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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규 변호사의 세상읽기]

기자명 법보신문

우리가 안다고 믿는 건 대부분 헛 것
진실은 언제나 그 자리 그대로 있어

참된 것, 진실이란 과연 무엇일까? 많은 사람들이 진실을 찾아 헤매지만 그리 쉽게 잡히질 않는다. 우리가 흔히 쓰는 말에 ‘등하불명(燈下不明)’이라는 말이 있다. 등잔 밑에 어둡다는 말인데, 그 이유가 무엇일까? 가장 밝을 듯한 곳이 오히려 가장 어두우니 말이다.

너무 가깝고 쉬우면 도리어 찾아내기 힘든 예가 하나 둘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허상(虛像)에 매달려 일희일비(一喜一悲)를 거듭하는 나날을 보내면서, 망상의 끈을 놓지 못한다. 결국 무명에 찌든 알량한 지식과 경험에 뿌리박은 관념적인 삶 때문에 매일 매일이 얼룩지고, 무명 때문에 생긴 오해로 인하여 다툼이 끝을 모르고 이어진다.

우리는 나뭇잎은 푸르다고 한다. 그러나 나뭇잎의 참 빛깔이 무엇인지 우리는 잘 알지 못한다. 나뭇잎이 푸르게 보이는 것은 나뭇잎이 광선의 여러 빛깔을 모두 수용(受容)하면서 오직 푸른빛만은 배척하고 반사하기 때문에, 우리 눈에 들어오는 빛이 푸른빛 뿐이어서 그렇게 보일 뿐이다. 그런가 하면, 가을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나무 잎들이 붉은 또는 노랑 빛을 띠게 되고, 우리는 곱게 물든 단풍을 즐긴다.

그러나 그것은 나무 잎이 물든 것이 아니라, 추운 날씨 때문에 영양 공급을 받지 못한 잎들은 광합성(光合成)을 멈추어 엽록소의 생산을 중단한 탓이다. 내보낼 푸른빛이 없어지자, 여름동안 녹색(綠色)에 가려있던 빛깔이 나타난 것에 불과하다. 그러니, 단풍 빛은 새로이 든 것이 아니라 항상 거기에 그대로 있었고, 그것을 가린 푸른빛이 사라졌을 뿐이다.
우리가 눈이라는 감각기관을 통해서 보는 것은 항상 반사되는 빛, 곧 수용하지 않고 거부당한 빛이다. 그러니, 우리 눈에 들어온 빛깔은 그것의 참 빛깔이 아닌 셈이다.

어디 그뿐인가? 날씨가 더워지니 우리는 하루살이를 볼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다. ‘겨우 하루 이틀 살다 죽을 바에는 무엇 하려 태어났을까’ 하는 값싼 동정어린 생각을 하는 때도 있다. 그러나 알고 보면 하루살이는 이 지상에 나와 날기 전에 이미 물웅덩이에서 1년 남짓을 애벌레로 생을 보낸 다음, 종(種)의 번식을 위해서 잠깐 나왔을 뿐이다. 지상에 나온 하루살이는 오직 다음 세대를 위한 번식작용을 한 다음에는 삶을 마치는 것이다.

매미의 경우를 보아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잘 알지도 못하면서 ‘운다’거나 ‘노래한다’고 멋대로 말하는 매미는 땅속에서 4, 5년을 굼벵이로 지낸 다음, 태양이 작열하는 한 여름에 지상에 나와 허물을 벗고 날게 되면 곧 다음 세대를 마련하고 죽어가는 것이다. 그러니, 무엇이 진실인지를 쉽게 알 수 없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렇게 보면, 우리가 제법 아는 체하는 것들이 대부분 헛것임을 알 수 있다.

모든 것은 사람이 관념적으로 인식한 것이지, 우리가 인식하는 것이 곧 실재는 아니다. 물리학자인 카프라(Capra)박사도 그의 저서에서 “현대 물리학적인 관점에서도 그들이 기술하는 ‘법칙들’을 포함해 자연현상에 관한 그들의 이론 모두가 인간의 마음의 소산(所産), 즉 실재 그 자체라기보다 실재에 관한 우리의 개념도(槪念圖)의 속성이라고 여기고 있다”고 쓰고 있다. 결국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현대 과학적 견해에 의해서도 그 정당성이 밑받침된 예라고 할 수 있다.

『화엄경』 십지품(十地品)에는 “진실한 이치를 알지 못함으로 무명이라 이름한다(於第一義諦不了故 名無明)”는 말이 있다. 무명에 가린 중생들은 무엇이 진실인지도 모른 채, 오늘도 오욕에 집착하여 헤어나지 못하고, 매일을 티격태격하며 보내고 있으니 한심스럽기 짝이 없는 일이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 탓이다. 진리는 언제나 거기 그대로 있으니 말이다. 우리는 무엇이 진실한 것인지를 참답게 알아 허상(虛像)을 쫓는 우(愚)에서 벗어나야 하겠다.

이상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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