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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규 변호사의 세상읽기]

기자명 법보신문

나라 살림은 국민의 혈세로 이뤄지는 것
국민 고충 생각하며 낭비 없이 사용해야

새 정부의 출범과 더불어 있은 정부기구 개편의 결과로 일부 부처의 통폐합이 이루어졌다. 그에 따라 폐합되는 부처에서는 아직 쓸만한 비교적 새 것인 집기류를 폐품으로 처리했는가 하면, 그대로 있는 부처에서도 새로 부임하는 장관들의 멀쩡한 책걸상이나 집기들을 새로운 것으로 바꾸느라 사들인지 얼마 되지 않은 것들을 폐기처분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새 정부에서 단행한 정부기구 개편은 작은 정부와 능률적인 행정을 표방한 대선 공약의 실천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이는 행정의 낭비를 막고 경비절감을 도모하려는 데에 첫째 목적이 있다는 것은 두 말할 나위조차 없는 일이다. 그러한 좋은 뜻에서 이루어진 정부기구 개편이 일부 공무원들의 방만한 살림살이로 말미암아 멀쩡한 책걸상 등을 폐기하고 새로운 것을 들여놓는 어처구니없는 작태를 보였다니 한심스럽기 짝이 없다.

자기 집의 살림이고 자기 호주머니에서 돈을 내는 경우에도 그와 같은 일을 할 수 있을 것인가. 하기야, 공무원들의 낭비벽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라 오랜 역사를 가진 것으로, 정부기구 개편의 때가 아니더라도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특히 연말이면 집행하고 남은 예산을 모두 긁어 쓰기 위해 당장 필요 없는 물건을 구입하거나 새 것으로 바꾸는 사례가 하나 둘이 아니니 구태여 이번의 일만을 들어 탓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원래, 공무원이란 종전의 관료주의 아래에서의 관리를 민주주의 관념에 맞도록 바꾸어 부른 이름이다. 관료주의 아래에서의 관리는 민의나 국민의 처지는 뒤로하고 오로지 지배자의 뜻에 따라 행정의 능률만을 추구하면 되는 것이지만, 민주국가에서의 공무원은 문자 그대로 국가의 이익과 국민의 복지 향상을 위해 공무에 종사하는 사람이므로, 공무원은 국민의 뜻과 처지를 존중하고 되도록 국민의 부담을 줄이도록 최선을 다하여야 함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므로 공무원이 자기가 속한 기관의 살림살이를 도모하는 데 있어서는 자기 집의 살림과 꼭 같은 관념으로 임해야 한다. 행정기관에서 공무원들이 사들이는 집기의 값이나 공무원들의 여비는 모두 예산에서 지변되는 것이고, 예산은 국민의 세금으로 충당된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일이다. 세금은 바로 납세자인 국민이 싫던 좋던 각자의 호주머니에서 지출한 소중한 돈이다. 납세자의 입장에서 보면 세금은 자기가 고생해서 마련하고, 쓸 데 쓰지 않고 아낀 생돈을 국가를 위해서 납부한 것이니, 세금이야말로 무서운 돈이고, 아무리 절약해도 지나침이 없는 일이라 하겠다.

멀쩡한 책걸상 등의 집기를 폐기하고 새 것으로 바꾸는 것은 첫째로 새롭고 좋은 물건에 대한 집착에서 오는 물욕을 나타내는 것이기에 나쁘고, 둘째로 물건을 소홀히 취급하는 잘못을 범하며, 셋째로 국민의 부담을 가중시키는 허물이 된다는 점에서 크게 경계해야 할 일이 아닐 수 없다.

부처님께서는 잡아함의 『경법경(經法經)』에서 비구들에게 이르시기를 “어떤 비구는 사랑할 만하다하여 즐겨하고 사랑하며 마음에 드는 대로 욕심을 기르고 자라게 하는 물건에 대해 그것을 보고도 기뻐하고 즐겨하지 않으며, 찬탄하지 않고 매이거나 집착하여 머무르지 않는다. 기뻐하고 즐겨하지 않으며 찬탄하지 않고 매이거나 집착하여 머무르지 않은 뒤에는 기뻐하지 않는다. 기뻐하지 않기 때문에 깊이 즐겨하지 않고, 깊이 즐겨하지 않기 때문에 탐하여 사랑하지 않고, 탐하여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막히거나 걸리지 않는다. 기뻐하거나 깊이 즐겨하거나 탐하여 사랑하거나 막히거나 걸리지 않으면 이것을 일일주(一一住)라 하니, 귀, 코, 혀, 몸, 뜻에 있어서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라며 물건에 집착하지 말도록 강조하셨다.

물질주의가 팽배한 오늘에 사는 우리에게 더할 수 없는 가르침이라 하겠다. 특히, 국민으로부터 나라 살림을 위탁받은 공무원들은 모름지기 나라 살림을 내 살림으로, 국비를 내 돈으로, 세금을 자기의 피땀으로 생각해 한 치의 어긋남도 없도록 노력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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