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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들의 전통불교의식 배움 열기

“나라고 음성공양 못할소냐”

“하나 둘 셋 넷, 하나 돌고 두을 돌고, 다시 한 번 돌아서 세 - 엣 넷”.

징 소리에 맞추어 팔을 폈다가 오무리고, 발은 잠깐 앞으로 내밀었다가 살짝 거두어 들인다. 그사이 슬쩍 몸을 낮추는데 이 모든 동작이 한 호흡에 이루어진다. 팔에 신경 쓰다보면 발이, 팔과 다리를 징 소리에 맞추다 보면 어느새 몸을 틀어야 할 방향을 놓치고 있다. 한 번 두 번 박자를 놓칠 때마다 얼굴은 점점 붉어지고 등에선 식은 땀이 다 흐른다. 긴 겉옷을 벗으면 땀이라도 덜 나련만. 느닷없이 들이닥친 기자들 때문에 누비옷을 입은 채 춤을 추려니 이만저만 고역이 아니다.



이날 부처님 앞에서 마냥 어색해하며 춤을 추던 이들은 영산재보존회 부설 범음대학(학장 구해 스님)의 3학년 특수반 재학생들이다. 특수반이란 의식의 기초학습과 작법무(바라무, 나비무, 법고무 등 불교전통무용 일체)를 가르치는 반으로 동희 스님이 지도를 맡고 있다. 지난주에 배운 과정을 일주일 동안 완전히 소화해내야 비로소 다음 과정으로 넘어 갈 수 있다. 그래서 수강생들은 한결같이 온 정신과 마음을 모아 수업에 임하고 있었다.

특수반의 2001년도 첫 강의를 시작하는 이날, 동희 스님은 수강생들에게 다소 뼈아픈 충고를 했다. “이처럼 어렵고 귀하게 배운 염불작법을 참으로 고귀하게 써 주길 바란다, 세상이 바뀌었다는 지금도 염불하는 이에겐 하급의 대우가 없어지지 않고 있는데 이를 개선하는 길은 염불을 배우는 여러 스님들이 남들 보기에 정말 거룩하고 신비하게 보일 정도로 여법하게 영산재를 올리고 염불하는 것 뿐이다”고.

잦아든 목소리, 애써 힘을 담지도 않은 동희 스님의 진언은 그러나 듣는 이들에게는 태산처럼 다가왔다. 동희 스님은 새학기 강의를 거르지 않기 위해 지난 겨울 내내 병원에서 살다시피하며 지난 한해동안 만성피로에 시달린 몸을 추스렸었다.

스님과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범패와 불교무용을 가르치는 곳으로 전국적인 지명도를 가진 곳은 모두 여섯 곳. 범음대학과 동국대 국악과, 동방불교대학, 중앙승가대학교 부설 어산작법연구원, 한국전통불교의식연구원, 해동불교대학 부설 의식교육원(법현 스님이 인터넷에 개설한 ‘범패’사이트 참조)이 있는데 모집 방법과 강의기간은 조금씩 다르다.

그중에서 대표적인 곳으로는 영산재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스님과 단체가 직접 운영하는 범음대학이 손꼽히고 있다. 1969년 안덕암, 박송암 스님 등이 만들었던 옥천범음회가 30여년간 범패 계승자들을 길러왔던 전통을 이어 지난 1994년 설립됐다. 예전에는 상주권공과목 3년, 영산 3년, 짓소리 3년 등 거의 15년 가까이 가르쳐 오던 과정을 3년 과정, 3년 수료 후 연구과정으로 바꾸어 수강생을 지도하고 있다.

옥천범음회 시절부터 94년까지 1000명의 수강생을 배출했으며 지금은 각 과정마다 50명씩 , 년간 200명이 등록하여 매일 오후 강의를 받고 있다.

지역과 기관을 불문하고 불교의식을 배우는 수강생들의 대부분은 스님이다. 간혹 한국 전통문화의 본향을 배우고자하는 한국음악 작곡가, 한국무용 전공자들이 수강생으로 입학하여 스님들과 똑같이 배우고 나간다. 가수 김태곤 씨도 그 중 한명이었다.

범패를 배우러 나선 주부불자도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다. 중년의 나영옥 씨는 3년째 범음대학에 다니고 있다. 그녀는 “신도의 입장에 있지만 가끔 불공을 직접 올리고 싶었다, 비록 스님은 못되었지만 스님처럼 제대로 염불하고 의식에도 참여하고 싶어서 배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재가불자이건 스님이건 불교의식을 배우고자 목적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외우고 반복하는 것만이 유일하고도 최고의 학습법인 범패와 불교무용. 처음 시작했을 때엔 쑥스러움을 이기지 못해서 몸과 소리가 굳어 애를 먹지만 진도가 계속 될 수록 그 방대한 분량을 제대로 소화하기가 정말 만만치 않다고 한다. 그러나 의외로 중단하는 이들이 드물다고 하는데 그것은 범패가 지닌 깊은 매력 때문이라고 한다.

내 목소리로 부처님을 찬탄하고 정중한 몸짓으로 수행자의 기쁨과 수행의 고단함을 표현하고 있노라면 눈물이 저절로 흘러내려서 어쩔 줄 몰라하는 수강생이 많다.

대저 범패도 음악의 일종이니만큼 음감과 빼어난 성량이 필요하다. 그러나 범패를 가르치는 스님들은 “모두가 고개를 내젓던 악성(惡聲)도 엄청난 노력 끝에 미성으로 바뀌는 경우를 종종 보았다”며 ‘범패를 배우는 가장 중요한 기본은 역시 불심’이라고 전했다.

관계 교육기관에 따르면 범패와 불교무용을 배우고자하는 이들이 최근 몇 년새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라고 한다. 언듯 보기에 현대적인 것과는 한참이나 거리가 먼 듯한 분야이지만 바로 그러한 점 때문에 더욱 지켜가야할 소중한 자산으로 인식돼 배우려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는 분석이다.

예전 불교계에는 영산재를 하는 스님을 ‘재받이’라고 하여 낮추어 보는 풍습이 있었다. 일명 재받이 스님들은 공양을 받을 때에도 선방 수좌와 학인스님 다음에야 밥상을 받을 정도로 차별에 시달렸다. 그러한 차별은 이처럼 범패를 배우겠다는 열기 속에 봄 눈 녹듯이 사라지고 있다.



김민경, 황도 기자
mkkim@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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