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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 통한 열린 불교가 보인다

기자명 법보신문

[논설위원 칼럼]채한기 상임 논설위원

부처님이 기원정사에서 머무를 당시 한 사내가 베푸는 방법에 대해 여쭈었는데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은혜를 아는 깨끗한 마음으로 베풀면 이 세상에서나 저 세상에서나 그가 있는 곳 어디라도 그림자처럼 복된 갚음이 따르리니 인색한 마음 버리고 조건 없는 깨끗한 베풂을 실천하라.” 자비의 마음으로 베푼다는 것은 베푼다는 상도 내지 않는 무주상 보시를 말한다. 직역한 어휘지만 ‘베푼다’에 잠시 눈을 돌려 보자.

언젠가 법정 스님이 서울 길상사 법문에서 말씀하신 일언이 지금도 생생하다. “베푼다는 것은 옳지 않고 ‘나눈다’라 해야 맞다.” 이 세상 그 누구도 나무 한 그루, 꽃 한 송이도 자기 것으로 완전히 소유할 수 없다. 또한 베푼다고 하면 이미 상대방 보다 많은 것을 갖고 있거나 좀 더 높은 직위를 갖고 있다는 아상이 전제된 것이므로 ‘베푸는 게’아니라 ‘나누는 게 맞다’라는 법정 스님의 말은 설득력 있다. 법정 스님의 일성이 있어서만은 아니겠지만 이후 교계 행사나 언론 보도에서 ‘베풂’이라는 용어는 점점 사라지기 시작했고 지금은 ‘나눔’으로 정착 되어가고 있다.

최근 신흥사가 ‘나눔을 행하는 향기로운 불사’라는 주제로 이색 취임법회를 봉행해 잔잔한 감동을 주었다. 취임법회의 주제를 설정한 것도 이색적이지만 ‘나눔을 행하는 향기로운 불사’라는 표제어가 신선한 충격이다. 향후 신임 주지 스님이 펼쳐 갈 신흥사의 청사진이 그대로 함축돼 있는 듯하기 때문이다.

신흥사 하면 ‘관광사찰’, ‘관람료 징수’라는 마땅치 않는 꼬리표가 따라다닌다. 일반 대중들의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이 역시 신흥사가 씻어야 할 오명 아닌 오명이다. 따라서 신임 주지의 역할이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두 말할 나위없다. 지역주민과 함께 호흡하는 신흥사. 대중과 함께 하는 신흥사로 거듭날 때 사람들의 마음 한 자락에 평온한 산사 하나가 자리할 것이다. 신흥사의 향후 나눔 운동이 어떻게 전개될지 기대된다.

올해 초 봉은사가 보인 행보도 맥락을 같이 한다. 사찰재정 투명화를 선언한 봉은사는 사찰 내에 쓰는 인건비나, 가람정비 비용을 대부분 동결하거나 축소하고 사회복지법인설립과 장학사업, 밑반찬 배달 사업 등에 전년 대비 30%를 증액한 20억여 원의 예산을 편성했다. 말 그대로 허리띠는 졸라매고 이웃돕기에는 큰 손을 내민 것이다. 이 역시 봉은사가 나눔의 운동에 본격적으로 뛰어 들겠다는 원력의 표현이다.

조계종이 야심차게 준비해 출범시킨 기부 법인 ‘아름다운 동행’이 상징하는 바는 크다. 국내외 재난 및 구호나 소외계층 지원, 통일과 환경운동 등의 대사회 활동에 대한 체계적이고 정기적인 지원 활동을 종단 차원에서 펼친다는 것은 바야흐로 불교계가 대사회 활동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겠다는 무언의 선언이다.

여기에 불교의 희망이 보인다. 그 동안 우리는 사회를 향해 ‘2000만 신도’의 종교라 호언해 왔다. 하지만 되돌아오는 것은 ‘사회활동에 참여 해 일익을 담당하라’는 메아리였다. 불교 국제구호, 복지, NGO 단체가 없어서가 아니다. 종단은 물론 각 교구본사나 일선 사찰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기에 사회에 비친 대 사회활동은 미비해 보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갇혀진 불교가 아니라 열린 불교로 나아가는 작은 움직임들이 속속 눈에 들어오고 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나눔 운동’이다. 작은 사찰에서는 바자회 등의 작은 행사를 통해, 큰 사찰은 복지 예산을 확충해 가며 나눔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주지 진산식 하나도 나눔을 위한 회향불사로 전개하는 작은 움직임. 그것은 세상과의 소통이며 불교의 새 지평을 열어가는 첫 걸음이다. ‘나눔 운동’은 이제 시작이다. 조계종, 한 사찰의 운동으로만 보지 말고 우리 종단은, 우리 사찰은 현 시점에서 무엇을 해야 할 지를 한 번 쯤 숙고해 볼 때다.

채한기 상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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