.

 

이와 함께 김 교수는 경허가 한국사회에서 갖는 의미에 대해서도 최 교수와 입장을 달리했다. 그는 “역사적 의의와 현재적 의의로 구분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며 “당 시대에 해결해야 했던 시대적 과제와 관련지어 살펴 볼 경우 불교의 사회적인 관심의 문제를 간과할 수 없고 또한 이 과제는 현재에도 여전히 유효한 문제의식”이라고 밝혔다. 김 교수의 이러한 입장은 선사들의 경우 당시 식민지시대의 당면과제인 민중의 고통과 독립운동 등 현안문제에 그다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고, 그러한 성향은 오늘날에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비판으로 풀이된다.

 

‘한국불교의 중흥조’ ‘한국의 달마’라는 찬탄과 함께 ‘취한 미친 중’ ‘마설’ 등 비판을 받고 있는 경허. 불교사학계를 대표하는 두 사학자의 상반된 경허 평가가  향후 경허 연구에 어떤 영향을 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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