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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해제 [상]

기자명 법보신문

나무아미타불은 불교의 필연적 귀결
정토신앙이야말로 가장 순수한 불교

야냐기 무네요시(柳宗悅, 1889~1961) 선생은 당대 최고의 미술평론가로 그가 만년에 불후의 걸작 ‘나무아미타불’(1955년)을 집필했다는 사실은 그리 알려지지 않았다. 본지는 일본불교사연구소(소장 김호성)의 번역으로 ‘나무아미타불’을 매주 게재하며, 본격적인 연재에 앞서 김호성(동국대 불교대학 교수) 소장이 2회에 걸쳐 ‘나무아미타불’에 대해 간략히 소개한다. 편집자


왜 “나무아미타불”이라 염해야 하는 것일까? “나무아미타불” 염불에는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산스크리트 문법지식을 동원해서 살펴보면, “나무아미타불”은 아미타부처님께 귀의합니다라는 뜻이 된다. 하지만 그것만은 아니다. 그것은 그 말이 책 속에서 잠잘 때의 뜻일 뿐이다. 내가 “나무아미타불”이라 일컫는 순간 그 의미는 무궁무진하게 된다. 문법은 무용해지고 만다. “나무아미타불만 있으면 된다”라고 하시면서, 임종 직전 자신의 저서는 다 불태워버린 잇펜(一遍, 1239·1289. 일본의 정토신앙 종파인 時宗의 개조) 스님의 마음도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실로 “나무아미타불”이라는 명호(名號) 속으로 들어가서 명호와 하나가 되고 명호 속에서 ‘내’가 죽을 수 있다면, 다시 팔만대장경이 무슨 소용이 있을 것이며 천칠백 공안이 무슨 필요가 있을 것인가. 불법승 삼보와 팔만사천 법문이 이 “나무아미타불” 한 소리에 다 들어가 있는데 말이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일은 “나무아미타불”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이 낳은 필연적 귀결이라는 점이다. 흔히 간과하기 쉽지만, 실제로 그렇다. 석가모니 부처님 가르침의 기본은 무엇인가? “모든 것은 무상하다. 무상한 것은 괴롭다. 그러므로 무상하고 괴로운 것에서 ‘영원한 나’를 찾을 수 없다”는 것 아닌가. 이를 세 가지 확고한 진리[三法印]라고 말한다.


그렇다. 무상, 고, 그리고 무아의 세 가지 확고한 진리가 아니라면 아미타불은 존재할 수 없다. 무상, 고, 무아는 실로 우리 인간존재에 대한 규정이었다. 아니, 좀 더 구체적으로는 ‘지금-여기의 나’에 대한 말씀이다. 나는 무상하고, 나는 괴롭고, 나에게는 ‘영원한 나’라고 할 만한 것은 없다. 나는 존재가 아니라 비존재이고, 삶이 아니라 죽음이다.


이렇게 내가 존재가 아니라 비존재이며 삶이 아니라 죽음이라 자각할 때, 역으로 아미타불은 존재하게 된다. 비존재, 죽음, 그것이야말로 우리 삶의 진실한 모습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기본적 가르침은 우리들에게 “비존재임을 알아라”, “죽음을 자각하라”는 말에 다름 아니다. 비존재이고 죽음이 있기에 아미타불은 존재하는 것이다. “나무아미타불”이라 말할 때, 바로 그 순간 나는 비존재와 하나가 되고, 죽음과 하나가 된다. 죽음과 하나가 될 때, 내게 더 이상 죽음은 존재하지 않게 된다. 이것이 정토신앙에서 말하는 해탈, 즉 안심(安心)이다.


▲야나기 무네요시
따라서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이 무상, 고, 그리고 무아를 말하고 있는 것이라 한다면, 그래서 죽음을 말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순수한 불교일 수 있다면, 정토신앙이야말로 가장 순수한 불교라 말할 수 있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불교를 가장 순수하게 잇고 있는 대승불교가 정토신앙이라 말해서 좋으리라. “죽음을 기억하라”는 나무아미타불 안에서, 우리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불교와 아미타불의 불교가 둘 아님을 보게 된다. 그렇기에 정토신앙을 말하는 경전의 설법자는 모두 석가모니 부처님인 것이다.


‘무상을 느끼는 그대여/ 죽음이 다가오는 줄 아는 그대여/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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