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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강에서 달을 보다]천자암조실 신광 활안 스님

기자명 법보신문

바다 속 고요가 성난 파도 지탱하는 힘

조계산 호랑이로 유명한 신광 활안(神光 活眼) 스님이 주석하고 있는 천자암을 오르는 길은 만만치 않았다. 달랑, 카메라 가방 하나 메고 오르는 길이었지만 숨이 턱턱 막혀왔다. 가파른 이 길을, 활안 스님은 천자암 불사를 위해 지게에 기왓장을 짊어지고 오르내렸다. 지고한 원력이 아니고는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이다.

부모님을 일찍 여읜 활안 스님은 몸마저 허약해 고통 속에서 살아야 했다. 오죽하면 허공을 향해 ‘이렇게 나를 죽이려면 뭐 하러 태어나게 했느냐!’며 하소연 했을까. 그러나 그 고통이 1945년 전북 순창 순평사로 향하게 했다. 고통 받는 이 육신의 정체가 무엇인지 의문이 들었던 것이다.

출가 후 스님은 ‘나고 죽는 이전의 나는 무엇인가(生滅未生前 是甚)’ 화두를 들고 법주사, 수덕사, 상원사, 지리산 칠불암 등의 제방선원에서 정진했다. 그러던 중 1974년 구산 스님 권유로 천자암을 찾았다. 보조 스님이 주석했던 암자였지만 그나마 남았던 전각 한 채도 허물어져 가고 있었을 정도로 초라했다. 스님의 원력이 발현됐다. “깨닫지는 못했지만 밥값은 하자. 대 선지식의 정취가 남아 있는 도량을 일구는 일인데 뼈가 으스러진들 안 할 것인가!”

‘생멸이전 나’화두 들고
전국 선원서 용맹정진
폐관정진만도 10여 차례
80세 노장 지금도 도량석

낮엔 일하고 밤엔 참선에 매진했다. 가파른 산길을 오르내리며 양식은 물론 나무와 기왓장을 나르며 법당을 올렸고, 법왕루, 나한전, 종각도 들였다. 지금의 사격은 온전히 활안 스님의 원력으로 일군 것이다. 천자암에서 100일 동안 문을 걸어 잠그고 수행하는 폐관정진만도 10여 차례 해냈다. 세납 83세지만 지금도 새벽 두 시면 일어나 도량석을 하고 목탁을 치며 다섯 시까지 불자들과 함께 염불에도 정진하고 있다. 뿐만 아니다. 정초와 백중 때는 일주일 동안 하루 17시간씩 꼿꼿이 서서 목탁을 치며 정진하는 사분정진(四分精進)도 하고 있다.

천자암에 다다랐다. 법당 주련이 인상적이다.
현지를 통달한 일할로 만기를 굴복시키고(通玄一喝 萬機伏)
언어 이전의 대기로 법륜을 전하도다(言前大機 傳法輪).
법계의 달빛이 한 손바닥 안에 밝았으니(法界長月 一掌明)
만고의 광명 다함이 없네(萬古光明 長不滅).

천자암을 일구며 일념으로 정진한 스님이 50을 조금 넘겼을 때 밝아 온 소식을 전한 일 갈, 오도송이다. 활안 스님은 법문에서 ‘통현일할(通玄一喝)’, ‘대동태허(大同太虛)’, ‘밝아라.’, ‘뒷처리 잘 하라’는 말씀을 자주 한다. 오늘은 활안 대목(大木)에서 뻗어 나온 이 네 가지를 알아 볼 요량이다.

‘통현일할’과 관련된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일본 조동종이 활안 스님을 초청했을 때 일이다. 당시 활안 스님보다 두 살 적었던 조동종 종조를 만나 법담을 나눴다. 무척이나 점잖고 복도 많은 분으로 보였다고 한다. 잠시 후 활안 스님은 지필묵을 가져오라 한 후 글 한수 써냈다. ‘통현일할 약정답 일방(通玄一喝 若正答 一棒)’ 굳이 해석한다면, ‘진리에 통달한 일언을 내놓아 보아라. 만약 답을 맞히면 한 번 때리리라.’ 그러나 그 종조는 반야심경에 나온 몇 마디를 써 보였다. 활안 스님은 통역을 통해 답이 아니라며 다시 써내라 했지만 신통치 않았다. 스님이 한마디 던졌다.

