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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규 변호사의 세상 읽기]

기자명 법보신문

세월은 지금 살고 있는 사람들의 관념
나라는 집착 버리면 오가는 것은 없어

동지가 지나고 나니 2008년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해도 앞으로 열흘이 채 남지 않았다. 다른 해 같으면 송년회를 하느니 제법 야단법석을 떨 만도 한데,  올해의 연말은 비교적 조용한 것 같다. 하기야, 송년회를 하지 않아도 어차피 2008년의 달력은 다하는 것이고, 해넘이니 해돋이를 보지 않아도 매 한가지 해가 매일 우리 머리 위에 뜰 것이니 크게 아쉬울 것도 없다.

오늘도 가까운 외척이 일부러 전화를 걸어와 벌써 한해가 다 간다고 푸념 섞인 아쉬움을 말한다. 마치 소중한 것이 간곡한 만류에도 아랑곳없이 훌쩍 떠나기라도 하는 듯이 안타까워한다. 어디 그 사람만의 일인가? 그러나 생각해 보면 과연 세월이 가는 것인지? 가면 어디로 어떻게 갔다는 이야기인지? 선뜻 종잡을 수 없는 말이다.

사실 세월은 오지도 않고 가지도 않은 채 매일 그대로 반복되고 있는데, 그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그렇게 보고, 그렇게 말하고 있을 뿐이다. 사실 알고 보면 한 순간도 쉬지 않고 변하며 가고 있는 것은 사람들이다. 사람은 매 순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수의 세포가 죽고 또 새로 생겨나는 과정을 거듭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고, 그 하루하루의 삶은 결국 죽음을 향해 한발 한발 다가가고 있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정작 가는 것은 사람 스스로인 것이지, 세월이 아니다. 마치 빠른 속도로 달리는 기차를 타고 있으면 자기는 가만히 있는데 주변 풍광이 지나가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것과 같은 일이다.

사람은 참으로 편리하고도 자기중심적인 존재인 것 같다. 해가 뜨면 일어나고 해가 지면 잠자리에 들던 사람들이 하루를 시간으로 나누고, 30일을 한 달로, 12달을 일 년으로 정하여 그에 맞추어 생활을 계속하다 보니, 어느덧 그것이 관념화되어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의례히 그런 것으로 치고 지내게 된 것을 우리는 잘 안다. 그러나 하루의 시간만 보아도 2000여 년 전까지는 한 시간이 오늘날의 4시간의 길이에 해당해 하루가 여섯 시간으로 이루어졌었고, 그 후 한 시간이 오늘의 2시간으로 되어 하루는 12시간이 되었고, 인간의 생활속도가 빨라짐에 따라 다시 오늘날의 시간으로 단축되어 하루는 24시간이라는 관념이 확립된 것이니, 시간처럼 편리한 것도 없는 것 같다.

한편, 달(月)이나 해(年)의 구획이 없고 따라서 그것을 표시하는 달력도 없다고 치면, 올 해도 없고 갈 해도 없이 같은 하루하루의 반복에 그칠 것이니 얼마나 지루한 삶이 될 것인지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그렇게 보면, 빠르던 늦던 떼어낼 달력이 있고 보낼 해와 맞이할 해가 있어 좋다.

다만, 그 알량하고 실체도 알 수 없는 ‘나’라는 것에 대한 집착만 내려놓으면 된다. 사람들은 자기 스스로도 잘 알지 못하는 나라는 것을 내세우고, 모든 것을 자기중심적(自己中心的)으로 보고 또 판단한다. 그렇다 보니, 언제나 그 나라는 것을 중심에 두고 다른 모든 사람은 나에 대한 너로 치며, 나는 부동(不動)이고 너가 움직이는 것이 된다.

세월이 간다는 것도 마찬가지 논리이다. 나는 가만히 있는 것이니, 가는 것은 세월일 수밖에 없다. 나에 대한 집착 때문에 그 나의 부실(不實)의 핑계를 세월이 빨리 감에서 찾는 셈이다.

부처님께서는 잡아함의 『아난사리불경(阿難舍利弗經)』에서 “어떤 중생이 이 의식이 있는 몸과 바깥 경계의 일체 현상에 대하여 ‘나’와 ‘내 것’이란 소견과 ‘나’라는 교만과 집착하는 번뇌가 없어 마음이 해탈하고 지혜가 해탈하여 현재에서 증득한 줄을 스스로 알아 원만히 머무르면 그는 이 의식 있는 몸과 바깥 경계의 일체 현상에 대하여 ‘나’와 ‘내 것’이란 소견과 ‘나’라는 교만과 집착하는 번뇌가 없기 때문에 그는 마음이 해탈하고 지혜가 해탈하여 현재에서 증득한 줄을 스스로 알아 원만히 머무르게 되느니라.”라고 ‘나’에 대한 집착을 버리도록 이르셨다.

우리는 괜히 가느니 오느니 할 것 없이, 오로지 바른 소견을 갖고 앞만 보고 정진할 일이다. 이 해의 달력이 다 되면 새 달력을 갈아 걸면 되는 것이다. 거기에 2009년이라는 또 한 해가 이미 와 있지 않는가. 

이상규 변호사 skrhi@rhilaw.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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