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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이라는 역설

기자명 법보신문

[세심청심] 보경 법련사 주지 스님

불편함 견디는 자세가 진리의 마음
스스로 행복해야 남도 행복하게 해

『울지 않는 늑대』라는 책이 있다. 캐나다의 동물학자인 팔리 모왓(Farley Mowat. 1921년생, 캐나다의 자연학자 겸 작가)은 젊었을 때 캐나다 야생생물보호국의 연구에 참여했다.
‘순록을 닥치는 대로 잡아먹고 인간을 해치기까지 하는 늑대에 대한 조사’로 캐나다의 북극 지역에서 1년가량을 보내게 되는 데, 이 책은 바로 그때의 기록이다.

순록은 늑대에 먹힐 위험을 피해 목초지를 따라 하루에 50km의 속도로 여름동안 거의 3000km를 이동한다. 순록을 찾지 못하면 늑대는 굶어 죽기 때문에 이 둘은 일생을 쫓고 쫓기며 살아간다. 당국은 순록을 보호하기 위해 늑대의 개체수를 대폭 줄여주었다. 그런데 순록은 시름시름 생기를 잃어갔다. 위험이 사라지자 그들은 긴장이 풀어졌고 더 이상 달릴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었다.

이런 비슷한 얘기는 많다. 노르웨이의 어부들은 정어리를 잡아오는 어선의 수조에 메기를 몇 마리 넣어준다고 한다. 메기는 정어리의 천적. 이 불편한 동거가 예민한 정어리를 죽이지 않고 부두까지 싱싱하게 데려오는 비결인 셈이다.

“군자는 무일(無逸.편안하지 않음)에 처하여야 한다. 먼저 노동(稼穡)의 어려움을 알고 그 다음에 편안함을 취해야 비로소 백성들의 고통(小人之依)을 알게 된다.”

이것은 주공(周公)이 군주의 도리로서 무일(無逸)하여 안일에 빠지지 말 것을 조카 성왕(成王)에게 경계시켰던 말이다. 주(周)나라 경영철학이랄까? 노동하는 사람의 고통을 체험하고 그 어려움을 공유하여 일체감을 형성하자는 게 ‘무일사상(無逸思想)’이다.

1957년과 80년대에 중국 공산당은 하방운동(下方運動)을 전개했다. 당 간부나 관료들을 농촌이나 공장에 내려 보내 일정기간 노동에 종사하게 하고, 군 간부들은 병사들과 같은 환경에서 생활하게 함으로써 인민의 삶의 현장을 체험토록 하는 것이었다. 마오쩌둥은 인민과 괴리된 지도층으로는 거대한 중국을 이끌어가는 게 난망하다고 본 것이다.

작금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지지도가 한자리 수까지 떨어지기도 했으니 갓 출범한 정권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 권력을 가진 입장에서는 정책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듣기 좋을 리 없다.

그래도 마음을 열고 귀를 귀울여서 입장 차이를 줄여나가야지, 독선적인 자세로는 계속 저항에 직면하지 않겠는가? 생각해보면 이것도 ‘괴로움’의 하나이다. ‘苦’에 해당하는 인도말은 ‘dukkha’로, ‘du’는 ‘배반하다’, ‘어긋난다’는 뜻이 있고, ‘kha’는 ‘하늘’이나 ‘공허함’을 뜻한다. 세상의 이치와 어긋남으로 인해 생겨나는 상실감 내지 불만족스러움이 고통임을 가리킨다. 그리고 이 ‘고(苦)’는 고차원적인 우주적 질서 속에서 나오는 괴로움이지, 즐거움의 반대로서의 고통이 아니다.

‘불편함’을 견디는 자세가 진리의 마음이다. 다르마와 함께 살면서 행복과 평화를 느끼는 사람은 결코 남을 고통스럽게 하지 않는다. 스스로 행복하고 평화로울 때만이 남을 행복하게 할 수 있고, 이것은 단순한 말이 아닌 마음의 심연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자비이기도 하다.

더불어 살면 좋지 아니한가!

법련사 주지 보경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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