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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칼럼] 아름다운 뒷모습

기자명 법보신문

무슨 일이든 시작도 좋아야 하지만 끝이 좋아야 한다. 일찍이 부처님께서도 포교에 나선 제자들에게 “시작도 좋고 중간도 좋고 끝도 좋게 하라”고 당부하셨다. 무슨 일이든, 시작은 거창하게 했으나 갈수록 지지부진, 나중에는 흐지부지하다가 결국에는 용두사미가 되기 쉽다.

뿐만 아니라 크고 작은 조직의 권자에 오르는 사람도 그 권자에 새로 취임할 적엔 거창하고 아름답게 첫 발을 내딛지만 자칫하면 나중에는 그 권자에서 내쫓기기도 하고 굴러 떨어지기도 하고 온갖 추잡한 몰골을 만천하에 드러낸 채 비참한 퇴장을 해야 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이 세상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감투가 있지만 거창하고 화려한 취임식을 가졌던 수많은 감투들이 더럽고 추악한 모습으로 내쫓기고 굴러 떨어지고 자명하는 모습을 우리는 수없이 지켜보아 왔다.

어떤 대통령은 끝없는 욕심을 더 채우려고 3선 개헌을 했다가 국민적 저항에 부딪쳐 하야하지 않으면 안 되었고 또 어떤 대통령은 영구집권을 꿈꾸다가 부하의 총탄에 생을 마쳤는가 하면 또 어떤 대통령은 그 무시무시한 대통령의 권좌에서 내려오자마자 두 손목에 쇠고랑을 차고 감방에 갇히는 수모를 당하기도 하였고 또 어떤 대통령은 권자에서 내려온 뒤 또 다른 권력의 압박 때문에 스스로 몸을 던져 생을 마감하기도 했다. 어디 그뿐이었던가? 크고 작은 수많은 권좌에 앉았던 수많은 높은 사람들이 취임 때와는 달리 더럽고 치사하고 불쌍한 꼴로 인생을 망친 경우를 우리는 수없이 보아왔다.

우리 불교계도 예외가 아니어서 그 동안 불교 종단의 수장 자리에 올랐던 ‘큰 스님들’께서 영광을 누리고 명예를 드날리고 존경을 받기는커녕 종권 다툼의 와중에서 더러는 억울하게, 더러는 당연하게 패가망신의 수모를 겪는게 다반사였다.

권좌에 취임할 적에는 성스럽고 거룩하고 우뚝한 모습이었으나 권좌를 떠날 때에는 추하고 초라하고 비굴하고 치사하기까지 한 처량한 모습을 보여주기가 십상이었다. 그리고 이런 서글픈 모습이 우리 불교계의 가슴 아픈 실상이었다.

그런데 2009년 10월 30일, 우리 2천만 한국의 불자들은 한국 불교의 참신한 새 역사가 열리기 시작한 반갑고 기쁜 광경을 감격적으로 목격하였다.대한불교조계종 제32대 총무원장 지관 큰스님이 담담하게 임기를 마치고 수많은 종도들이 참가한 가운데 감동적인 퇴임식을 갖고 감사와 아쉬움의 눈물 속에 총무원을 떠나는 ‘감동의 고별’을 보여주신 것.
한 사람의 일생은 그 사람의 시신이 관 속에 들어간 뒤에야 진가가 드러나고, 어떤 권좌에 올랐던 사람의 진면목은 그 사람이 그 권좌에서 내려온 뒤에야 드러나는 법. 권좌에 취임할 때 바치는 찬사와 헌사는 아첨과 아부가 되기 쉽지만, 그 사람이 권좌에서 물러나 떠날 때 그 사람의 아름다운 뒷모습을 향해 뿌리는 눈물과 한숨과 아쉬움과 찬탄은 참다운 인간성의 발로가 아니겠는가?

총무원장 재직시에 이룩한 업적을 낱낱이 거론해 아첨할 생각은 추호도 없으나, 권력에 굽신거리지 않고 당당한 불교의 모습을 끝까지 지켜주신 그 한가지만으로도, 그리고 “한번 더 하시라”는 권유와 유혹을 단호히 뿌리치고 미련없이 권좌에서 내려온 그 맑음 한 가지만으로도 우리는 지관 큰스님께 감사와 존경의 삼배를 기꺼이 올리고 싶다.

총무원장 퇴임식이 열린 것도 실로 얼마만인지 감동스런 일이지만, 수많은 종무원과 불자들이 큰스님의 퇴임에 아쉬움과 감사의 눈물로 작별의 마당을 흥건히 적셨다는 것은 미래의 한국불교에 희망과 기쁨의 빛으로 전해져 온다. 대한불교조계종 제33대 새 총무원장으로 취임하신 자승 큰스님도 지관 큰스님의 맑고 향기로운 선비정신을 그대로 계승하여 한국불교의 새 역사를 새롭게 써주시길 간절히 바라면서 지관 큰스님의 아름다운 뒷모습에 최대의 존경과 감사를 드린다.

윤청광 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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