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노 전 대통령 서거와 향후 과제

기자명 법보신문

[논설위원]손혁재 경기대 정치교육원장

아이콘이 사라졌다. 아니, 하늘로 올라가 별이 되었을까. 어둠이 짙을수록 별이 더욱 빛나듯이 시대가 어려울수록 그 아이콘은 더욱 빛나게 될까.

한때 ‘정치개혁의 아이콘’이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들은 건 일본 우토로에서였다. 일제에 강제로 끌려온 조선인노동자들의 합숙소를 둘러보던 중 서울에서 날아온 문자메시지. 노 대통령 서거를 알리는 짧은 메시지. 믿기지 않았다. 믿을 수 없었다. 그러나 잇달아 날아오는 여러 통의 문자메시지는 서거가 현실임을 일깨워주었다. ‘마구잡이정권의 출현과 개검의 칼춤을 구경한 우리는 공범자며 역사의 죄인’이라는 한 지역운동가의 메시지에는 문득 목이 메었다.

우토로에서 만난 한 할머니도 노 대통령에 대한 기억을 갖고 있었다. 고향인 경남 사천에 가보고 싶었으나 아직 가보지 못했다는 이 할머니는 우토로 문제가 해결된 것이 노 대통령 덕분이라며 고마워했다. 일본의 우토로까지 눈길을 보내고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풀었던 노 대통령은 5년 재임동안 얼마나 많은 업적을 남겼을까.

대통령으로서의 노무현은 그다지 긍정적인 평가를 받지 못했다. 지역주의와 극우족벌언론에 대해 비타협적 자세로 일관된 원칙과 소신을 지켰던 ‘서민 대통령’에게 국민은 많은 기대를 걸었다. 사상최대의 압도적 표차이로 당선됐다는 이명박 대통령보다 노 대통령의 득표율과 득표수가 더 많았다. 그러나 취임 초기에 걸었던 많은 기대는 얼마 지나지 않아 무너지기 시작했다. 거의 중상(中傷)과 저주에 가까울 정도로 폄하하는 족벌언론과 한나라당의 프로파간다가 노 대통령을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이라크에 파병을 했고, 경제와 국민의 삶에 엄청난 영향을 끼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무리하게 밀어붙였으며, 평택 미군기지 문제도 무리수가 많았다. 그러다보니 특히 진보진영에서는 무능과 비개혁으로 노 대통령과 참여정부가 실패했다고 평가하고 등을 돌리는 것이 보편적 정서였다.

이제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를 엄밀하게 해야 한다. 아직도 정치불신과 무관심이 강하지만 정치개혁 분야에서는 성과를 인정해야 한다. 검찰과 경찰, 정보기관 등 권력기관을 동원해 통치하던 나쁜 관행도 줄었다. 현 정부에 들어와 흔들리고 있지만 지방분권과 균형발전의 성과도 눈에 띈다. 현대사에서 미완의 과제였던 과거청산작업의 시작도 높이 평가한다. 지역주의 극복노력도 눈에 띤다. 민주주의적 리더십에 대해서는 이의가 별로 없을 것이다.

노 대통령의 지지를 떨어뜨린 가장 큰 원인은 경제를 망쳤고 이로 말미암아 삶이 더 어려워졌다는 ‘경제위기론’일 것이다. 국민이 체감하는 삶의 어려움은 컸지만 참여정부가 경제에서 실패했다고 단정하면 안 된다. 수출 3천억 달러 달성과 외환보유고 증가, 선진국 평균을 웃도는 성장률 등 지표는 매우 긍정적이다. 경제성장률 5%는 OECD에서 가장 높은 수치로 불황에서 회복됐다는 일본 경제성장률 2%의 두 배가 넘는다. 그런데도 경제파탄의 주범으로 몰린 것은 안타깝다.

국민장 기간 동안 나타났던 추모와 애도의 분위기를 노무현 대통령 개인에 대한 지지와 그의 업적에 대한 긍정적 평가로 간주할 수는 없다. 경제살리기를 제대로 못하는 현 정부의 무능과 서울광장을 에워싼 차벽이 상징하는 민주주의 후퇴에 대한 절망이 많은 국민을 봉하마을로, 분향소로 이끌었을 것이다. 다만 그의 죽음과 애도 과정을 거치면서 고인이 적어도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들에 대해서 진정성을 갖고 해결하려 노력했다는 점은 인식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제 그가 보여주었던 진정성을 갖고 그가 해결하지 못했던 과제를 실천하는 것은 남아있는 사람들의 몫이 되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살려내라고, 사과하라고, 진상을 밝히라고, 책임자를 처벌하라고 요구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그가 추구했던 가치들을 이루기 위해 해야 할 일을 찾아내는 것 아닐까.

손혁재 경기대 정치교육원장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