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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칼럼] 출가자의 부모

기자명 법보신문

중국 당나라의 동산양개(洞山良价:807~869)스님은 어릴 때 장난을 치다가 왼쪽 발가락 하나를 잃었다. 그는 출가하여 도를 깨닫기 전에는 부모를 만나지 않겠다고 편지를 보냈는데 이를 보고 울던 어머니는 눈이 멀고 말았다. 눈 먼 어머니는 아들을 만나기 위해 스님들의 출입이 많았던 초제사(招提寺) 앞에서 지나가는 스님들의 발을 씻겨주고 있었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아들을 만날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이 이야기를 전해들은 양개스님은 어머니 앞에서 오른발을 씻게 하고, 왼발은 상처가 있다고 하여 씻지 않았다.

이상하게 여기던 차에 마을 사람들이 방금 그 스님이 당신의 아들인 양개스님이라고 하였다. 이 소리를 듣고 강을 건너는 양개스님의 뒤를 따라가다가 물에 빠져 죽으면서 해탈의 시 한수를 남겼다고 한다. 이러한 어머니의 세족과 양개스님의 어머니에 대한 간절한 시는 『동산어록(洞山語錄)』(대정장47권 516쪽)에 전해지고 있다.

출가자는 부모를 잊는 공부를 하지만, 그 부모는 자식을 오매불망 잊지 못한다. 소납도 집을 떠난 지 40여년이 되다보니 제대로 공부도 하지 못하면서 부모를 멀리하여 왔다. 마치 그것이 올바른 수행자인양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몇 해 전에 철이 들기 시작하였다.
이대로 가다가는 부모님의 초상 때나 일가친척과 지인들을 만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니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어머님의 팔순을 핑계로 만남의 자리를 마련하여 양친을 모시고 어른들에게 공양을 올린 적이 있었다.

그로부터 1년 뒤 아버님이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지난 여든여덟의 연세로 정월초하루날 새해에 왕생하셨다. 한 생 동안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나시어 일제시대에는 보국대 강제징용으로 일본 북해도의 알 수 없는 탄광에서 수많은 동료들이 죽어 갔지만, 용하게도 살아 오셨다고 한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서 한국전쟁에 나가 결국 크게 다치고 후송되어 목숨을 건지게 되었다.

한 팔을 잃고도 못하는 일이 없었으며, 부모를 봉양하고, 형제간을 다독이며, 자식을 잘 키웠는데, 느닷없이 큰 아들이 출가를 하겠다니 말을 잇지 못하셨다. 그저 “너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만 하시면서 출가를 허락하셨다. 어쩌다가 전화라도 드리면 자식이라고 말을 하대하지 않으시고, 재가거사의 도리를 다하려고 노력하셨다. 항상 “나무아미타불” 염불하시라는 말 이외는 드릴 말이 없었다. 그런데 출가한 아들의 이 부탁을 잊지 않으시고 자나 깨나 염불을 하셨다고 한다.

그런데 어른의 몸이 좋지 않다는 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달려갔더니 우리스님 오기만을 기다렸다고 한다. 아들이 나타나자 안심하는 모습이었다. 산소마스크를 끼고도 ‘나무아미타불’을 염하시면서 병원에서 생신을 맞이하였다. 외손녀가 직접 만든 축하 케이크를 흐뭇하게 보시면서 하루를 보내고, 병원에 오신지 삼일만인 이튿날 새벽에 운명하셨다. 바로 생신날이 제삿날이 되고 말았다. 염불하시면서 가시는 모습은 참으로 아름답고 편안하셨다. 온 가족들에게 부처님의 힘이 얼마나 크며, 아미타불의 위신력이 어떠한가를 보여 주셨다. 전 가족이 포교가 된 셈이다.

그동안 소납은 출가하여 수행정진하고, 유학가고, 대학에서 가르치면서, 정토사를 운영하다보니 생사가 하나인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하였다. 부모에게는 염불하라고 하면서 자신은 게을리 하였다. 그러나 아들의 한마디를 법으로 생각하여 평생토록 염불하여 임종을 맞이하면서 생사일여(生死一如)의 모습을 보여 주신 것이다. 오신 날이 제삿날이 되었으니 이보다 더 분명할 수 있을까? 나에게 한 방망이를 치신 것이다. “너는 생사일여를 하였느냐. 나는 극락국으로 간다”라고 하신 것 같다.

보광 스님 동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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