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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속의 ‘명박산성’

기자명 법보신문

[논설위원]손혁재 경기대 정치교육원장

광화문 네거리에 거대한 장벽이 생겼다. 광화문을 메운 촛불은 그 장벽의 이름을 ‘명박산성’이라 붙였다. 72시간 연속 릴레이 집회에 이어 6.10항쟁 21주년이 되는 6월 10일 ‘100만 촛불대행진’을 막기 위한 5.4m 높이의 컨테이너로 만들어진 명박산성은 10일 새벽 세워졌다가 11일 새벽에 헐렸다.

명박산성을 한 누리꾼은 이 대통령의 별명을 따 ‘쥐박산성’이라 부르기도 했고, ‘세계문화유산’이라든가 ‘국보 0호’라 부르면서 비아냥대는 누리꾼들도 있다. 명박산성이라는 말은 바로 인터넷 이용자들이 참여해 꾸미는 온라인 백과사전 위키피디아(ko.wikipedia.org)에 등재되었다. 위키피디아의 용어풀이는 “명박산성이란 2008년 6월10일 6·10 민주화 항쟁 21주년을 맞아 서울특별시 광화문 네거리에서 열린 대규모의 시위에 대비하여 광화문 네거리에 설치한 컨테이너 박스를 대한민국 네티즌들이 비하하여 부르는 말”이라고 되어 있다.

어쨌든 촛불대행진은 컨테이너 구조물을 넘어서지 않았다. 촛불의 청와대행을 막으려는 경찰의 시도는 성공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컨테이너 구조물이 막은 것은 촛불대행진이 아니라 이명박 대통령에게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해줄 것을 호소하는 국민의 소리였다. 컨테이너 구조물은 국민을 철저히 무시하고 국민의 소리를 전혀 들으려 하지 않는 이명박 정부의 비정상적인 정신 상태를 보여주는 상징물이다. 새 정부가 들어선지 100일밖에 되지 않았는데 촛불집회가 50일 가까이 끊이지 않고 열리는 것은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더 큰 문제는 이명박 대통령과 정부 여당 관계자들의 ‘마음속의 명박산성’이다. 이 대통령은 당선자 시절부터 자신의 생각과 다른 의견은 ‘반대를 위한 반대’라며 무시했다. 촛불집회에 대해서도 국민이 왜 뿔났는지 알아보려 하지 않고 “양초는 누구 돈으로 샀느냐”며 소리를 높였다. 원로들의 이야기를 듣겠다더니 종교지도자들을 만나서는 ‘재협상 불가’, ‘노무현 정부 탓’을 하는 등 민심을 읽으려는 노력을 전혀 하지 않고 있다. 촛불 배후에 주사파가 있다는 흘러갔어도 아주 옛날에 흘러간 노래들이 재탕되고 있다.

대통령에게 직언을 해야 할 참모들은 한술 더 뜨고 있다. 추부길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은 촛불집회 참가자들을 ‘사탄의 무리’로 몰아붙였다. 보도에 따르면 추 비서관은 한 기도회에서 “마치 모든 미국산 쇠고기가 광우병에 걸린 것처럼 순수한 학생에게 촛불을 주고, 마치 이 나라 정부가 미국인이 버리는 것을 국민에게 먹이는 것처럼 호도하고 있는 세력이 거짓으로 이 세상을 움직이고 이 나라를 흔들고 있다”며 “사탄의 무리들이 이 땅에 판을 치지 못하도록 함께 기도해 주시기를 감히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파문이 일자 목사이기도 한 추 비서관은 ‘사탄의 무리’라는 표현은 교회에서 기도문 마지막에 통상적으로 하는 일반적 용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발언의 앞뒤 흐름을 보면 ‘사탄의 무리’라는 말은 촛불집회 참가자들을 일컫는 표현으로 볼 수밖에 없다. ‘사탄’은 기독교에서 ‘극단의 악’을 지칭하는 표현이다. 국정 운영에 참여하고 있는 대통령 비서관이 국민을 ‘사탄’이라고 부른 것은 어떤 해명으로도 용서받지 못할 일이다.

각종 여론조사 결과는 대통령 지지율이 10%대로 떨어졌음을 보여준다. 48.7%의 지지율로 당선되었고, 취임 직후에는 60% 안팎의 지지율을 얻었던 대통령이 불과 반 년 만에 10%대로 추락했다. 앞으로 20-30% 지지율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분석들이 나오고 있다. 만성적인 통치불능 상태에 빠졌다는 전망도 있다. 6.10 100만촛불대행진에는 1987년 6·10 항쟁 이후 최대 규모인 수십만명의 시민이 모였다. 2004년 3월에 열렸던 노무현 대통령 탄핵규탄 촛불집회보다도 훨씬 많은 숫자이다. 그 까닭은 무엇일까? 이명박 대통령이 국민의 신뢰를 잃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명박 정부는 민심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있다. 아니 읽으려 하지 않는다.

이명박 대통령과 정부 여당은 촛불집회 참가자를 ‘사탄’으로 보고 촛불집회에 배후가 있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대통령이 국민과의 사이에 설치한 ‘마음속의 명박산성’을 헐지 않는다면 국민은 이명박 대통령에게서 더욱 멀어질 것이다.

손혁재 경기대 정치교육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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