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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 입은 도둑은 없는가

기자명 법보신문

[논설위원 칼럼]방송작가 윤청광

조선시대의 청허당 휴정(淸虛堂 休靜) 큰 스님이 묘향산에 오래 머물고 계셨음으로 후세들은 서산대사(西山大師)라고 부른다. 그리고 바로 이 서산대사께서는 임진왜란 때 승군을 일으켜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하는데 앞장섰을 뿐만 아니라「선교석」「선교결」「삼가귀감」「선가귀감」등 수많은 글을 남겨 후학들의 눈을 밝혀주었다. 또 조선불교의 최고 거목이 되어 스러져가던 조선불교의 법맥을 일으켜 세우고 기라성 같은 수많은 제자들을 길러 냄으로써 조선불교의 미래를 활짝 열어놓은 분이다.

바로 이 서산대사는 「선가귀감」을 통해 이 땅의 출가 수행자와 이 땅의 불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간절한 경책의 말씀을 전하고 있다. “아, 불자여. 그대의 한 그릇 밥과 한 벌의 옷이 곧 농부들의 피요, 직녀들의 땀이거늘, 도(道)의 눈이 밝지 못하고서야 과연 어떻게 삭여낼 것인가!”서산대사의 경책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부처님께서 이르시기를 ‘어찌하여 도둑들이 내 옷을 꾸며 입고 부처를 팔아 온갖 나쁜 업을 짓고 있느냐’고 통탄하셨다”며 잘못 살고 있는 출가 수행자들을 다음과 같이 힐책하고 있다.

“말세의 비구에 여러 가지 이름이 있는데 ‘박쥐중’이라고도 하고, 또는 ‘벙어리 염소중’이라고도 하며 ‘머리 깍은 거사’ ‘지옥찌꺼기’ ‘가사 입은 도둑’이라고들 한다. 부처님을 판다는 것은 인과를 믿지 않고 죄와 복도 없다하며, 몸과 말로 물 끓듯 업을 짓고, 사람과 미움을 쉴 새 없이 일으키는 것이니, 참으로 가엾은 일이다.

중도 아니오, 속인도 아닌 체 하는 자를 ‘박쥐중’이라 하고, 혀를 가지고도 설법하지 못하는 자를 ‘벙어리 염소중’이라 하며, 중의 겉모양에 속인의 마음을 쓰는 자를 ‘머리 깎은 거사’라 하고 지은 죄가 하도 무거워 옴짝할 수 없는 자를 ‘지옥 찌꺼기’라 하며 부처를 팔아 살아가는 자를 ‘가사 입은 도둑’이라 하나니, 가사를 입은 도둑이기에 이런 여러 가지 이름을 얻게 된 것이니라.”

서산대사의 이 지엄한 경책을 앞에 놓고 오늘 부끄럽지 않을 불자는 과연 얼마나 될까? 서산대사 뿐만 아니라 우리 옛 스님들은 쌀 한 톨, 배춧잎 한 장, 간장 한 방울도 함부로 버리지 않았고 함부로 쓰지 않았으며 사찰에 들어온 시줏물은 어느 것 하나도 소중히 여기지 않은 것이 없었다. 불교가 이 땅에 들어온 이후, 오늘처럼 불교가 넉넉한 생활을 누린 적이 과연 있었던가 싶은 정도로 한국 불교는 지금 전대미문의 풍요와 호사를 누리고 있다.

먹는 것, 입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스님들이 최고급 대형 승용차를 굴리는 것도 보통지사가 되었고 몇몇 특출한 재주를 가진 스님들은 푸조에, 벤츠에, BMW라는 외국제 자가용을 자랑스럽게 굴리고 다니는 세상이 되었으며 한 통에 몇 십 만원을 넘은 초고가 차(茶)를 자랑스레 마시는가 하면, 서산대사도 부처님도 구경조차 못한 특급호텔에서 십수만 원이 넘는 식사비를 지불해가며 법회를 열고 초호화판 사우나에 드나들며 심지어는 최고급 자가용 트렁크에 몇백만 원 짜리 골프채 셋트를 항상 싣고 다니면서 걸핏하면 끼리끼리 골프까지 즐기시는 분들이 한분 두분이 아니라는 지적이 있으니, 과연 이런 분들은 ‘가사 입은 도둑’인가, 아니면 ‘머리 깎은 거사’들인가?

하루 한 끼의 죽으로 허기를 달래가며 견성성불을 위해 목숨 걸고 수행했던 옛 스님의 처절한 수행터 ‘토굴’은 이제 능력 있고 재력 있는 분들의 ‘별장’으로 둔갑했는가 하면, 토굴이라는 말이 무색할 지경으로 초호화판 별장처럼 온갖 시설에 호사를 누리고 있으니, 사찰에 들어온 정재는 과연 이렇게 제멋대로 탕진되어도 괜찮은 것인가?

아직도 우리 주변에는 끼니를 굶는 소년소녀 가장들이 수 없이 많고, 끼니를 거르는 독거노인들이 수없이 많으며, 갈 곳 없는 노숙자들이 수만 명을 넘는 판인데 억대가 넘는 외국제 자가용을 굴리고 다니면서 골프를 즐기고 수십만원 수백만원짜리 최고급 차를 홀짝거리는 수행자가 있다면, 이것이 과연 21세기 대한민국의 오늘에 불교인가, 불교가 제대로 잘 살고 있는 것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방송작가 윤청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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