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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퇴임 서울대 사학과 최병헌 교수[하]

기자명 법보신문
  • 교학
  • 입력 2008.09.16 15:22
  • 수정 2011.06.15 05:23
  • 댓글 0

“불교, 일제 잔재 ‘어용성’ 버려야”

교단의 생명은 화합과 청정성
국민 위해 목소리 높여야 할 때

지난 8월 29일 정년퇴임한 서울대 국사학과 최병헌〈사진〉 교수. 한평생 불교사 연구의 길을 걸어왔고 이제는 원로학자의 반열에 든 그가 ‘천년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한국불교는 어떤 모습일까. 지난 9월 5일 서울 관악구 신림본동에 위치한 자택에서 최 교수를 만나 이번에는 그가 말하는 ‘한국불교’에 대해 들어보았다.

 

▷불교사학자로서 불교의 매력을 꼽는다면?
“부처님은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진리에 이르신 분으로 인류 지성의 정점이다. 그리고 불교는 인간이 발견한 가장 위대한 통찰이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원효, 의상, 의천, 지눌, 경허, 만해 등 많은 인물들에 대해 연구했는데 그 중 가장 애정이 가는 인물이 있다면?
“이분들 모두 시대적인 문제의식 속에서 나름대로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 치열하게 애썼던 위대한 인물들이다. 원효, 의상, 의천, 지눌, 경허, 만해 모두 뛰어난 인물이지만 개인적으로 의상 스님에게 가장 애정이 간다.”

 

▷대부분 원효를 더 높이 평가하지 않는가?
“물론 원효는 위대하다. 그러나 의상도 이에 못지않다. 부처님이 엄격한 카스트제도 하에서 교단의 평등을 구현했듯이 의상은 골품제사회 속에서 교단의 평등을 이루었다. 노비, 평민 출신들도 의상의 교단에서는 차별받지 않았으며 수행의 정도에 따라 모두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의상은 원효에 버금가는 인물이다.”

 

▷일각에서는 의상의 화엄사상이 왕권의 지배이데올로기로 작용했다는 지적도 있는데, 의상은 정말 정치적인 인물이었나?
“폭 좁은 견해다. 의상은 권력과 철저히 거리를 두었다. 여느 고승대덕들이 경주에서 활동했던 것과는 달리 그는 소백산 등 외곽에서 제자들과 함께 각론하며 지냈다. 왕이 토지와 노비를 줄 때는 ‘평등’과 ‘탁발’을 이야기하며 단호히 거절했고, 정치권력에 충고와 건의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정치에 깊은 관심을 가졌지만 결코 정치적이지는 않았다.”

 

▷그럼 당시 의상의 화엄사상이 어떤 의미를 갖는다고 보나?
“요즘 지역갈등 얘기하지만 그 때는 세 나라가 통일돼 함께 살아야 했던 갈등의 시대였다. 서로가 서로를 죽이다가 한 국가 주민으로 살아야 하는 상황에서 화합과 조화의 원리가 절실히 필요했고,의상의 화엄과 원효의 화쟁이 바로 그 역할을 했다. 특히 의상은 불교를 통해 삼국 통합의 철학적 기반을 제시했고 교단의 조화를 직접 보여줌으로써 통일신라의 사상적 기틀을 세웠다고 할 수 있다.”

 

▷고려말 태고 보우에 대해서는 유독 비판적으로 보는 것 같은데 그 이유는?
“그는 원효나 의상, 그리고 보조지눌 등과는 극히 대조적인 인물이다. 지극히 정치적인 인물로 자신의 영달을 위해 거대한 농장까지 경영했던 정치권력승이다. 당시 백성들에게 권문세족들과 태고보우는 권력을 쥔 두려운 존재라는 점에서 전혀 차이가 없었다.”

 

▷그렇더라도 오늘날 대한불교 조계종의 중흥조로 원나라 석옥 청공 선사의 법을 이은 인물이 아닌가?
“역사적인 기록으로 볼 때 그는 결코 모범적인 승가의 인물은 아니었다. 임진왜란 이후 당시 불교계의 필요성에 의해 부각된 인물일 뿐이다. 그런 인물이 현 조계종의 중흥조라는 점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면 현재 한국불교는 어떻게 바라보나?
“일제의 잔재가 아직도 너무 크게 남아있다. 승려가 결혼하고 고기 먹는 것도 일제의 영향이라 할 수 있지만 가장 큰 문제는 어용성이다. 일제 식민 통치에 그대로 협력하고 영합했던 습이 아직까지 남아있다. 정치권력에 무조건 충성하는 그게 바로 식민지의 가장 큰 잔재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지난 50~80년대 암울한 시절 불교계는 무엇을 했나. 지금까지 불교교단 차원에서 한국의 발전과 민주화를 위해 공헌한 점이 무엇이 있는가. 호국불교라는 이름으로 정치권력과 영합해 자신의 이익만 추구했던 것은 아니었는지 반성해야 한다. 10.27법난이 그렇듯이 정치권력은 달콤하지만 언젠가 커다란 재앙이 될 수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최근 종교편향 문제를 놓고 이명박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데 이를 보더라도 예전의 불교가 아니라고 볼 수 있지 않나?
“내가 보더라도 현 정부의 종교편향은 심각하고 불교계로서는 억울하다고 할만하다. 그리고 이것을 시정하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도 어느 정도 타당하다. 그러나 만약 종교편향으로 불교계가 피해를 보지 않았다면 이렇게 나왔겠나. 다수의 국민들을 위한 불교계의 외침인가 아니면 불교계 자신의 이익을 위한 외침인가. 이젠 불교계가 자신의 이해관계를 떠나 다수 대중을 위해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거기에서 불교의 힘이 생겨나고 대중들로부터 신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바람직한 교단의 모습은?
“신라 의상 스님의 교단이 그러했듯이 누군가를 비판하기에 앞서 불교 교단 스스로 화합하고 청정해지려 노력해야 한다. 그것이 핵심이다. 조화롭고 모범적으로 잘 사는 모습을 먼저 보여줄 때 국민들을 이끌 수 있고 정치를 새롭게 바꿀 수 있다.”

 

▷앞으로 불교는 어떻게 될 것 같은가?
“불교는 오랜 전통과 저력을 가지고 있다. 그 저력을 발휘하느냐 못하느냐는 전적으로 오늘날 불교인들에 달려 있다. 역대 고승들이 당대 최고의 지성이었듯 불교계가 이 시대를 이끄는 지성들을 배출할 수 있도록 교육제도를 현대적으로 개편하고 투자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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