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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심수행장 (1)

기자명 지묵 스님
해골 바가지 물도 모를 때 꿀맛

마음에서 갖가지 법 일어나는 것


원효(元曉) 스님의 깨달음

발심수행장(發心修行章)은 원효(元曉, 617∼686, 70세) 스님이 자신의 수행 체험을 바탕으로 저술한 총 706자로 된 운문이다.

경주 분황사(芬皇寺)는 원효 스님의 근본 도량이라 할 만하다. 29세 때에 출가한 본사이고 깨달음 이후 화엄경소(華嚴經疏)를 지었던 장소이며 말년에도 한동안 머물렀던 절이다. 원효 스님 자신도 ‘분황사 사문 원효’라고 스스로를 소개할 만큼 분황사를 끔직이 생각했던 것 같다.

수행 초기에 스승으로 모신 한 분은 도가 고매하기로 이름난 낭지(朗智) 스님. 그는 특히 법화경으로 뛰어난 선지식이었다. 경남 울주군 소재 영축산(靈鷲山)에서 산봉우리를 사이에 두고 동쪽 산 위 토굴에서는 스승 낭지 스님이 머물고 있었고 서북쪽 기슭 반고사(磻高寺)에서는 원효 스님이 머물고 있었다. 낭지 스님을 친견하여 가르침을 받던 어느 날이었다. 초장관문(初章觀文)과 안신사심론(安身事心論)을 지으라는 분부를 받고는 그걸 지어서 올리기도 하였다. 미루어 짐작하건데, 이때 영축산 시절의 체험이 발심수행장의 내용 가운데에 적잖이 들어 있지 않을까 싶다. 발심수행장의 첫 구절 화택문(火宅門)은 법화경 비유의 내용이다.

원효스님은 수행 과정에서 일화가 많다. 우선 깨달음에 관한 일화이다. 원효 스님은 한때 도당(渡唐) 유학의 꿈을 안고 중국으로 건너가려고 두 차례 시도를 한 경험이 있다.

첫 번째 시도는, 650년 34세 때의 일이다. 육로로 의상(義湘, 625∼702, 78세) 스님과 함께 고구려 땅을 거쳐 요동을 통과하려고 할 때에 고구려 수비군에게 정탐자로 붙잡혀서 고문을 당하고 수 십일만에 간신히 풀려 나온 적이 있다.

두 번째 시도는, 661년 42세 때의 일이다. 바닷길로 의상 스님과 함께 서해를 건너서 가려고 할 때 뜻밖에 깨달음을 얻고 신라로 돌아온 일이 있다.

대오(大悟)의 장소는 백제의 영토 남양만(지금 수원 지방)으로 가는 길목, 직산(지금 성환과 천안 사이)으로 알려져 있다. 야산 어느 무덤 안에서 잠을 잘 때였다. 당시 큰 무덤의 구조는 특이하여, 사람이 안으로 들어갈 수가 있는 굴 문이 있고 그 통로를 따라 안으로 들어가면 넓지는 않으나 무덤 안에서 사람이 머물 수가 있는 공간이 갖추어져 있었다. 지금 무덤과는 다른 특이한 실내 구조이다.

한밤중, 사방은 칠흑 같은 어둠뿐이었다. 목이 몹시 말라 눈을 뜨고 무덤 밖으로 나왔다. 원효 스님이 무덤 앞에 있는 못 가에 가서 물을 한 모금 마시려고 할 때였다. 희미한 어둠 속에서 무슨 바가지 같은 게 손에 잡혔다. 별 생각이 없이 단숨에 바가지의 물을 들이켰다. 물맛은 정말 감로수나 꿀맛과 같이 달았다.

이튿날 새벽, 어둠이 가시는 시간이었다. 두 사람이 잠이 깨어 무덤 밖으로 나와 길 떠날 준비를 할 때였다. 문득 원효 스님의 눈에 띈 것이 있었다. 어젯밤 물을 마셨던 그 바가지는 해골 바가지였다.

“아니? 저, 해골 바가지의 빗물을 내가 마셨다니!”

속이 메스꺼워서 심한 구토증을 느끼며 악, 하고 토하는 순간이었다. 이 때 홀연 대오하였다. 오도송(悟道頌)은 새로 지은 내용이라기 보다 화엄경의 내용을 그대로 옮겨온 구절들인데 몇 글자가 다르다.

심생즉 종종법생(心生則 種種法生) 마음을 내면 가지가지 법이 일어나고 심멸즉 촉루불이(心滅則 촉루不二) 마음을 거두면 해골 물과 맑은 물은 둘이 아니로다. 삼계유심(三界唯心) 삼계의 근본은 마음이요 만법유식(萬法唯識) 만법의 근본은 의식이라 심외무불(心外無佛) 마음의 밖에는 부처가 없다 호용별구(胡用別求) 그런데, 어찌 따로 부처를 구하랴!

여기서 원효 스님은 신라에 돌아와 70 평생을 보살 만행의 길을 걸었다. 그리하여, 그의 고매한 인품과 학덕은 후세에게 끼친 바 매우 커서 민족의 태양과 같은 존재가 되었다.



송광사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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