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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규 변호사의 세상읽기]

기자명 법보신문

타인 신앙도 존중할 줄 알아야 종교인
맹신은 신앙 모독이자 종교 아닌 미신

얼마 전 일간 신문에 어처구니없는 일이 보도된 일이 있다. 지난 6월 12일 강원도 태백시장이 태백산 정상의 천제단(天祭壇)에서 천제단의 훼손을 막지 못한 데 대한 용서를 비는 고유제를 올렸다는 것이다. 태백산 정상의 천제단은 신라시대부터 하늘과 단군 성조께 민족의 번영과 안녕을 기원하는 제를 오려온 곳으로, 국가지정 중요민속자료 제228호이다.

그러한 오랜 역사와 민속적 의미를 간직하고 있는 천제단의 일부가 5월 27일 특정 종교의 신도들에 의해서 훼손됐다는 것이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안 관할 시장으로서 유구한 역사를 간직한 문화유산을 제대로 지켜내지 못한 죄스러운 심정을 하늘에 고하고 앞으로 이러한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것임을 다짐하는 고유제를 마련했다는 것이다. 참으로 웃지 못 할 한심스런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하기야, 과거에도 비슷한 일이 심심치 않게 벌어진 것을 우리는 기억한다. 학교 교정에 안치된 단군상이 훼손된다거나, 동국대 교정에 세워진 불상에 붉은색 십자를 그려 넣는다거나, 성당 구내에 세워진 성모마리아상을 훼손하는 등 상식 밖의 일을 저지른 예가 한 두 번이 아니었는데, 이제는 멀리 태백산 정상까지 찾아가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을 훼손하기에까지 이른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얼마 전에는 청와대에 근무하는 목사 출신의 한 비서관이라는 사람이 공식 모임의 축사에서 촛불집회와 관련해 “사탄의 무리들이 이 땅에 판을 치지 못하도록 함께 기도하자”는 말을 해 말썽이 되자, 그것은 특별한 의미로 한 말이 아니라 교회에서 흔히 쓰는 말일 뿐이라고 변명했다. 이 모든 것이 무명에 가린 중생의 우치(愚癡)에서 빚어진 일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원래, 종교의 자유는 중세 유럽에서 볼 수 있었던 것과 같은 국교의 인정과 국가 권력에 의한 종교의 제한으로부터 벗어나, 인간의 신앙의 자유를 확보하는 인간의 정신 해방으로 인정된 것이다. 물론 이러한 종교의 자유는 자기가 원하는 종교를 선택하고 신봉하는 자유를 말하지만, 동시에 국가의 안위와 질서를 유지하고 다른 사람의 신앙과 권익을 존중할 책임을 수반하는 것임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자기가 신봉하는 종교 이외의 종교를 폄하하거나, 타종교의 시설이나 신앙의 상징물 등을 훼손하는 일은 어떠한 신앙적 의미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신앙을 모독하는 맹신적 행위다. 맹신은 결국 미신으로 통할 수 있는 것이다.

생명 있는 것을 무단히 죽이거나, 남의 것을 훔치거나 훼손하며, 사음을 행하고 남에게 해로운 말을 하는 등은 모든 종교가 다 같이 금하는 일일 뿐만 아니라 국가의 법에도 저촉되는 죄악에 해당한다. 그럼에도 감히 종교를 빙자해 천제단이나 단군상 등을 훼손하는 등의 행위를 저지르는 것은 첫째로 자기 종교에 대한 모독이자 무지를 스스로 폭로하는 것이 됨은 물론, 무단히 남의 물건을 훼손하는 죄가 되며 남의 종교를 폄하하고 그 종교를 신봉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 된다.

하기야 이 모든 일이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이니, 마음에서 우러나는 생각이 말로 표현되고 그 말이 곧 행동으로 나타난 것이다. 이처럼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짓는 죄업을 벗어나려면 마음에서 탐진치(貪嗔癡) 삼독(三毒)을 털어내기 위해 매 순간 정진할 뿐이다.

『법구경』을 보면 “마음은 모든 것의 근본이 되며, 마음이 주인이 되어 마음을 부리나니, 마음 가운데 악한 일을 생각하면, 그 말이 곧 행이 되어, 허물과 고통이 따르나니, 수례의 자국이 수례바퀴 뒤에 남듯 하니라.”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있어 우리를 숙연하게 한다.

우리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거울삼아 스스로 마음을 정화하도록 정진하되, 어리석은 소행을 감행한 가엾은 중생을 불쌍히 여겨 기회 있을 때마다 부처님의 자비광명이 그들에게 비출 수 있도록 배려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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