“어찌 그리 고구마 푹 삶아 놓은 것같이 맛이 없는가!” 며칠 후 총지사로 발길을 돌렸다. 그 곳에서 총지사 종조 스님을 만나기로 약속돼 있었지만 어찌 된 일인지 긴급한 일이 있어 출타 중이며 삼일 후에나 돌아온다 했다. 이에 스님은 조동종 종조에게 보인 글 한 수를 그대로 다시 써 주며 ‘대답을 기다린다’고 전했다. 물론 지금까지 답신은 없는 듯하다. 짧은 일정이었지만 활안 스님은 일본 불교를 이렇게 평했다.
“거창하지만 생기가 없다.”

활안 스님은 기자나 학자를 만났을 때 긴 말씀 안 하는 걸로 유명하다. 핵심 하나 말하면 됐지 더 하면 허물일 뿐이라는 선가 정통의 제접법을 따르는 것이리라. 특히 선지식이 학인의 역량을 알아보기 위해 던지는 선문(探竿影草)을 던지는 데 일가견이 있는 선사다. 염화실서 스님을 뵙자마자 어떤 물음을 던질지 예의주시 했다.

“왔으면 물어야지 왜 가만있어?” 이런! 벌써 간파당해 한 방 맞았다. 그래도 내친 김에 ‘대동태허’를 여쭈어보려 자세를 잡았다. 입을 열려는 순간 말문을 막아 버렸다.
“내 말은 녹음해 두어야 자료가 될 텐데.” 또 맞았다. 그래도 주눅들 필요는 없지 않은가! 녹음기를 가방에서 꺼내 전원을 켜며 입을 열려 했다. “날 볼 면목은 있는가!”
이쯤이면 손들어야 한다. 백전백패다. 중국의 보수 선사는 한 방장 스님으로부터 “부모가 낳기 전의 너의 본래면목은 어떤 것이냐?”는 질문에 막혔다. 어느 날 거리에 나갔는데 두 사람이 주먹다짐까지 서슴지 않으며 살벌하게 싸우고 있었다.

한참을 싸운 두 사람은 힘이 빠져 멍하니 서로의 얼굴만 보고 있었다. 그리고는 하는 말이 이랬다. “친구 볼 면목이 없구먼.” 이 한마디를 곁에서 듣고 있던 보수 선사는 단박에 알아차렸다. 활안 스님은 자신을 볼 면목을 묻는 게 아니라 너의 진면목을 조금이라도 알고 있느냐는 물음이다. 말문이 완전히 막히는 순간이다.

“그래, 그래. 가만있어 봐. 내가 얘기할 게.” 80 넘긴 노장이지만 목소리에 힘이 넘쳐 났다. 막힘없이 던지는 법설은 폭포수와 같았다.
“심량(心量)은 원래 대동태허 해. 하지만 내 본성 자성에 비하면 한 장막에 불과하지. 자성은 부동(不動)해. 그래서 이 자성 하나 잘 길들여 놓으면 누진법에서 대자유를 얻고, 밖으로는 유위법에서 무한한 행복을 불러 일으켜. 마음에서 판단력이 생기고 중심이 서면 주변이 여섯 심복(心腹)이 있음을 알게 돼. 여섯 심복을 굳이 말하자면 내 눈과, 귀, 코, 입, 몸, 생각이 하는 일이야. 이것들은 내 마음이 결정한 대로 복종하는 거야.

내가 이를 악하게 쓰면 악이 생기고 선하게 쓰면 선이 생겨. 또 내가 선하게 결정하면 이 여섯 가지도 선하게 뒷받침 해주고, 악하게 결정하면 악한 쪽으로 뒷받침 해. 그러니 내가 중심이 되어 설계를 잘 해야지. 무엇을 어떻게 설계할지는 자신이 알아서 해야 해. 누가 그려주지 않거든. 다만 참고해 볼 만한 설계도는 팔만대장경에 가득하니 그나마 다행이고 복 받은 거지. 그래, 이제 알겠지!”

자성 不動하니 길들이면
무한한 지혜광명 샘솟아
한 생명이 모든 생명 근원
생사일여 속 자신 보아야

활안 스님이 전하고 있는 ‘심량’은 단순히 마음의 무게를 뜻하는 게 아니라 막힘없는 광대한 마음을 이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심량은 대동태허한데, 자성에 비하면 한 장막에 불과한 것이라 한 것은 청정한 자성으로 쓸 수 있는 무한한 지혜와 복덕, 광명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마음의 중심은 또 어떻게 알고 잡아야 하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남았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어떤 방향으로 설계를 하라는 것일까?

