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생태’ 누구 탓인가
‘위기의 생태’ 누구 탓인가
  • 김호기 교수
  • 승인 2004.08.10 1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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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2일은 ‘물의 날’이다. 우리 인간에게 꼭 필요한 이 물을 마시는 것에도 그 동안 작지 않은 변화가 있어 왔다. 어릴 적 시골에 살 때는 우물물을 마셨다. 두레박으로 길어 올린 우물물은 언제나 차고 시원했다. 그러다 도시로 나와서는 수돗물을 마셨다. 약품 냄새가 솔솔 풍기는 것이 처음에는 다소 역겨웠지만 보리차로 끓인 수돗물은 이내 적응이 되었다.

나이가 들어서는 언제부턴가 물을 사먹기 시작했다. 크고 작은 패트 병에 담긴 물은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한 생활필수품이 되었다. 어릴 때를 돌이켜 보면 놀라운 변화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마음놓고 물을 마시기도 어려운 것이 요즈음 우리네 삶이다. 이러다 언젠가는 공기마저 사먹어야 할 지 모른다.

이렇게 우리 삶의 공간인 환경이 커다란 위기에 처해 있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 환경 오염을 낳은 이유는 두 가지다. 먼저, 무절제한 생산과 소비는 환경을 빠른 속도로 파괴해 왔다. 대기 오염, 수질 오염, 토양 오염 등 각종 오염은 물론 산성비, 오존층 파괴, 지구 온난화 등과 같은 환경 위기는 생태계를 훼손시켜 왔다.

환경에 대한 인간들의 이기적인 의식은 생태 위기를 낳은 또 하나의 원인이다. 개인의 소유가 아니라 공동의 자산이란 환경의 고유한 특징은 집단무의식적으로 생태계를 파괴하는 결과를 가져 왔다. 자신에게 직접적으로 피해가 오지 않는다고 해서 저지르는 환경 훼손은 머지 않아 감당하기 어려운 재앙으로 부메랑처럼 되돌아오기 마련이다.

이 환경위기에 대한 진단과 처방은 흔히 환경주의와 생태학으로 나뉜다. 먼저 환경주의는 환경위기의 원인으로 도시화, 산업화, 환경파괴적 산업구조 및 소비구조를 지목한다. 이들에 따르면, 현재와 같은 자원이용이 지속되면 머지 않아 성장의 한계에 직면하기 때문에 성장과 환경이 조화될 수 있는 새로운 발전 전략이 요구된다. 과학과 기술은 이 지속가능한 발전을 가능케 하는 핵심 조건으로, 기술발전을 통해 자원 고갈을 해결하고 환경오염을 감소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달리 생태학은 환경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환경과 인간, 환경과 사회간의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생태학은 환경위기의 근본 원인으로 근대의 이원론적 세계관과 대량생산 및 대량소비의 자본주의 생산체제를 지목한다. 따라서 이들은 생산형태는 물론 기술·문화·생활양식에 이르기까지 현재의 사회관계와 세계관이 근본적으로 재편될 때에만 생태계 위기가 극복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요컨대 환경주의가 환경위기에 대한 온건한 처방을 모색한다면 생태학은 근본적인 대책을 촉구한다. 특히 생태학은 우리 인간에게 내재된 소비 욕망을 변화시키지 않는 한 환경보호는 피상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환경보호를 위한 각종 정책이 추진되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생태계가 점차 악화되고 있는 현실은 이들의 주장에 무게를 싣고 있다.

현재 우리가 직면한 환경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제도의 개혁이 중요하다. 환경친화적인 기술의 선택, 폐기물의 재활 및 폐휴지의 재생, 그리고 무엇보다 경제 영역을 생태적으로 재구조화하려는 포괄적인 정책이 요청된다. 뿐만 아니라 환경에는 국경이 없는 만큼 국가간의 협력 또한 활성화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런 제도개혁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대한 세계관의 변화다. 인간과 자연을 분리시키고 자연을 인간의 욕구 충족의 수단으로만 생각하는 한 환경위기는 치유될 수 없다. 인간과 자연이 동등하게 하나의 세계를 구성한다는 생태적 자기의식을 가질 때에만 환경위기는 극복될 수 있다. 이런 생태적 자기계몽을 어떻게 이룰 것인가에 우리 환경의 미래가 달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호기 교수(연세대 사회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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