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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성’ 초의선사 새 자료 무더기 발굴

기자명 법보신문
  • 교학
  • 입력 2010.07.19 14:59
  • 댓글 0

박동춘 소장 동국대 박사학위 논문서 공개
서책목록, 편지, 시 등 새 자료 13건
초의 스님 새 저술명 및 탕법도 확인
선차 복원 배경은 추사 등 ‘경화사족’

‘한국의 다성(茶聖)’으로 불리는 초의(1786~1866) 스님의 사상과 학문적 배경을 알 수 있는 『일지암서책목록(一枝庵書冊目錄)』이 발견됐다. 또 스님이 처음 『동다행(東茶行)』으로 붙였던 책 명칭이 어떻게 『동다송(東茶頌)』으로 바뀌었는지를 알 수 있는 서간문을 비롯해 당시 내로라하는 많은 사대부들의 차에 대한 탁월한 이해가 초의 스님을 통해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는 자료들도 무더기로 쏟아졌다.

박동춘(58·사진)  동아시아차문화연구소장은 최근 동국대대학원 선학과에서 취득한 박사학위 논문인 「초의선사의 다문화관 연구」에서 『일지암서책목록』을 비롯해 추사 김정희의 ‘주상운타(注箱雲朶)’, 유정의 ‘지본묵서(紙本墨書)’, 윤치영의 ‘대광명전신건기(大光明殿新建記)’, 정학연의 ‘지본묵서’, 석훈의 ‘지본묵서’, 운고의 ‘지본묵서’, 변지화의 ‘지본묵서’, 허련 ‘지본묵서’ 2건, 정학연의 ‘유산시첩(酉山詩帖)’과 ‘일속산방기(一粟山房記)’, ‘다비계안(茶毘契案)’ 등 획기적인 자료를 공개했다.

이들 새로운 자료 중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단연 초의 스님의 유품들을 기록한 『일지암서책목록』이다. 초의 스님이 입적한 직후 제자인 서암 스님에 의해 기록된 이 목록집은 가로 15.5cm, 세로 31.5cm 크기로 총 15매로 구성돼 있으며, 「서책목록」, 「첩책목록(帖冊目錄)」, 「주련목록」, 「명한시초(明翰詩抄)」, 「산업물종기(産業物種記)」, 「선사답기(先師畓記)」등으로 각각 분류돼 있다.

 
조선후기 대표적인 지식인 신위가 초의차를 찬탄하고 있는 「남다시병서」.

먼저 초의 스님의 장서 총 91본을 수록하고 있는 「서책목록」에는 『금강경』 등 불교 경전과 조사어록은 물론 『주역』, 『논어』, 굴원의 『초사』와 당송대 시문, 운율사전, 시에 대한 비평서, 역사서, 지리 전문서, 자신의 저술인 『초의선과(草衣禪果)』, 『선문사변만어』, 『다신전』 등이 포함돼 있다. 이를 통해 스님은 불교에 국한되지 않고 유가경전이나 역사, 지리 등에도 깊은 관심을 가졌음이 사실로 드러났다.

또 「첩책목록」에 수록된 서책은 총 56본으로 스님과 교류했던 사대부들의 시첩, 필첩, 간첩(簡帖)이 기록돼 있다. 여기에는 다산 정약용의 서첩 10본을 비롯해 정조의 사위이자 당대의 문장가였던 홍현주 서첩, 추사 김정희, 김명희, 박영보, 이광사, 조희룡, 이삼만, 김옥 등의 첩책목록이 있어 초의 스님과 사대부들의 교유범위를 잘 보여주고 있다. 또 「주련목록」은 초의 스님이 소장한 ‘주련목록집’으로 모두 28종을 확인할 수 있으며, 이 중에는 청나라 옹방강과 엄치욱 등 당대 최고의 석학 이름도 명시돼 있어 초의 스님이 청나라 학자들과도 활발히 교류했음을 알 수 있다.

