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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연 스님 비문 복원 고서연구가 박영돈 선생

‘일연선사의 꿈’30년 탁본 연구로 되살려내


탁본한 흰 글자에 터럭 끝만한 손상도 가지 않도록 돋보기 안경을 끼고도 다시 확대경까지 들여댔다. 그리고 용의 눈에 점을 찍듯 온 신경을 손끝에 모아 조심스레 덧칠을 해 나갔다. 탁본한 글씨들이 명확하게 보이도록 하는 이번 가묵(加墨) 작업에 그가 혼신의 노력을 기울이는 데는 남다른 까닭이 있다. 한국 서지학계 원로인 서여 선생의 간곡한 부탁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지난 30여 년간 자신이 쏟아왔던 일연 스님 비문 복원 연구의 결정체였기 때문이다.

밤과 낮을 잊은 채 그는 비와 바람으로 퇴색해버린 글자들을 되살리는 작업에 몰두했다. 선(禪)의 경지가 따로 없었다. 일단 무아의 경지에 들면 붓에 먹을 듬뿍 칠해 미친 듯이 칠해나가도 하나의 실수도 없이 진행되고는 했다. 고요히 정신집중에 몰입하는 그 자체가 선이라는 생각도 들면서 어렴풋하게나마 수백 년의 시공을 넘어 일연(一然) 스님과 대면할 수 있었던 것이다. 박영돈(66) 선생. 그는 탁본과 고서 연구를 통해 스러져간 역사의 자취를 복원해내는 재야 서지학자이며, 금석학자이다.

최근 그가 30여 년간 계속해왔던 보각국사 일연 스님 탁본 연구성과를 토대로 비 앞면(碑陽) 1977자와 뒷면(碑陰) 310자를 합쳐 모두 2287자를 비문이 제작됐을 당시 집자됐던 왕희지 글자체로 복원해 그 결과물을 [불교미술](제16집)에 선보였다. 이로써 삼국유사의 저자인 일연 스님의 비문 복원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국졸 학력이 전부인 선생은 흔히 말하는 강단 교육을 체계적으로 습득한 학자가 아니다. 오히려 정원사와 은행 수위(서무)로 반평생을 넘게 살아왔다. 그러나 옛 전적에 대한 호기심으로 출발했던 취미활동이 점점 본업으로 바뀌면서, 이제는 오히려 ‘재야’ 학자란 호칭이 무색할 정도로 탁본 연구에 있어서는 저명한 학자로 익히 알려져 있다. 선생은 지난 75년 1월 자신이 수집한 자료와 논문을 모아 정리한 [한국문화재관계 문헌총목록]을 발간함으로써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았고, 비록 경제적 이유로 사양은 했지만 문화재 위원으로 위촉받기도 했다.

또 조선 세조 때 서화가 강희안의 ‘양화소록’ 초판본을 발굴힌 것을 비롯 ‘해동가요’ 등을 찾아 소개함으로써 결과적으로 한국 사학계에도 큰 공헌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큰 선생의 공로는 일연 스님 비문을 복원함으로써 잊혀졌던 삼국유사의 저자의 생애를 역사의 안으로 다시 끌어 낸 것이라 할 수 있다. 실제 70년대 말까지만 해도 일연 스님에 대한 자료는 거의 없었다.

게다가 고려 충렬왕 21년 왕희지 글자체를 집자해 세웠던 스님의 비마저 임진왜란을 거치며 깨지고 부서지고 글씨가 지워져버려 원형이 거의 사라진 상태. 따라서 비문의 탁본을 찾아 원형을 복원하지 않는 한 위대한 저술가이며 사상사였던 일연 스님에 대한 진면모는 알 수 없었던 것이 당시 현실이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선생은 일연 스님 비문과 관련된 탁본들을 찾고 발굴함으로써 학계에 일연 스님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켰던 것이다.

일연 스님과의 만남을 ‘운명’이었다고 말하는 선생이 스님의 비문 연구에 천착하게 된 것은 70년대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주말이면 자주 찾던 서울의 한 고서점에서 우연찮게 여기저기 닳고 찢겨나간 탁본 한 장을 구하면서부터. 선생은 당시 검토를 거듭했으나 해독에 실패하자 창고에 보관하고 있다가 10여 년 후 황수영 전 동국대 총장과 인연이 닿아 그에게 옛 탁본을 보여주게 된다. 결국 황 박사로부터 “일연선사 비 탁본의 일부인데 비문 복원에 무척 소중한 자료”라는 대답을 듣게 된다.

선생은 소중한 문화유산을 곁에 두고도 몰라봤다는 무능함과 함께 이를 계기로 탁본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됐다. 이후 삼국유사나 일연이라는 말이 나오는 기록은 닥치는 대로 읽었다. 심지어 서점과 대학 도서관에서 10종의 삼국유사 이본(異本)과 관련논문을 구해 읽기도 했다.

고서점과 국내도서관은 물론 해외 소장 목록을 뒤지면서 비문과 관련된 자료를 수집해 나갔다. 그리고 이를 대조 검토하면서 한 글자 한 글자 맞춰나갔다. 90년대 후반 마침내 비음 1725자 중 4글자를 제외한 모든 글자를 완성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난해 11월말에는 마모도가 적은 탁본 글씨들을 조합해 누구나 알아볼 수 있는 선명한 비문을 마침내 대중에게 회향할 수 있었던 것이다.

깊게 패인 주름과 반백의 머리. 자신의 반평생을 일연 스님 비문 복원을 위해 기꺼이 바쳤고 그 지나간 날들이 참으로 행복했다는 선생. 이제 그에게 남은 유일한 소망이 있다면 여법한 일연 스님의 비를 복원하는 일이다. 그것이 곧 우리의 역사를 잇는 길이며, 나아가 후세 사람들로 하여금 우리 문화에 대한 자긍심과 정체성을 찾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후학들의 의무라 믿기 때문이다.



사진 황도 기자·글 이재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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