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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칼럼] 아이티 지진의 비극

기자명 법보신문

지난 해 12월 22일 카리브해의 섬나라 아이티에서 규모 7.0의 지진이 발생했다. 이 지진으로 서반구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아이티는 참담한 피해를 입었다. 지진이 발생하기 전 아이티는 버림받은 나라였으나 이제는 더 이상 나라라고 할 수도 없다고 외신은 보도하고 있다. 아이티 지진의 비극을 몇 가지 측면에서 고찰할 수 있다.

첫째 엄청난 사망자의 규모이다. 20세기 이후 20만 명 이상의 대규모 사망자가 발생한 지진으로는 오직 1976년 중국 당산지진과 2004년 수마트라 인근 해저에서 발생한 지진들을 들 수 있다. 지진학에 “지진이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 건물들이 죽인다”라는 격언이 있다. 아이티 지진의 대규모 인명피해는 건조물에 지진을 견딜 수 있는 내진설계(耐震設計)가 되어있지 않은 것에서 비롯한다.

1994년 캘리포니아의 노드리지(Northridge)에서 발생한 규모 6.9 지진으로 단지 58명의 사망자와 7000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아이티 지진과 거의 같은 규모의 지진이었지만 그 피해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경미했었다. 그 까닭은 이 지역의 건물들은 내진설계가 되어있었기 때문이다. 내진설계는 상당한 경제적 비용을 수반한다. 세계 최빈국인 아이티에 이러한 경제적 부담을 감당할 만한 국력이 없었다. 이점이 아이티 지진의 비극이다.

둘째 이 지진이 수도부근에서 발생하여 국가 통제기능이 마비된 것을 들 수 있다. 지진재해 역사상 한 나라의 수도가 이렇게 철저하게 파괴된 예를 찾아보기 어렵다. 1923년 동경부근에서 지진이 발생하여 14만 여명이 사망했다. 피해가 너무 커서 당국은 수도를 다른 곳으로 옮겨 새로운 도시를 건설할 것을 고려했다고 한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자 살아남은 가게가 다시 열리고 상업이 정상화되었다.

이번 아이티 지진으로 포르토프랭스는 도처의 무너진 상가에서 약탈이 자행되는 등 무법천지가 되어버렸다. 며칠 째 굶주린 시민들이 식품을 조달하는 구호차량에 폭도처럼 달려들었고 심지어 물까지도 사치품이 되고 말았다. 통제기능을 잃어버린 아이티 정부는 무력하게도 사태수습을 외국의 힘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 또한 아이티지진의 비극이다.

지진학적 측면에서 아이티의 지진위험도는 캘리포니아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아이티와 캘리포니아는 각기 북아메리카판과 카리브판 그리고 태평양판의 경계에 위치하여 두 지역이 불가피하게 대규모 지진의 엄습을 받게끔 되어있다. 따라서 아이티의 건조물들에 적절한 내진설계를 하지 않는 한 이번 지진과 유사한 피해는 앞으로도 반복하여 발생할 것이다. 가난한 아이티가 자력으로 내진설계를 한다는 것은 요원한 문제이다. 외신에 의하면 아이티를 부흥시키기 위한 국제적 협력방안이 논의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외부의 지원으로 빈국인 아이티가 부국이 될 수 있을까? 그것이 어렵다는 것이 아이티 지진의 가장 큰 비극이라고 할 수 있다.

하버드대학의 갈브레이드 교수는 그의 저서 ‘대중적 빈곤 (The Nature of Mass Poverty)’에서 아이티와 같은 세계적 빈국의 문제를 심도 있게 다루었다. 그는 그런 나라들의 대중적 빈곤의 원인으로서 부패한 정권, 무능한 관리, 열악한 사회적 인프라와 개선에 대한 국민들의 의욕상실 등을 들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구조적인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는 한 어떠한 외부의 경제적 지원도 빈국을 구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답답한 갈브레이드는 이민을 빈국을 구출하는 해결방안의 하나로 제시하고 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아이티 지진에 언급하면서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눈에서 우리 자신들을 바라본다”라고 했다. 전 세계인들이 부처님이 설한 동체대비(同體大悲)의 정신을 가질 때, 비탄과 절망에 빠진 아이티국민의 눈빛을 잊지 않을 때 그들을 진정으로 도울 수 있는 좋은 길을 발견하게 될지 모르겠다.

이기화 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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