이어 「명한시초」에는 총 86종의 서책이 기록돼 있다. 이들 대부분 불서지만 『원시(元詩)』, 『고문(古文)』, 『당시』, 『두시배율(杜詩排律)』 등 시집도 상당한 양이 수록돼 있다. 또 육우의 『다경(茶經)』이 적혀 있어 초의 스님의 차 이론의 토대가 『다경』임을 알 수 있으며, 풍수 혈맥도가 들어 있는 『직지원진(直指原眞)』도 포함돼 있어 스님이 풍수에도 큰 관심이 있었음이 밝혀졌다. 특히 스님의 저술인 『동다송』과 함께 『다보서기(茶譜序紀)』가 기록돼 있어 이 또한 초의 스님의 새로운 저술이 확실시되고 있다.

박 소장은 “『다보서기』는 스님이 당송명대의 다서를 섭렵함으로써 다도의 이론적 체계를 완성했음을 보여준다”며 “초의 제다법은 차의 이론적 토대를 정립하고 동시에 이를 토대로 자신의 실증적 체험인 제다를 통해 자득한 것으로 여기에서 초의차가 완성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초의 스님이 제주도로 유배 가는 김정희를 위해 직접 그린 ‘제주화북진도(濟州華北津圖)’.

이와 함께 초의 스님이 일상에서 사용했던 물품들을 기록한 「산업물종기」도 주목할 만하다. 스님이 사용했던 다구의 재질과 종류, 찻잔의 유형 등이 세세히 기록돼 있어 스님의 음다법의 요체를 파악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차생활 전반을 살펴볼 수 있다. 박 소장은 “이 목록으로 알 수 있는 중요한 사실은 열탕으로 우려내는 탕법의 기준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라며 “1970년대 차문화 운동이 시작된 이래 지금까지 탕수를 식혀 차를 우리는 탕법이 유행했는데 이는 초의 스님의 탕법과 큰 차이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이번에 처음 공개된 변지화의 서간문은 『동다송』의 초기 표제명인 『동다행』이 언제 무슨 이유로 바뀌었는지를 명확히 밝혀주고 있다. 이 자료에 따르면 『동다행』을 초의 스님이 처음 저술해 당시 진도 목사였던 변지화에게 보냈고 그가 다른 사람을 시켜 필사하는 과정에서 오류가 생기게 됐다. 이에 변지화는 잘못된 부분을 표시해 스님에게 바로 잡아줄 것을 부탁했으며, 이때 초의 스님이 『동다송』이라 이름을 바꾼 것으로 드러났다.

또 시(詩), 서(書), 화(畵)의 삼절(三絶)이라고 불릴 만큼 탁월한 문재를 지녔던 조선후기의 대표적인 지식인 신위(1769~1845)가 지은 「남다시병서(南茶詩幷書)」도 자료적 가치가 대단히 크다. 7언 40구의 장시로 이 책에는 스승과 제자가 함께 초의차를 마시고, 한국 차의 연원 및 초의가 500년 만에 차를 다시 복원했다는 사실과 우리 차의 우수성을 칭송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동춘 소장은 기존 자료들과 함께 이들 새로운 자료들을 토대로 초의 스님의 생애, 다도정립과 선다(禪茶)사상, 북학파 경화사족(京華士族)들의 초의차 애호 현황, 초의 스님의 선다 계승 문제를 새롭게 조명하고 있다. 박 소장은 이를 통해 초의 스님은 차에 대한 이론과 실제를 겸비한 선승으로, 스님의 실로 높은 다도관이 제다를 통해 차의 오묘한 실체인 초의차로 실현됐음을 밝혔다. 특히 그는 초의차가 경화사족들에게 차에 대한 관심을 촉발시킴으로서 이들이 우리 차의 우수성을 폭넓게 인식하는 계기를 마련했으며, 초의 스님에 대한 이들의 강력한 지지에 힘입어 한국 차문화가 중흥될 수 있었음을 구체적인 자료들을 통해 규명했다.

박 소장은 “초의 스님의 다도관은 흔히 ‘다선일미(茶禪一味)’, ‘다선일여(茶禪一如)’ 등으로 말해졌으나 이 용어는 근거가 제시되지 않은 채 사용돼 왔다”며 “초의 다도관은 추사가 초의차의 경지를 표현한 ‘다삼매(茶三昧)’, ‘명선(茗禪)’, ‘전다삼매(煎茶三昧)’ 등으로 정의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강조했다.

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동다송』의 초기 표제명인 『동다행』이 왜 바뀌었는지를 밝혀주고 있는 변지화의 서간문(위). 정약용의 장남인 정학연과의 교유를 알 수 있는 서간문(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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