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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맥락에서 인도는 성악설”

기자명 법보신문
  • 교학
  • 입력 2008.09.30 12:07
  • 댓글 0

박재현 교수, 김호성 교수 반박 해명

박재현<사진> 서울불교대학원대학 교수가 지난 9월 19일 열린 제7차 조계종 간화선 세미나에서 “인도불교는 성악설”이라고 주장한 가운데 김호성 동국대 교수는 본지 기고문을 통해 “인도불교 성악설은 어불성설”이라고 반박했다. 이에 박재현 교수가 다시 김호성 교수에게 띄우는 글을 보내와 이를 게재한다. 편집자


지면 관계상 인사는 후에 만나 뵙고 갖추기로 하고, 저의 발표논문에 대해 지적하신 내용과 관련해서 몇 자 적어 올립니다.

논문의 내용을 두고 두 분의 논평자께서 이미 인도의 사유전통을 성악(性惡)으로 규정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의견을 주셨습니다. 논평문을 건네받은 직후에 곧, 의사전달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관련부분을 소략하게 작성하여 오해를 유발한 점 죄송하고 아쉽게 생각하고 있던 차에 이렇게 교수님께서 기고하신 글로 말미암아 오해를 덜 수 있게 되어 다행으로 여깁니다.

불교를 포함한 인도의 사유전통이 인간에게 본래 내재된 신성(神性) 혹은 불성(佛性)을 확신하고 해탈 가능성을 신뢰했다는 점에 대해 이견이 있을 수 없습니다. 여래장과 불성은 말할 것도 없고, 불교에서 비판적으로 봤던 아트만(atman)조차도 인간의 본성에 대한 긍정적 시각과 신념을 내포하고 있다고 저 역시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인도철학에 대해 개괄적 이해만을 겨우 하고 있는 제가 볼 때, 인간 존재에 보낸 인도인들의 무한한 신뢰와 확신은, 사회와 역사적 존재로서의 인간보다는 종교적 존재로서의 인간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중국 고대철학에서 성악과 성선(性善)이 논의되는 범위는 역사와 사회의 범위 안에 한정됩니다. 그들은 종교성까지 염두에 두어 인간의 본성에 대해 논의할 수 없었거나,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릅니다. 아울러 그 내용이 인간 본성에 대한 형이상학적 논의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사회와 역사 속에서 인간의 존재상황을 어떻게 파악할 것인가 하는 포괄적 문제의식을 담고 있습니다. 제가 논문에서 사용한 성선과 성악의 개념 역시 이러한 전제를 깔고 있는 것으로 이해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삶의 고통은 윤회의 고리를 끊어내야만 벗어날 수 있다는 인도인들의 생각은, 언젠가는 그 고리를 끊어낼 수 있는 ‘종교적 인간’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보내는 동시에, 윤회하는 속에서는 끝내 어찌할 수 없으리라는 ‘사회적 인간’에 대한 회의를 보여준다고 저는 그렇게 여기고 있습니다. 제가 불교를 포함한 인도적 사유의 특징을 성악이라고 규정한 것은, 그 논의 범위가 사회와 역사적 맥락에 한정된다는 점 이해해 주시면 크게 다행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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