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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심청심]동중공부

기자명 법보신문

일선 스님 거금도 금천선원장

돌탑 주변에는 꽃무릇이 한줄기 붉은 마음을 토해내고 있다. 마치 꽃술 하나마다 전 우주를 포섭하여 화엄세계를 연출해 놓은 듯 장관을 이루고 있다. 텃밭에는 배추와 무우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어 둘러보는 재미에 더없이 넉넉한 저녁이다. 가을 산사마다 특색이 있어서 풍성하기는 마찬가지일지 몰라도 유달리 잘 정리된 텃밭에 채소가 자라고 있는 절에 가면 왠지 고향에 온듯이 포근함을 느낀다.

근대 한국 불교의 대선지식이었던 학명선사는 반농반선(半農半禪)운동의 깃발을 내걸고 철저히 정진했던 선각자였다. 스님께서는 내장사에 주석하시면서 선원청규의 제일 원칙으로 오전에는 경을 읽고 오후에는 농사를 지으며 저녁에는 참선을 하는 것으로 일과를 삼아 대중과 더불어 실천하며 철저히 수행을 하였다. 또한 조용히 앉아서 고요함을 지키는 좌선 일변도의 정진 분위기에서 탈출하여 활발한 경계를 통해서 나타나는 성품을 바로 자각하는 동중공부의 간화선 본래 정신으로 돌아가려는 선정신의 모범을 제시하였다. 돌이켜보면 일하면서 수행하는 아름다운 가풍이 언제부터인가 점점 사라지고 나니 수행의 향기도 아울러 사라지고 메마른 깨달음만 횡횡하는 것 같아서 아쉽기만 하다.

특히 간화선의 지침은 생활선이며 활발한 경계 속에서 작용을 돌이켜 본래 면목을 회복하는 운동이기에 옛 조사들은 손수 밭에 나가서 일하며 현장에서 공부를 경책하며 지도를 했다. 누구나 처음 발심하여 출가를 하게 되면 행자시절을 거치는데 그때가 공부하기에 참 좋았다는 말들을 하게 되는 것은 일속에서 온통 드러나는 일체 망념을 하심과 신심으로 몰록 돌이키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더러는 계를 받고도 신심을 놓치지 않으려고 일부러 공양주 소임을 자처하기도 하고 농감소임을 맡아서 행주좌와 어묵동정 속에서 밀밀히 화두를 챙긴 스님들이 많았다.

봉암사의 공주규약에도 명시하기를 일일부작 일일불식의 표치 하에 고생스런 노동도 불사한다고 적고 있다. 스님들이 공양주를 자처하고 밭에서는 채전을 가꾸면서 정진을 하는 모습은 후학들의 귀감이 되었다. 결제대중들이 울력으로 화목을 마련하고 오후 방선 시간마다 장작을 패는 소리가 죽비처럼 무명을 깨우던 시절이 눈에 선하다. 아궁이에는 불무더기가 이글거리는 화두 의단처럼 타오르면 어느덧 화광삼매가 되고 저녁연기는 수행의 향기가 되어 아랫마을로 내려가서 많은 사람들의 고달픈 마음을 감싸주고 품어줘서 안심 법문으로 작용하여 스님들은 복전이 되었던 시절이 그리워진다.

절집안이 옛날보다는 편리하고 풍요로워 졌는데 정진의 열기는 옛날과 같지 못하고 도반의 정도 성글어가는 것은 아마도 울력을 하면서 서로 땀을 흘리고 어려움 속에서 수행의 향기를 기르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세상에는 아직 끼니를 굶는 사람들이 있는데 수행 한다고 하면서 들어오는 대중공양에만 의지하여 동중공부를 단련하지 않으면 법난에서 살아남았던 선사들의 은혜를 등지게 될 것이다. 고요히 앉아서 선정에 치우친 공부로 오히려 졸음에 빠져 화두를 놓친다면 무슨 면목으로 부처와 조사의 은혜를 갚으며 출가할 때 목련존자처럼 부모를 제도해 달라고 하시던 면전을 볼 것인지 다시 한번 스스로를 경책해 본다.

요즘 미국 월가의 금융쇼크와 중국의 멜라민 식품 파동을 비롯 올해 일어났던 극심한 식량 파동은 깊은 산속에서도 피해갈 수 없는 현실이 되고 있다. 선원에서는 적어도 채전만이라도 가꾸어서 자급자족해야 할 것이며 산골 다랭이 묵전을 다시 갈아엎어 지혜의 씨앗을 뿌려 그간 나태했던 수행의 가풍을 다시 회복해야 할 것이다.
귀뚜라미 청아한 노랫소리에 가을이 점점 깊어가고 있다.

일선 스님 거금도 금천선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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