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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 번뇌 버리고 깨달음 구하는 방편

기자명 법보신문

‘108산사순례 기도회’는 구제역으로 인해 신묘년 첫 순례의 문(門)을 아직도 열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 회원들은 이미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다가오는 순례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인간의 목숨은 기껏해야 채 백년도 살지 못하지만 생각해보면 어차피 생이란 끝없는 순례와 같다. 누구에게든 한 해를 시작하는 의미는 각별하다. 지금쯤 우리는 이 한 해를 또 어떻게 보내야 할 것인가를 진지하게 생각할 때이다.


순례 중에 만나는 고찰(古刹)과 문화재들은 비와 눈보라와 같은 풍상(風霜)속에서도 모두 천년을 지탱하여 온 것들이다. 고려대장경이나 경주의 다보탑처럼, 이미 그것들은 우리의 생보다 훨씬 오랜 세월을 지키며 묵묵히 고난과 역경을 인내하며 ‘천년의 지혜’를 스스로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순례를 하면서 인간의 질투와 욕심을 버리고 그 ‘천년의 지혜’를 배워야 한다.


일찍이 부처님은 “모든 중생은 불성(佛性)을 지니고 있다.(一切重生悉有佛性)”고 하셨다. 여기에서 불성이란 물질이 아닌 생명 그 자체를 뜻한다. 모든 중생이 불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생명을 가지고 있다는 것과 같으며 나와 중생은 나누어 진 것이 아닌 모두 하나로 연결 되어 있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이 우주는 하나의 생명이며 모두가 자비와 너그러움을 가진 부처의 본성인 불성을 지니고 있다. 우리가 산사순례를 나서는 것은 탐진치 삼독(三毒)을 버리고, 이 잃어버린 불성(佛性)을 되찾기 위해서이다.


우리는 지난 52차례의 산사순례를 하면서 참으로 많은 것들을 버리고 또 버리는 법을 배웠다. 산사순례를 통해 마음속에 든 번민과 분노, 그리고 어리석음을 버리고 남은 빈 그릇에 이젠 무엇을 채울 것인가를 생각해야 할 때이다.


그 빈 그릇을 그냥 있는 그대로 남겨두어도 좋고, 때로는 이웃을 사랑하고 가난한 이를 돕는 자비심으로 채워도 좋으며 혹은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의 그릇으로 채워도 좋다. 그것은 모두 각자의 몫이다. 분명한 것은, 그 기나긴 순례동안 적어도 내 마음속에 자비의 그릇 하나 쯤을 비워 두었다는 점이다. 이젠 그곳에 ‘사랑과 기쁨’을 담아야한다. 사랑과 기쁨은 남을 위해 베푸는 마음이 없다면 결코 느낄 수 없다. 남은 절반의 순례는 그것을 위한 것이다. 108염주가 손에 쥐어 지는 순간 우리는 무한한 자비심과 사랑과 기쁨을 맛볼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인간은 탄생하는 순간, 죽음을 향해 순례한다. 부처님이 생로병사의 해탈을 위해 성불하셨듯이 우리가 산사순례를 하는 이유도 바로 성불에 있음을 자각해야 한다. 이 속에서 배우고 깨닫고 자각하고 느끼고 하는 과정이 바로 생의 순례인 것처럼, 우리가 오늘 이 자리에서 어디론가 순례를 떠나는 것은 바로 번뇌로부터 해탈하기 위해서이다.


돌이켜보면 누구나 지나온 생에 대해서는 막연하게 허무감을 느낀다. 그러나 그 때는 이미 늦다. 적어도 우리는 자신의 생을 돌이켜 볼 때, 그런 후회를 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 여기에 우리가 순례를 하는 이유가 있다.


옛 고승들은 ‘한 평생을 돌이켜 보면 모두 꿈이고 허깨비’라고 했다. 그러나 우리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러한 것을 깨닫기에는 너무 현실이 가파르고 힘들다. 중요한 건 그런 꿈과 허깨비에 지나지 않는 생에 대해 너무 많은 집착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를 알게 되면 모든 것을 손에 놓아 버릴 수 있으며 모든 번뇌로부터 해방할 수 있다. 즉 방하착(方下着)이 성불의 지름길이다.


▲선묵 혜자 스님
우리가 산사순례에 가서 기도를 하고 부처님 전(殿)에 공양을 올리는 것도 어쩌면 모든 것을 손에 놓기 위한 것인지도 모른다. 욕심과 번뇌를 놓아버리고 진심으로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는 그 마음을 지닐 때만이 어느 날 가피를 얻게 될 것이며, 또한 마음속에 자비로운 마음을 얻게 될 것이다. 구하려고 하면 달아나는 것이 곧 부처님의 마음임을 우리 모두는 자각(自覺)해야 한다. 


선묵 혜자 스님 108산사순례기도회 회주·도선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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