“일체유심조라 했지. 마음이 천지자연을 창작해 내는 이치를 꿰뚫으면 적확한 판단력이 생겨. 거기서 다시 지혜가 나오지. 그 지혜가 잘 작용돼 밝아지면 광명이 되는 거야. 그러니까 네 몸이 처음 아팠을 때 왜 아픈지를 알면 약을 쓰지. 약 먹고 낫다고 끝났나? 아니야. 몸을 보충해야지. 잘 관리하면 전 보다 몸이 더 강해져. 심지어는 몸에서 빛도 나.”
스님의 말씀을 추측해 정리해 보면 이런 것이리라. 자신을 한 번 쯤 들여다보라.

고집멸도로 아픈 자신을 볼 것이다. 선지식과 경을 보며 그 약을 한 번 찾아 봐라. 부처님은 이미 연기법을 통해 그 해결의 실마리를 던지지 않았는가. 그 약은 밖에 있지 않고 내 안에 있으니 수행을 통해 자성을 밝혀 보라. 그러면 올바른 판단력과 함께 육근육식을 자유자재하게 쓸 수 있다. 그리하면 법에 어긋나지 않는 막힘없고 광대무변한 지혜와 자비광명을 발현할 것이다. 이런 가름이 맞는지 다시 여쭤보려 하자. 일이 터졌다.
“이제 좀 알겠지? 됐지. 그만하자! 더 하면 낭설이고 허물이야.”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었다. 조계산 중턱까지 오른 이 원력도 스님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그리 무용한 것은 아니지 않는가. 스님께 다시 한 번 간곡하게 요청했다. 우리 중생은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이 한 생을 설계할 지 말이다. 그런데 난데없는 선문이 들어왔다.
“너 입은 옷은 깨끗하냐?” 갑작스런 물음이라 주춤했다. “깨끗하다 그래라.” “깨끗합니다.”“정말? 한 번 빨아볼까?”

한 번 크게 웃으시고는 아이에게 말하듯 자상하게 하나씩 일러주었다.
“몰랐을 때는 생사가 둘이지만, 알면 생사는 하나요 공한거야. 이 몸뚱이도 마음의 의복 한 벌과 같아. 더러워지면 빨고, 헤지면 깁고, 못 쓰게 되면 미련 없이 버리고, 다시 의복 한 벌 장만해 갈아입으면 되는 거야. 과거가 정리되고, 현재는 나름대로 생성되고, 미래 설계 또한 되었다면 과거, 현재, 미래사는 내 한 생각이요, 내 부속물일 뿐이지.

내가 여기 이 생에 올적에는 빈손이었어. 그러나 상대를 녹슬지 않게 하고, 윤택하게 해 주며 살다보니 나 역시 보람을 느끼며 이 순간을 살고 있어. 사람들이 나와 상대로 만나는 것 같지만 한 생명은 모든 생명의 근원이고, 모든 생명이 곧 한 생명으로 연결 돼 있어. 이를 안다면 남은 물론 뭇 생명을 어떻게 괴롭혀. 이렇게 한 평생 살다 갈 거야.”
무슨 메시지를 전하려 하는지 감이 왔다. 비록, 활안대목에 뻗은 네 가지의 요체는 알 수 없었지만 그 나뭇가지 사이에 이는 바람 한 점은 느낄 수 있었다.

“이제, 그만해도 되겠지!” “예.” “거칠고 힘든 일을 당해 울고 웃어도, 속 마음 만큼은 고요해야 해. 바다 속 고요가 출렁이는 파도를 지탱하는 힘이 되잖아.”
천자암을 떠나기 전 보조 스님과 그의 제자 담당 국사가 천자암에 이르러 꽂은 지팡이가 싹을 틔워 큰 나무가 된 곱향나무 쌍향쌍수(천연기념물 제88호)를 다시 한 번 보았다. 두 나무서 불어오는 바람 한 점도 시원하게 느껴졌다.  
 penshoot@beopbo.com


활안 스님

1926년 담양서 출생한 스님은 1945년 순창 순평사로 출가해 5년 동안 행자시절을 보냈다. 종단이 혼란할 때인지라 1953년 수덕사에서 월산 스님을 은사로 뒤늦게 사미계를 받았다. 1958년 통도사에서 자운 스님을 계사로 비구계를 수지한 스님은 범어사, 용화사, 지리산 칠불암 등에서 정진했다. 순천 조계산 천자암에 주석하고 있는 스님은 지금도 용맹정진하며 납자들을 제접하고 있다. 현재 천자암 조실이며 조계종 원로회의 위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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