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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규 변호사의 세상읽기]

기자명 법보신문

대운하는 경제-생태계 망치는 일
정부, 국민의 소리에 귀 기울여야

이른바 대운하 사업을 반대하며 스님들을 비롯한 각 종교계 성직자 20여 명이 운하건설예정지를 따라 100일간의 도보순례를 마치고 지난 5월 19일 서울로 돌아왔다. 이를 계기로 5월 24일 순례단이 동참한 가운데 종교계를 비롯한 시민단체 구성원들이 참석해 대운하 사업 백지화를 촉구하는 범국민대회가 열렸다고 한다. 이들은 한결 같이 자연과 생명 그리고 나라의 미래를 살리기 위해 대운하 사업 계획은 없던 일로 돌려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매스컴의 보도에 의하면 국민 60%이상이 반대하고, 18대 국회의원 당선인 85%가 사업의 폐기 또는 보류 의견이라는 조사결과가 나왔다고 한다. 국민의 목소리가 이처럼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요직에 있다는 사람들은 대운하 사업의 타당성을 변명하거나 요리저리 합리화 시키는데 여념이 없다.

특히, 기획재정부장관은 지난달 7일 영국 런던에서 열린 한국경제 설명회에서 “실질적으로 운하가 아닌 수로”라고 개념지은 다음, “정부 재정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민자로 추진하는 프로젝트인 만큼 정부가 막을 이유가 없다”고 괴변을 늘어놓았다고 한다.

우선, 민간 기업이 민자로 하천에 운하개발공사를 하는 것은 정부와 무관한 것인지를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우리나라 하천법 제3조는 “하천은 국유로 한다”라고 하여 하천국유주의를 명시하고 있다. 또 하천의 등급에 따라 국가 하천은 국토해양부장관이, 지방하천은 관할구역의 시·도지사가 각각 관리청이 되며, 하천 공사와 유지 관리는 원칙적으로 당해 하천의 관리청이 하도록 하천법에 명문으로 규정돼 있다.

그 이름이 운하건, 수로건, 4대강 정화건 가릴 것 없이 이 사업은 하천 구역을 파고 깎고 넓히는 하천에 관한 공사임이 분명한 일인데, 민자로 추진하는 일이면 정부가 막을 이유가 없다는 말이 과연 현행법 아래 정부의 장관이라는 사람의 입에서 나올 수 있는 일인지 한심스럽기 짝이 없다. 철도와의 경쟁에서 밀려 운하 사업이 사양산업으로 된 것은 이미 오래된 이야기이다. 특히 우리나라와 같이 3면이 바다인 반도국가나 영국, 일본과 같은 섬나라의 경우는 천혜의 바다를 활용한 해운(海運)의 의존도를 높여 물류의 시간과 비용의 절감을 꾀하는 것이 상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태여 국토를 종단(縱斷)하는 운하를 건설한다고 하는 경우에 예상되는 문제는 하나 둘이 아니다. 먼저 운하건설에 따르는 문제만 해도 만만한 것이 아니다. 운하를 건설하려면 먼저 하천구역을 준설(浚渫)하여 파고 넓힘은 물론, 구불구불한 자연상태의 하천을 가급적 직선화하고, 큰 배가 지날 수 있도록 하천에 걸려있는 기존의 대부분의 다리를 높이고 교각(橋脚)의 폭을 넓히는 일이 기본이다. 말이 쉽지, 국토를 몽땅 새로 짜는 것과 다름이 없으니, 경비는 둘째치고라도 생태계는 물론 생활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이루 헤아릴 수조차 없이 큰일이다.

어디 그뿐인가. 막대한 비용과 생태계의 희생을 치르면서 운하를 건설한다고 가정하더라도, 그 뒤가 예사 일이 아니다. 우선, 빈번한 준설이 요구됨은 물론, 수로의 직선화로 인한 장마철의 홍수 관리와 갈수기(渴水期)의 수량 관리가 문제로 등장한다는 것은 상식선의 일이다.

더욱 근본적인 문제는 자연환경의 훼손으로 인한 생태계의 파괴와 수질오염의 문제이다. 운하의 수로확보를 위한 하폭의 확대와 직선화, 주변 산야의 굴착 등으로 인한 생태계의 파괴와, 운하를 다니는 배가 사용하는 저질유(低質油)로 인한 수질오염을 피하기 어렵다는 것은 재론의 여지가 없는 일이다.

한번 훼손된 자연과 생태계는 원상으로 돌이키기 어렵다. 더욱이, 이 국토는 오늘을 사는 우리의 삶의 터전임과 동시에, 우리의 자손들이 대를 이어 살아갈 보금자리인 것이다. 나아가 우리 인간은 자연의 지배자가 아니라, 자연의 품속에서 다른 생명들과 어울려 살아가는 존재의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부처님께서는 잡아함의 『연기법경(緣起法經)』에서 “이것이 있기 때문에 저것이 있고, 이것이 일어나기 때문에 저것이 일어난다”고 하셨고, 중아함의 『불사경(不思經)』에서 다시 “법과 법은 서로 이익되게 하며, 법과 법은 서로 의지한다”고 하여 우주 만물은 인드라망의 매듭처럼 연기를 바탕으로 서로 관계되고 서로 의지하며 존재하는 것임을 분명히 하셨다.

이 세상에 저 홀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부디 ‘국민을 섬기는 정부’답게 국민의 소리에 귀 기울려 자연과 생명의 가치를 존중하고 나라의 미래를 흔들지 않도록 운하계획은 없었던 일로 돌렸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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