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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순간 우리는 깨어있었다”

기자명 안문옥
  • 사회
  • 입력 2004.08.10 16:00
  • 댓글 0

- 본지 기자 ‘틱낫한 스님과 함께하는 3일간의 수행’ 동참기

“고통도 즐거움을 깨닫게 되는 경험

피하지 말고 깬 마음으로 이겨내야”

3월 28일 천안 국립중앙 청소년 수련원. 틱낫한 스님과 함께 하는 3일간의 수행이 시작되는 날. 분노, 질투, 욕심, 시기 등 몸에 훈습된 풍진을 털어 낼 묘약이라도 받을 듯 사람들은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다.

수련생들은 스님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며 고개를 연신 젖혀 스님이 들어올 문을 바라본다.

틱낫한 스님이 보이자 300여명의 수련생들은 해변가의 파도처럼 출렁거린다. “키는 좀 작다” “사진하고 똑같다.” 여기저기 수군거리던 소음도 잠시 청아한 종소리가 울렸다. 웅성거리던 강당은 곧바로 고요한 적막에 휩싸인다.

“Good friends” 얼굴에 웃음을 가득 머금은 스님의 첫 법문은 이렇게 시작됐다. “어린아이와 함께 길을 걸을 때 아이를 살피지 않으면 많은 차들로 그 아이는 위험합니다. 만약 1분이라도 주의 깊게 아이를 살피지 않으면 사고가 일어납니다. 명상이란 그런 것입니다. 항상 자신을 보살펴야 합니다. 그것이 곧 마음챙김(mindfulness)입니다.”

스님의 법문이 진행되는 동안 예기치 않은 반응들이 일어났다. 곳곳에서 눈물을 훔치는 사람들. 일부는 깊은 명상에 든 듯 보였다. “나의 숨이 들어가고 나오는 것을 살피는 것이 바로 행복이고, 그것을 느끼는 이곳이 곧 정토입니다.”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울려 나오는 듯한 스님의 말은 현대인에게는 감동적이었다. 평소 틱낫한 스님을 존경해 플럼빌리지를 가고 싶었다는 이경자(54)씨는 “한국에서 스님을 뵐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정말 행복한 일인데 직접 수행을 지도해 주시고 법문까지 들으니 눈물이 저절로 흐른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점심 공양이 끝난 뒤 강당으로 모인 수련생들은 ‘온전한 휴식’이라는 낯선 수행을 만나야 했다. 소르본대학 박사 출신이라는 찬콩 (ChanKhong) 스님의 청아하고 잔잔한 목소리가 수련원 강당에 울려 퍼진다. 300여명의 수련생들은 천장을 향해 누운 상태로 찬콩 스님이 부르는 게송을 들으며 눈을 감고 명상에 잠긴다. “앞으로의 계획과 고민, 걱정을 접어두고 편안한 마음으로 지금 이 순간 자신의 숨이 들어가고 나가는 것에 집중합시다.” 스님은 “잠이 온다면 애써 잠을 쫓으려 하지 말고 그 순간 자신에게 충실하라”고 말한다. “잠이 들 때의 그 순간이 자신을 바라볼 수 있고 그 순간은 어느 때보다 행복한 시간 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드르렁 드르렁’ 코고는 소리가 들린다. 얼마나 지났을까. 찬콩 스님은 “Good morning” 이라며 조용하게 수련생들을 깨운다. 자신들이 깊은 잠에 빠졌다는 것을 그제야 알게 된 수련생들은 서로의 얼굴을 보며 멋쩍은 미소를 보낸다.

틱낫한 스님의 두번째 강연이 있던 시간. 스님은 두 번째 강연에서 플럼빌리지에 있는 스님 예를 들면서 ‘화’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언젠가 플럼빌리지에 있는 스님 중에 한 스님이 갑자기 사라졌다가 한참 후에야 돌아왔다. 사라진 스님을 찾던 스님들은 그 스님이 사라진 이유에 대해 묻기 시작했고 그제서야 스님은 ‘어떤 일로 무척 화가나 잠시 그 자리를 피해 다른 곳에서 명상을 하고 왔다’며 차분히 화난 이유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대화를 통해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충분히 나눈 뒤 그 스님은 다시 사라지는 일이 없었다”고 말하자 모두 한바탕 웃었다. 이어 스님은 플럼빌리지에서는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며 부처님께서 사라바스티 근처 아나따삔디까 사원에서 머물고 있을 때 말씀하신 화를 멈추는 다섯가지 방법에 대해 강연을 시작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강조했다. 화가 날수록 상대방의 말을 끝까지 듣고 차분히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라고.

걷기 명상에 앞서 체육관 앞에 서서 ‘숨을 들이쉬며’ 라는 찬불가를 부르며 율동을 시작했다. 틱낫한 스님의 율동은 마치 어린아이가 나비 흉내를 내듯이 가볍고 편안해 보였다. 마치 날개를 달고 훨훨 날아가 버릴 것만 같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발걸음도 그 동안 우리가 걷던 걸음과는 달랐다. 걷기 수행에서 주의 할 점은 ‘자신의 신경을 발바닥에 집중하라’였고 한발 내딛을 때마다 ‘도착했다. 고향에 도착했다를 마음속으로 되새기라’고 말하며 걸을 때는 걷기 이외에 다른 것은 행하지 말 것을 강조했다. 또 무엇보다 걷기 수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깨어있음’이라고 당부했다. 발걸음 하나하나에 집중하며 1시간 가량 계속된 걷기 수행에서 수련생들은 달팽이처럼 느릿느릿 걷는 스님의 뒤를 따라 자신의 호흡과 마음 챙기는 시간을 가졌다. 평소 바쁘게 움직여야하는 기자에게도 이 시간만큼은 내 자신을 살피고 깨어있을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어느덧 틱낫한 스님과 함께한 3일이라는 예정된 시간이 끝나가고 있었다. 틱낫한 스님은 2년 안에 다시 수련생들과 만나겠다는 약속과 함께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동안 배운 수행법을 열심히 공부하라”고 당부하며 “다시 만날 때는 더 많은 가르침을 주겠다”는 약속으로 마지막 법문을 마쳤다. 부모님과 함께 온 장준호(16)학생은 “짧은 주말이었지만 틱낫한 스님의 법문과 가르침을 평생 기억하고 싶다”며 아쉬움을 전했다.

스님과 기념촬영의 시간. 사진기사의 ‘자 이리로 앉으세요’라는 말과 동시에 스님의 옆에 서로 앉아서 사진을 찍겠다는 욕심으로 대중들은 순식간에 100m달리기를 하고 있었다. 순간 ‘아차’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일까. 수련생들은 모두 박장대소를 터트린다. 틱낫한 스님 옆에서 사진을 찍겠다고 스님 곁으로 달려오는 이들을 본 스님의 얼굴에도 은은한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안문옥 기자
moonok@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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