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고 있는 절은 노지(露地)에 약사대불이 모셔져 있다. 조석으로 다기에 물을 올리고, 사시에는 마지(摩旨)를 올리지만 이곳에는 일부러 생미를 놓고 있다. 지난겨울, 며칠을 눈이 녹지 않고 쌓여 있던 적이 있었다. 그때 나뭇가지에 앉아 있던 참새 몇 마리가 눈에 들어 와서 그 날부터 화단 안쪽의 돌을 헌식대 삼아 쌀 몇 주먹씩을 놓아주었다. 처음엔 며칠이 지나도록 입질이 없었다. 그러다 점점 없어지는 속도가 빨라지더니 여름에 접어들면서는 마지를 올리기 위해 통로의 문을 열고 나가는 시간쯤이면 수 십 마리의 참새들이 기다리곤 했다. 그렇다고 헌식대에 무턱대고 날아들지는 않았다. 가지의 높은 곳에서부터 몇 단계를 거쳐 내려앉고서야 먹이에 입을 댔다. 그리고 주위에 누가 있건 없건 한 번에 오래 머물러 있지 않고 날아올랐다가 내려앉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참새가 존재하는 방식 같았다.
나는 신이 나서 사람들에게 ‘참새 길들이기’에 대한 철학(?)을 자랑하곤 했었는데, 우리 사이에 불편한 일이 생겨났다. 이 참새들은 굳이 나를 기다리지 않고 미리 올려놓은 불기(佛器)에 날아들어 먹어대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수각의 물속으로 잠수하듯 들락거리며 물을 흐려놓아 골치를 썩였다. 누가 ‘利로움’을 쫓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들의 학습 능력이 경이롭기도 했다. 그 이후로는 예불을 올릴 때만 불기 뚜껑을 열고, 끝나면 헌식을 해주기 때문에 다시 처음으로 돌아갔지만, 그들의 본능을 누르고 있다는 점이 맘에 걸린다면 걸리는 거다.
버락 오바마(Barack Hussein Obama)가 미합중국의 44대 대통령에 당선 되었다.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그의 말 하나하나에 감격의 눈물들을 흘리는 것을 봤다. 이것이 세속 정치의 힘이다. 그는 어머니가 항상 강조한 “네가 그렇게 하면 기분이 어떨 것 같니?”라는 간단한 원칙을 정치철학의 기본으로 하고 살아 왔다고 한다. 그의 당선은 인류 역사에 선거제도가 생겨난 이래 가장 혁명적인 사건일지도 모른다. 인간사회가 넘어야할 숙제중의 하나가 인종의 편견이고 보면 앞으로 세계는 더 평준화되고 각 사회구성원간의 간극은 더욱 좁혀질 것이다.
한 민족이 자신을 인식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며, 자신의 약점을 알고 자신의 어두운 면을 반성하는 것은 더욱 그렇다. 세계경제의 위기와 함께 기존의 브레턴우즈체제를 재정립하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이것은 1944년 7월 서방의 44개국 지도자들이 미국의 브레턴우즈에 모여 세계금융질서를 합의했던 것인데, 미 달러 중심의 금태환과 제도의 도입, 그리고 IMF의 설립이 주 의제였다.
작금의 미국-EU간의 ‘새 금융질서’에 대한 주도권의 결과를 예단할 수는 없으나, 미국중심의 시장경제에 변화가 오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중국의 5·4운동 시기 루쉰(魯迅, 1881~1936)은 ‘생존하는 것, 배부르게 먹는 것, 발전하는 것’등의 세 가지를 당면과제로 선언했었다. 인간사회는 ‘먹고 사는’ 문제가 사회변혁을 촉발하는 동력이 되었다. 미 헌정 사상 첫 흑인 대통령의 탄생도 결국 경제에 대한 불만족에서 기인하였다. ‘즐거움’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헤도네(hedone)’는 ‘달콤함’을 뜻한다고 한다. 행복한 상태란 만족해서 즐거운 상태고, 행복엔 즐거운 느낌이 수반된다고 할 수 있다.
이 꿈을 말릴 수 있겠는가.
법련사 주지 보경 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